미국의 소설가 셔우드 앤더슨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 “죽음이 아니라, 삶이야말로 위대한 모험이다.” 어릴 적 그는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여기저기를 떠도는 삶을 살았다. 페인트 공장을 경영해서 성공을 거둔 그는 어느 날 뜻밖의 결정을 내리게 된다. 사업을 그만두고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편한 생활을 등지고 늦깎이 작가의 길로 들어선 그에게는 하루하루가 모험이었을 것이다. 세간에 가장 많이 알려진 연작 단편집 에 실린 단편 ‘탠디’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내가 중독된 건 술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또 다른 게 있었죠. 나는 사랑을 하는 사람인데, 사랑할 내 것을 찾지 못했어요. 제 말뜻을 알아들으실지 모르겠지만, 그건 대단히 중요한 이야깁니다.” 그는 이미 사람을 ..
육아 책을 즐겨 읽는다. 얼마 전엔 김신숙님이 쓰신 를 보았다. 연륜과 겸손, 열정이 같이 느껴지는 귀한 책이었다. 이런 구절이 있었다. “저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존경했던 어른은 많지 않았습니다. 내가 아이이고, 상대방이 어른이기 때문에 억지로 따른 적이 더 많았지요. 어린아이 눈으로 봐도 본받고 싶은 어른과 그렇지 않은 어른은 구별이 됩니다. 그들의 행동, 말투, 태도 등을 통해 알아차리게 되지요.” 요즘 아이들에게 어른은 어떤 존재일까. 존경하는 어른이 있을까. 어른이 되고 싶을까. 아이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노골적으로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는 아이들이 의외로 많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는 말은 사실 어른들처럼 살기 싫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어른으로 살아가는 게 아이들 눈에 행복해 보이지 ..
“기독교혐오는 왜 다루지 않나요? ‘개독’도 혐오표현이잖아요?” ‘혐오표현의 실태와 대책’이라는 포럼의 청중석에서 나온 질문이다. 포럼은 한국 사회의 혐오에 대해 진단하고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등을 대상으로 하는 혐오표현의 실태를 살펴본 뒤 법적, 제도적 대응 가능성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당연히 성소수자 및 ‘좌파’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기독교 혐오세력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이는 혐오에 대한 논의의 장에서 오히려 기독교가 ‘역차별’당하고 있다는 항변이었다(물론 ‘개독’이란 말이 포럼에서 사용된 것은 아니다). 난감했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혐오라는 말이 사용되는 맥락의 혼란스러움 때문이었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 ‘혐오’는 그야말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가 되었다. 모든..
지하철을 타고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여기 자리 있습니까?” 녹초가 된 한 청년이 힘없는 목소리로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아주머니는 자신이 앉은 옆자리에 커다란 상자 하나를 두고 있었다. “네, 그럼요.” 아주머니가 상자를 자신의 품으로 가져다 안았다. 청년이 벌떡 일어나 상자를 받아 좌석 위쪽에 마련된 선반에 올렸다. “가시는 데까진 편하게 가셔야죠.” “고마워요, 역시 젊으니까 힘이 좋네. 그 무거운 상자를 단번에 올리고.” 아주머니가 웃었고 청년도 희미하게 따라 웃었다. 한두 정거장쯤 지나자 청년이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입고 있는 바지 여기저기에 라면 국물이 튀어 있었다. 편의점에서 밤샘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양이었다. 때마침 우연히 지하철 내에 붙어 있는 서울시 사업 홍보..
장강명의 장편소설 에서 놀라운 것은 발 빠르게 ‘국정원 댓글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는 데 있지 않다. 그 이후에 전개될 2세대 댓글 조작 기술, 한층 진화되고 교묘해진 전략전술을 선보이고 있다는 점에 있다. 가령, 이런 식이다. 실시간 검색어 순위 조작, 도용한 아이디로 SNS에서 가짜 댓글 달기 등은 기본이고, 대기업 계열 전자 회사의 백혈병 환자를 고발하는 영화에 대한 여론 확산을 막기 위해 임금 체불로 허덕이는 영화산업 노동자를 가상으로 만들어 이이제이식으로 망하게 만든다거나, 진보적 온라인 커뮤니티는 ‘PC’(Pol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를 적극 활용해 게시판을 병림픽(병신올림픽)이 판치는 짜증의 도가니로 만든다. ‘장님은 시각 장애인으로, 성전환 수술은 성확정 수술이라고, ..
부모로부터 “지잡대 갈 거면 대학 안 가는 게 낫지”라는 말을 듣고, 공부를 완전히 손에서 놓아버린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자신의 흥미를 좇아 원하는 학과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저 말을 듣고 포기했다. 부모의 입장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부모는 사회가 어떤 곳인지 말해주고 싶었고 아이가 현실을 직시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부모는 그 말이 아이에게 그렇게 큰 타격을 줄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이는 말 한마디에 자존감에 큰 상처를 입었고 한동안 무기력에 시달려야 했다. 아이는 자기가 ‘멘털’이 약하다고, 자존감이 낮다고 자책했다. 하지만 그게 비단 그 아이만의 문제일까. 진료실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절실하게 깨닫는 건, 그들의 자존감이 낮은 게 그들 탓이 아닌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지난 12월 말 SBS 팀은 ‘위험한 초대남-소라넷은 어떻게 괴물이 되었나’ 편을 방송했다.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음란물 공유사이트인 ‘소라넷’에 대한 내용이었다. 소라넷은 1999년 개설되어 각종 포르노 이미지는 물론 몰래카메라(몰카)와 더불어서 성범죄 정보가 공유되는 불법사이트다. 회원수는 자그마치 100만명. 울산광역시 인구수와 맞먹는다. 적지 않은 숫자가 소라넷에서 유통되는 ‘타인에 대한 폭력’을 별 문제의식 없이 즐기고 있었다는 말이다. ‘위험한 초대남’ 방송 후 인터넷 게시판 댓글 등을 통해 많은 남성들이 보였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니까 여자들이 조심해야 한다, 남자들의 본능이다, 소라넷을 문제 삼는 여자들의 방식이 더 문제다” 등. 이처럼 우리는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범죄가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