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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13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김훈의 소설 <언니의 폐경>에서 여성의 생리를 묘사한, ‘문제의 그 단락’을 본 것은 수개월 전이었다. 누군가 자신의 블로그에 ‘말도 안된다’며 올렸던 글에서다. 뭔가에 홀렸던 건지 내 머릿속에 남은 건 이랬다. 자동차 조수석에 앉은, 몸이 불편한 언니가 설사를 해버린 난감한 상황에서 그것을 군말 없이 살뜰히 치워주는 배려심 깊은 동생. 그렇게 몸이 망가져가다 나중에 폐경을 맞게 되는 언니와 동생이 자신들의 삶을 쓸쓸하게 관조하는 이야기겠거니 했다.

잊고 지냈던 그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된 건 최근 그 소설이 소셜미디어를 달구면서다. 그 ‘설사장면’이 뭐가 어떻길래 이 야단법석인가 싶었다. 다시 찬찬히 읽어보고서야 상황 파악이 됐다. 한국 문단을 대표한다는 작가가 객관적인 현상을 묘사하는 수준, 그리고 내 황당한 독해력 수준에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말이다. 해당 부분을 몇차례 곱씹다보니 내 독해력이 그렇게 비루하지는 않다고 항변하고 싶어졌다. 이게 어딜 봐서 생리를 묘사한 것이라 상상할 수 있느냐고. ‘예기치 못한 설사’를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는 쪽이 훨씬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지 않느냐고. 가뜩이나 논란이 뜨겁게 달아오른 상태에서 작가가 “여자를 생명체로 묘사하는 것은 할 수 있지만 인격체로 묘사하는 데는 매우 서투르다”고 털어놓자 여성들의 분노는 폭발했다. 인간의 삶을 다루는 소설가, 게다가 위상을 생각하면 그의 인식 수준은 몹시 실망스럽다. 더 절망스러운 것은 그런 편향적이고 뒤틀린 사고가 여전히 지배적이라는 사실이다.

여자로 태어난 이상 생리는 피해갈 수 없다. 선택권이 없이 생래적으로 부여받은 것이다. 이 사실을 모르는 남자들은 없겠지만 제대로 아는 사람도 드물다. 생리혈이 파란색인 줄 아는 중학생이건, 문단의 거장이건 간에 인식 수준은 별 차이가 없다. 얼마 전 지인들과 모인 자리에서도 이 이야기는 화제에 올랐다. 한 친구가 “생리통 때문에 끙끙대고 있는데 그렇게 못 참겠으면 가서 좀 싸고 오라는 인간이랑 계속 살아야 하느냐”며 포문을 열자 이내 대화는 ‘배틀’ 양상으로 이어졌다. 압권은 30대 중반인 한 후배의 이야기였다. “남편에게 생리대 좀 사다 달라고 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뭐라는 줄 아세요? 출산하고 났는데도 계속 생리를 하는 거냐고 물어요.”

생리에 대한 무지만이 문제가 아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생리, 혹은 생리대라는 단어조차 거북하다는 괴상망측한 엄숙주의까지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여성들이 겪는 고통스러운 현실은 도외시된다. 더 짜증스러운 것은 생리대 광고다. TV 속 생리대 광고는 깨끗함, 순수함을 극도로 강조하며 성적 대상으로서의 환상을 심어준다. 최근 몇 년 새 남성 스타들까지 생리대 광고에 출연하면서 연애 판타지의 정점을 찍는 지경에 이르렀다. 난감하고 고통스럽고 지긋지긋한 여성의 현실은 싹 감춰진 채 남성들의 성적 환상을 지속시키는 데 오히려 충실하다. 한 제품 광고에서 남자 모델이 세련된 목소리로 “그날에도 넌 빛날 수 있어”라고 속삭이는 데선 울화가 치밀었다. 그날에도 빛이 나면 뭘 어쩌려고?

우리 사회에선 오랫동안 남성이라는 성 자체가 권력이었다. 지금도 그로 인한 부작용과 불협화음이 곳곳에서 속출한다. 인격체로는 고사하고 생명체로서의 여성에 대한 이해도 여전히 부족하다. 낮은 출산율을 여성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나 임산부에 대한 몰배려 역시 그 방증이다.

많은 남자들이 “여자 마음을 모르겠다”거나 “여자를 이해하는 게 너무 어렵다”고 습관처럼 말하는데 정말 그런지 묻고 싶다. 귀찮으니까 그저 나 좋을 대로 생각하겠다는 의지를 정당화하는 수단은 아닌가. 대단한 노력을 들일 필요도 없다. 그저 당신이 좋아하는 야구팀이나 축구팀의 경기 결과에 갖는 관심 10분의 1만 쏟아도 충분할 거다.

문화부 | 박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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