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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 직함을 가진 문정인 연세대 특임교수의 지난 16일 워싱턴 우드로윌슨센터 연설과 특파원 간담회 발언 내용에 국내 보수층과 야당이 일제히 반발하고 있다.

이들이 문제 삼는 것은 북한의 핵·미사일 활동 중단과 한·미 군사훈련 규모 축소를 교환할 수 있다는 내용과 남북대화와 북·미대화의 조건이 다르다는 것,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과정에서의 문제 지적 등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발언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북한을 대화로 유도하려면 현실적 방안이 있어야 한다. 군사훈련 규모를 축소해 가장 시급한 문제인 북한의 핵·미사일 활동을 중단시키고 대화의 단초로 삼으려는 구상은 상식적이고 타당하다. 남북대화와 북·미관계는 선순환 구조를 이루는 것이 관건이지 공동의 원칙에 지배당해야 할 사안이 아니다.

또 절차적 투명성도, 군사적 효용성 검증도 없이 사드 배치를 결정해 북핵 해결을 어렵게 하고 수십조원의 경제적 피해를 입는 상황을 한·미동맹 때문에 그대로 둬야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번 일의 심각성은 문 교수 발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청와대가 문 교수의 발언을 ‘학자로서의 개인적 견해’라고 선을 그은 것에 있다. 문 교수는 정부의 외교안보 방향과 정책기조를 설계한 사람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 문 교수와 같은 취지의 발언을 한 바 있다. 따라서 문 교수 발언이 ‘개인적 견해’에 불과하다는 청와대의 입장은 더 이상 외교안보 공약을 지키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선거 이후 문 교수는 권한도, 의무도, 심지어 사무실도 없는 비상근 특보로 밀려났다. 청와대 안보실은 문재인 정부 외교정책을 입안했던 인물들이 모두 물러나고 관료 출신들로 채워져 ‘미국 우선주의’로 회귀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 대통령보다 다른 나라 지도자들을 먼저 만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고 주장하면서 현안에 대한 정부의 입장과 전략이 정해지기도 전에 한·미 정상회담을 갖도록 했다. 또한 사드 배치 과정의 문제점을 살펴보기도 전에 미국에 “기존 배치 결정을 뒤집지 않겠다”고 서둘러 약속했다.

정부는 문 교수 발언에 선을 그을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정부의 정책기조로 삼아 대미·대국민 설득에 나서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다른 분야에서는 매우 개혁적 성향을 보이면서 유독 외교 분야에서는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적어도 외교 분야에 관한 한 청와대는 초심을 잃었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simon@ 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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