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동물과 비인간 동물(non-human beings)의 관계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10년 넘게 만들다보니, 비인간 동물들이 고통받는 현장을 참 많이도 보아왔다. 종종, 데카르트를 원망하곤 한다. 그는 근대철학의 아버지라 불리지만,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증명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아내의 개를 묶어놓고 산 채로 해부했다. 동물은 고통을 느끼지 않는 존재로 여겼고, 개가 고통스러워 울부짖는 소리를 기계가 내는 소음에 불과하다고 했다.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분리시켜 바라보며, 자연을 인간의 이성으로 측량 가능한 물질체계로 바라보았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데카르트식 과학적 합리주의는 오늘날 우리가 자연과 동물을 대하는 태도를 지배하고 있다. 개를 산 채로 해부하지는 않지만, 어미 돼지를 평생..
갑자기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지만 개울물은 아직 흐른다. ‘흐르는 물’마저 결빙될 때 비로소 겨울에 들어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산골의 공기는 푸르고 차다. 서둘러 겨울채비를 해야 한다. 내 시골의 월동준비는 별 게 아니다. 땔감을 모으는 일 정도다. 백태를 지난주에 베어 털었고, 마늘도 심고 짚으로 덮었으니 이젠 부지런히 땔감을 모아야 한다. 사실 땔감은 수년 전부터 연중 시나브로 모아둔 양이 적잖으니 올해 필요한 땔감은 불쏘시개다. 땔감은 대략 세 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 불이 처음 닿을 최초의 불쏘시개, 그 다음 그 불이 옮아붙을 짧고 가느다란 나무들, 그런 뒤에 마침내 활활 타오를 굵은 장작이 그것이다. 불쏘시개는 땅속 물을 끌어올리는 일과 비견해 말할라치면 마중물 같은 것이다. 최상의 불쏘시개..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통 연락이 없던 동창 녀석이 문자를 보내왔다. 겨울이 코앞에 닥치자 가뜩이나 팍팍한 살림살이가 더 심란했던 모양이다. 친구는 ‘나라가 이 모양인데’라는 구절을 간투사처럼 남발했다. 나중에 알아보니 ‘나라가 이 모양인데’가 요즘 유행어였다. 친구의 문자는 이렇게 끝났다. 연탄부터 한 300장 들여놓고 김장도 많이 담가놓아라. 나라가 이 모양인데- 나라 돌아가는 꼬락서니와 월동 준비가 무슨 연관이 있나 싶었는데, 연탄과 김장이란 단어가 불쑥 1970년대 초반을 호출하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국민교육헌장을 줄줄 외던 시골 초등학생이었다. 그 무렵 겨울은 땔감을 준비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겨우내 땔 나무를 해놓고, 김장독을 묻어놓고 나면 서리가 내렸다. 아버지는 가을걷이를 끝내자마자 지게를..
“엘살바도르의 로메로 대주교는 정의(正義)가, 뱀처럼, 오직 맨발인 사람들만을 문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자기 나라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저주받고 공격받는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말했고, 그 때문에 총을 맞고 죽었다.” 이것은 우루과이 작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가 최근에 쓴 에세이에서 한 말이다. ‘정의의 여신’이 눈을 감고, 진실이 핍박을 당하고, 거짓이 활개를 치며, 거의 모든 게 거꾸로 돌아가고 있는 오늘의 이 뒤틀린 세계를 이보다 더 간명하게 요약하고 있는 말이 또 있을까.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갈레아노의 이 말이 군사독재 하에 신음하고 있던 어떤 특정 사회 상황을 가리키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아챌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지금 우리는 적반하장이라는 말로써밖에는 표현할 ..
유엔 기후변화정부간위원회(IPCC) 197개국 정부 대표단은 지난 9월27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개최된 제37차 총회에서 산하 과학실무그룹이 제출한 기후변화과학 현황과 전망에 관한 제5차 보고서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IPCC는 이번 보고서에서 사상 최초로 지구 온도 2도 안정화 목표에 필요한 이산화탄소 누적배출량을 제시했고, 197개국 정부는 이를 승인했다. 향후 전 세계가 배출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 총량의 상한선을 승인한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화석에너지 연소, 토지 개간, 시멘트 생산 등 경제발전 과정에서 현재까지 5310억t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했다. 그 결과 지구 평균온도는 지난 130년에 걸쳐 약 0.8도 상승했다. 세계가 합의한 지구 온도 안정화 2도 목표는 앞으로 지구 온도가 1.2도..
밀양을 지나가는 송전선을 지중화하자는 의견이 있다.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적극적이다. 분당에서 이미 고압선을 지하에 묻은 사례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의견이 무리한 것 같지 않다. 지상의 고압선과 땅속 고압선의 다른 점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주된 차이는 하나는 아주 잘 보이고 다른 하나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각이라는 감각을 통해서 인지되지 않으면 대상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크게 떨어진다. 아마 밀양 송전선로 공사를 처음부터 지하선로로 계획했다면 큰 갈등과 희생 없이 공사가 진행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밀양 송전선의 지중화는 흉물스러운 것을 없애는 게 아니라 감추는 것이다. 감추는 것은 문제를 덮어버리는 것이지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송전선이 땅속으로 들어가도 고압 전기는 계속 흘러간다...
연어는 나에게 결혼식 피로연에서 초고추장 대신 사우어 크림을 발라 먹는 핑크빛 회, 그 정도였다. 연어에 관한 시나 글을 읽으면서도 연어는 내게 추상화된 기호일 뿐, 그 글자에서 바다 냄새를 맡지는 못했다. 살아 헤엄치는 연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일까. 그래서 지난여름 캐나다 서부의 어느 깊은 계곡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이 거친 급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들을 보았을 때 난 울고 말았다. 그것은 미안함과 감동이 뒤얽힌 눈물이었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먹어온 연어들이 저토록 힘들고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었다니. 강에서 태어나 먼바다로 나갔다가, 다시 어머니 강으로 돌아와 후손을 남기고 생을 마감하는 연어의 삶. 상처투성이 몸이 되더라도, 가야 하는 곳으로 끝내 가고야 마는 연어들은, 작은 어려움에도 쉽게..
비 그친 뒤의 시골 가을 벌판은 형언키 어렵게 아름답다. 방금 쓰러뜨린 깻단과 이미 베기 시작한 볏단 위에 내린 이슬이 햇살을 받아 반짝인다. 쓰러진 것들이 여전히 영롱하게 빛나는 것은 순전히 아침햇살 때문이다. 요란했던 개울은 조용해졌고, 본래 ‘깊이’와 상관없이 깊어졌다. 샘밭의 단골 철물점에 연통을 구하러 갔더니만 장터 입구에서부터 고음의 밴드소리가 꽝꽝 울려퍼지는데, 이게 뭔 소리인가, 면민 노래자랑이 벌어졌구나. 농협 앞 공터에 차려진 무대에서는 40대의 뚱뚱한 여인네가 한복 속의 허리를 조금씩 흔들며 노래를 풀어놓고 있었으니, ‘성주풀이’였다. ‘낙양성 십리하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영웅호걸이 몇몇이냐. 절세가인이 그 누구냐.’ 무대 앞에는 그런 곳에서 늘 눈에 띄는, 쿵짝쿵짝 반주소리만으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