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미국 사회가 주목하고 있는 것이 있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의 ‘노조 실험’ 결과다. 남부 앨라배마주 베서머에 있는 아마존 물류센터 직원들은 지난달 말 노조를 설립할 것인가에 대한 찬반투표를 끝내고 이달 중순쯤 나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찬성으로 결론이 나면 1994년 창업 후 27년 동안 이어져온 미국 내 아마존의 무노조 경영은 끝난다. 미국 내 800여 아마존 사업장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미 노조운동의 ‘리트머스 시험지’로 조명받는 이유다. 아마존의 노조 실험은 사측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코로나19 위기는 아마존에 축복이었다. 지난해 매출은 급증했다. 최고경영자(CEO) 제프 베이조스는 세계 최고 부자 입지를 더욱 굳혔다. 하지만 치부도 드러냈다. 노조 설립의 도화선이 된 열..
이름 때문일까. 모란공원 하면 봄이 느껴진다. 지난 주말, 그곳엔 봄기운이 완연했다. 전태일 열사의 무덤에 햇살이 내리고, ‘노동해방’ 머리띠를 두른 흉상에도 봄볕이 드리운다. 바로 옆은 지난달 15일 세상을 뜬 백기완 선생의 묘소다. 뗏장 사이로 붉은 흙이 드러난 봉분 앞에 프리지어·국화 꽃송이가 수북하다. 그 뒤쪽은 이소선 여사의 무덤이다. 그는 생애 전반은 전태일의 엄마로 살았지만, 후반부는 아들의 유지대로 ‘노동자의 어머니’로 헌신했다. 열사의 묘 오른쪽 뒤편에는 3년 전 산재로 숨진 김용균 노동자가 잠들어 있다. 전태일, 이소선, 백기완, 김용균. 한국 노동운동사에서 빠져서는 안 될 네 사람이 반경 20m의 한 묘역에서 영면 중이다. 백기완 선생이 전태일 열사와 나란히 묻힌 것은 의미가 각별하다..
‘사람은 먼지고, 자본이 먼저다.’ “사람이 먼저”라는 국정철학을 내세워온 문재인 정부가 오랜 진통 끝에 누더기 중대재해처벌법을 통과시키는 것을 보고 있자,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이다. 맞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자본이 먼저고 사람은 먼지에 불과하다. 물론 한계는 있지만 이 정도라도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든 것은 다행이며 성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통과된 법은 정의당안은 말할 것도 없고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안보다도 후퇴한 것으로 너무 문제가 많다. 예를 들어, 일 년에 400명의 노동자가 죽어나가는 5인 미만 사업장을 제외한 것은, 이 법 제정을 위해 단식투쟁을 한 김용균씨의 어머니인 김미숙씨의 말처럼, “이들은 계속 죽이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오죽했으면 오래전부터 이 법안 ..
국회에서 단식투쟁을 했던 사람들이 잊혀지지 않는다. 시간이 무심히 흘러 의로운 싸움이 태연히 과거가 되어가고 있음이 무섭다. 문득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씨와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의 안부가 궁금하다. 단식의 후유증은 없는지, 마음은 잘 추스르고 있는지. 분노와 슬픔은 다스릴 수 있겠지만 무력감은 참으로 삭이기 어려울 것이다. 사람을 살리자는 중대재해처벌법에 우리 시대 비참한 죽음이 그대로 들어있으니 얼마나 기막힌 일인가. 사람의 벽은 해머로도 깨뜨릴 수 없었다. 결국 정치인들은 가진 자들의 편이었다. 하청 노동자의 죽음은 오로지 개인의 것이었다. 어머니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누더기 법안은 통과되었고, 현장을 지켜보던 기자들도 노트북을 닫았다. 이 땅의 어머니들이 나처럼 울어서는 안 된다고 했지만 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제정안이 지난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명칭을 주의 깊게 읽어주기 바란다. ‘중대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 책임자 처벌법(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아니다. 국회에 제출된 중대재해 관련 법안 모두(국민의힘 발의안까지) ‘기업’을 명시했음에도 최종 의결된 안에선 ‘기업’이 행방불명됐다. 법률의 명칭은 단순한 이름이 아니다. 법의 취지, 정신, 적용 대상 등을 포괄한다. ‘중대재해처벌법’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다르다. 법률 내용이 정의당 안은커녕 민주당 박주민 의원 안에 비해서도 후퇴한 건 당연한 결과다. 여야는 5인 미만 사업장을 대상에서 제외하고,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선 3년간 적용을 미루고, 처벌 대상이 되는 경영책임자 범위에 ‘안전보건 업무..
5년 전 부모의 산소에 작은 비석을 세웠다. 농사일로만 평생을 보낸 분들이라 빗돌에 쓸 이력이나 연보랄 것은 없었다. 그래도 유훈처럼 남긴 몇 마디는 생생했다. 짧은 비문에 ‘무용지물이 되지 말라’는 글귀를 새기고 보니 생전의 부모 모습이 겹쳐지면서 ‘일(노동)하는 사람이 되라’는 뜻으로 읽혔다. 당신들은 ‘노동의 화신’이었다. 농기계에 손가락이 으깨지고 지문이 닳아 없어졌지만, 일만큼은 놓지 않았던 분들이다. 그럼에도 자식들은 그 노동의 고단함은 모른 채 오히려 일하는 당신들을 자랑스러워했다. 돌이켜보면 ‘무용지물이 되지 말라’는 말씀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다그친 채찍질이었는지 모른다. 애초부터 ‘노동’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던 것은 일하는 부모 덕분일 것이다. 1970년대 박정희 ..
몇 주간 밥 반찬으로 ‘죄책감’이 올라왔다. 지인과 식사할 때면, 단식 중이신 아버지를 두고 ‘밥을 먹어도 괜찮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고 이한빛 PD의 아버지이기도 한 나의 아버지께서 고 김용균 노동자 어머니 김미숙님과 함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본청 앞에서 25일째 단식농성을 이어가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응원은 마음으로 다하고, 밥은 맛있게 먹자고 되뇐다. 역설적이게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한 농성은 먹고살기 위해 먹지 않는 것이니, 지지하는 사람들이 잘 먹어서 버티는 것도 중요하다. 버텨야 변한다. 하루 7명이 산재로 퇴근하지 못하는 일터는 그대로다. 유가족의 투쟁이라는 비극적인 아이러니도 없어지지 않았다. ‘산재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정부의 공언이 무색하게,..
“안전의무를 소홀히 해 얻는 이익보다, 재해를 일으켰을 때 받는 불이익이 적다면, 기업의 철저한 안전관리는 사실상 기대하기 어렵다.” 고 노회찬 의원이 2017년 4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최초로 입법발의하며 밝힌 입법취지다. 2019년 한 해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는 2020명이라고 한다. 산업재해로 처리조차 되지 않은 억울한 노동자 죽음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노회찬 의원안이 통과되었더라면, 몇십명, 몇백명은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국회 앞마당에선, 산재사고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단식농성하며 자식을 죽이고 그 부모까지 거두려는 잔인한 세상을 향해 호소한다. “다시는 우리같이 고통받는 가족이 있어서는 안 된다. 더 이상 죽지 않아야 한다.”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책임지지 않는 상태에서는 계속 누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