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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인준 논란을 보며 프랑스 대혁명 당시 처형됐던 올랭프 드 구주가 떠올랐다. 페미니스트이자 인권운동가였던 구주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혁명 정신이 여성을 소외시켰다며 인권선언문을 다시 썼다. ‘여성의 인권과 시민권 선언문’이다. 하지만 절대왕정은 구주를 ‘성별에 적합한 덕성을 잃은 사람’으로 단죄하고 1793년 단두대에 세웠다. 구주는 선언문 10조에서 “여성은 교수대에 설 권리를 가졌다. 마찬가지로 여성은 법이 규정한 공공질서를 어지럽히지 않는 한 연단에 오를 권리도 가져야 한다”고 외쳤다.

강 후보자가 올랭프 드 구주와 같다는 게 아니다. 구주가 단두대에서 희생됐던 배경과 강 후보자가 처한 환경이 다르지 않다는 점에 주목하려는 것이다. 반동 정치와 여성 혐오(여혐)다.

혁명 뒤엔 늘 반동 정치가 횡행했다. 특히 성별 문제가 개입될 때 역사는 빠르게 전복 수순을 밟았다. 미국 노예해방을 위해 싸웠던 백인 여성들은 정작 노예해방선언이 열리는 대회의장에 출입이 금지됐다. 프랑스 혁명 뒤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는 구주를 희생양으로 삼았다. 그리고 촛불혁명 뒤 지금 한국 사회에선 ‘강경화 내전’이 벌어지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가 9일 오전 서울 종로구의 한 빌딩에 마련된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성 혐오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여지없이 목도되고 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전문성을 의심하고, 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한다는 합리적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전문성 문제는 강 후보자가 현안 경험이 없어 외교 수장으로 부적절하다는 논리였다. “얼굴마담”(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 “민간 여객선 선장이면 몰라도 전시 항공모함 함장을 맡길 수 없다”(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는 식이다.

관료적 조직 유엔에서 강 후보자의 위상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전직 외교부 장관들이 역량을 입증했다. 개혁의 적임자라며 외교부 노조가 지지 성명을 냈다. 무능 외교로 평생 상처를 안고 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강 후보자 임명을 촉구했다. 더 이상 외교부 장관에게 필요한 전문성이 무엇인지 되묻고 싶다.

그뿐인가.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해 한국당 원유철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 시진핑 주석 앞이라 생각하고 설득해 보라”고 모욕성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사드 배치국은 얼마나 더 있는지, ‘누락해야 할’ 정보는 또 없는지, 누가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을까. 강대국에 끌려다녔던 외교를 벗어나기 위해, 제재가 아닌 소통하는 안보를 위해 오히려 유엔 출신 외교부 장관이 필요한 때라고 대신 답하고 싶다.

도덕성 문제는 분명히 흠이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치명적 흠은 아닌 것 같다. 위장전입은 부동산 투기, 학군 편입용이 아니라고 판명됐다. 증여세 늑장 납부도 황교안 전 국무총리, 노대래 전 공정거래위원장 사례에서 보듯 고위 공직자 낙마 사유는 아니었다.

이젠 강 후보자의 대응 방식까지 문제 삼는 분위기다. ‘어용 지식인’을 자처한 유시민 작가는 “자기 앞가림도 못하면서 국가 앞가림을 어떻게 하나”라며 미심쩍어했고, 야권은 “위기관리 능력이 부족하다”고 몰아세웠다. 도덕성 문제로 공격받았던 이낙연 국무총리,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선방’했고 강 후보자는 선방 못했다는 비교일 수 있겠다. 그러나 잘못은 사과와 반성이 중요하다. 잘 막고, 잘 버티는 대응 방식이 잣대가 될 순 없다.

더 심각한 건 강 후보자 논란이 정치적 흥정 대상으로 거래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인준 문제를 비롯해 추경, 정부조직개편 연계설마저 감지된다. 이는 ‘강 후보자가 (야당의) 존재감을 위한 제물’이라는 엄포나 다름없다. 아무리 정치가 권력을 좇는, 성인지 감수성이 낮은 분야라 해도 ‘딜’이라는 말이 버젓이 나돌 수 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224년 전 올랭프 드 구주가 외롭게 섰던 그 단두대 위에 ‘강경화가 있다’.

정치부 구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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