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제4의 공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일반적으로 제4의 공간은 사이버공간을 의미한다. 사이버공간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추상의 세계에는 분명히 존재하는 공간이다. 그런데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물리적인 공간에도 제4의 공간이 존재한다. 그 공간은 사이버 세계와는 달리 접근만 하면 직접 체험할 수도 있는 공간이다. 바로 옥상이다. 옥상은 보행자의 시선에는 보이지 않는 공간이다. 그래서 제4의 공간이라고 부른다. 도시에서 이 제4의 공간인 옥상은 또 다른 신세계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이다. 도시는 땅값이 매우 비싸다. 그래서 가능한 한 높은 용적률로 개발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 결과 도시에 있는 건물들은 점점 층고가 올라간다. 과거에는 10층만 되어도 높은 건물이었는데 지금은 10층이면 낮은 층수에 속하..
유리는 친환경 소재로 생각되지만 플라스틱보다 약 2000배나 오래간다. 분해되는 데 100만년 이상이 걸린다. 약 30만년 전에 호모사피엔스가 처음 출현했으니 호모사피엔스가 ‘호모호모호모사피엔스’로 3번을 진화하고도 남을 시간이다. 이쯤 되면 모래를 가공한 유리가 인공지능보다 더 경이롭지 않은가. 또한 제조부터 폐기까지 제품 생애주기상 유리병은 페트병, 알루미늄, 종이 포장재 중 에너지 사용량이 가장 많다. 나에게는 ‘반려컵’이 있다. 어느새 주변을 돌아보니 ‘나만 없어, 고양이’로 대변되는 삭막한 삶을 내가 살고 있더라. 그래서 내 곁을 지켜줄 반려들을 만들던 중 하나의 유리컵이 내 삶에 당도했다. 버려진 와인병으로 만든 진녹색의 유리컵이었다. 그러나 유리병 중 투명, 갈색, 녹색만 재활용된다. 화장품..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장기화하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한 치 앞을 가늠하기 어려워 살얼음판을 더듬더듬 건너온 듯하다. 2022년 새해 계획으로 미국에서 열리는 2022 CES(Consumer Electronics Show·소비자 가전 전시회)에 가보고자 했으나 비용도 그렇고 비행기 탄소배출도 두렵고 코로나가 오미크론 변종으로 더 창궐하고 있어 포기했다. 15년 전쯤 일이다. 미국 특파원으로 가는 어떤 기자와 대화 중 CES에 가보고 싶다 했더니 그는 환경단체에서 그런 전시와 무슨 상관이냐며 의아해했다. 환경운동이야말로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는 미래업 종사자가 아닌가, 그러니 인간의 욕망을 해소시켜줄 첨단 기술이 모이는 곳이 궁금했다. 말하자면 전시된 상품들을 통해 사람이 어디까지 얼마나 무엇을 욕망하는가..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로 고등학생들과 고전 읽기 특강 수업을 하게 되었다. 누군가를 대상으로 수업을 할 자격도 경험도 부족한 터라 학생들이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의문들을 취합해서 미리 건네달라고 부탁했다. 담당 교사가 보내온 질문 목록을 들여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하던 바로 그 질문이 적혀 있었다. “우리가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을까? 라다크인들의 전통적 생활방식대로 살 수 있을까?” 지난 세기 말엽에 그 책을 처음 읽었다. 녹색평론사에서 김종철 선생님의 번역으로 출간된 나의 첫 는 책장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수업 준비를 위해 개정판을 다시 사야 했다. 은은한 나뭇잎 문양이 박힌 하드커버 책을 받아들고 나는 옅은 서글픔을 느꼈다. 옛 책은 내용과 형식 양쪽 측면에서 상당한 충격을 안겨 준 기억이 ..
우리는 환경문제 하면 폐기물, 에너지, 오염, 기후변화, 자연환경 훼손 등을 떠올린다. 그런데 우리가 잘 인식하지 못하지만 이들 환경문제의 배경에 공간환경이 있다. 토지 및 건물과 같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게 되면 자연환경 훼손과 에너지 소비를 줄여 환경을 보전할 수 있다. 신도시를 건설하지 않으면 신도시 건설로 인해 사라지게 되는 산과 농경지가 보전된다. 또 신도시 운영으로 소비되는 에너지와 교통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신도시를 건설하면 구도심은 쇠락하고 다양한 도시문제가 발생한다. 이런 효과와 문제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성도시를 살기 좋은 곳으로 바꾸기보다는 신도시 건설이 선호된다. 기존 도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많은 주민과 이해관계자들의 협의가 필요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
‘녹색세상’에 처음 쓴 글은 ‘나는 비행기를 타지 않기로 했다’였다.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를 따라 나름 비장하게 선언했으나 코로나19로 하나마나한 소리가 되었다. 내가 하는 일이 그렇지 뭐, 하는 찰나 이런 기사가 떴다.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가 열린 글래스고에 400대의 전용기가 떴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그룹 대표도, 찰스 영국 왕세자도 모두 전용기를 타고 등장했단다. 전 세계 대표들이 탄 전용기는 영국인 1600명이 1년 동안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를 한 번에 내뿜었다. 모두가 툰베리처럼 태양광 요트를 타고 총회에 참석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다만 전용기의 이산화탄소를 상쇄하는 자세로 탄소 배출량을 빠르고 극적으로 줄일 합의안을 내놓아야 했다. 우리의 미래..
사랑한다면서 밥값 한번 안 낸다면 그 사랑은 믿을 수 없다. 마음 가는 곳에 돈이 가는 법이니까. ‘전례 없는’ 기후변화 위기 속에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가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리고 있다. 각국 정상들은 떠나고 정부대표단이 남아 파리협약(COP21)에서 남긴 ‘탄소시장 이행규칙’을 놓고 다툴 것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최근 낸 보고서에서 “즉시, 신속한, 대규모의 배출 감소”를 촉구한 점을 감안하면 서둘러야 할 때 무슨 다툼일까. 기후변화 대응은 해야겠고 큰돈은 들이고 싶지 않은 선진국들의 계산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서로 돈을 덜 내겠다고 아옹다옹한다면 거기에서 어떤 진심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번 당사국총회에서 나온 한 줄기 햇살 같은 기쁜 소식 하..
수도권 대 비수도권의 구도를 두 번째 분단으로 규정하는 특집 기사를 읽고 있다. 한때 경기도와 강원도의 접경 지역에서 살던 때의 기억이 떠올라 감정이 복잡해진다. 20대 후반에 이른바 귀농이라는 것을 실행한 뒤, 30대 내내 농촌에서 살았다. 30가구 정도 모여 사는 작은 마을이었다. 주민들은 식용 닭을 키우는 육계 혹은 버섯이나 사과 재배를 생업으로 삼았다. 집집마다 자급자족을 위한 벼농사와 밭농사를 조금씩 지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는 농촌이나 농사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낭만적 환상을 품었을 따름이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에서 묘사한 라다크 사람들의 삶 같은 것을 꿈꾸었다. 가을에 타작을 끝내고 키질하며 노래를 부르는 삶. ‘오, 순결한 바람의 여신이시여./ 오, 아름다운 바람의 여신이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