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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헌법’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제103조)고 선언하여 법관(판사)의 독립을 사법부의 기본 원칙으로 삼았다. 법관이 지켜야 할 윤리기준과 행위규범을 정한 ‘법관윤리강령’에서도 가장 첫 번째로 ‘법관은 모든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사법권의 독립을 지켜 나간다’(제1조)고 하면서 독립성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독립성’은 두 가지 이유에서 중요하다. 첫째, 독립성은 재판의 공정성이 보장되기 위한 필수적인 요건이다. 공정성은 사법절차에서 지켜져야 하는 절대 원칙이다. 공정하지 않은 판결에 대해 당사자에게 승복을 요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둘째, 법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성장한다. 사회가 발전하고 다양해지면서 새로운 법리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필요한 경우에 기존의 해석이 수정될 필요도 있다. 특히, 사법부가 다수결의 현실에서 외면받기 쉬운 사회적 소수자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최후의 보루로서 그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해석에 의문을 제기하는 다양한 판결이 필수적이다. 자유로운 비판은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첫 번째 방법이다.

그런데 얼마 전, 법원에서 판사의 독립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판사들의 자발적인 학술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우리나라 사법제도의 개선 방향과 관련한 토론회를 마련하자, 법원행정처가 이 토론회를 가능한 한 조용하게 진행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 토론회는 다양한 국제 사례를 통해서 법관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인사제도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로 우리나라의 사법제도에 대한 국민 신뢰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권으로 나타난 상황에서 법관의 독립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하여 꼭 필요한 자리였다.

그런데 법원행정처 소속 고위법관들은 수차례 회의를 거쳐 토론회 발표 내용 중 판사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언론에 배포하지 말라는 등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도 했고, 새삼스럽게 판사들의 학술모임 중복가입을 제한하겠다고 했다. 결국 해당 업무를 담당할 판사가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며 사직서를 내자, 법원행정처는 판사의 법원행정처 발령 당일 다시 원래 근무지로 돌려보내는 초유의 인사발령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법원행정처에 비밀번호가 설정된 ‘판사 뒷조사 파일’이라는 이른바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의혹도 함께 제기되었다. 법원이 조직적으로 판사들의 자율적인 연구활동을 방해하고, 사법부의 독립성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자의적인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는 것은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한 법원의 대응은 더 큰 충격이었다. 대법원장이 전권을 부여한 조사위원회가 만들어졌지만 법원행정처장이 조사를 거부하여 결국 의혹이 제기된 블랙리스트 파일에 대해서 조사하지 못했다. 대법원장의 권한이 하급자인 법원행정처장에게서 막힌 것이다. 결국 전국 각 법원 판사들이 수차례 판사회의를 열어, 법원별로 대표자를 선출하고 사법부 역사상 최초로 전국법관대표회의도 열렸다. 그리고 대표회의에서 블랙리스트에 대한 추가조사를 대법원장에게 요구했지만, 양승태 대법원장은 이를 거부했다. 재판의 공정성을 보장하는 생명이라 할 수 있는 판사의 독립성을 고위법관들이 스스로 허물고서 이에 대해 감추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오늘 사법연수원에서는 2차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열린다. 대표회의를 앞두고 인천지방법원 최한돈 부장판사는 블랙리스트 재조사를 요청하며 대법원장에게 사직서를 제출했고,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 차성안 판사는 다음 아고라 이슈청원 게시판에 판사 블랙리스트에 대한 10만인 청원을 올리고, 눈물로 참여를 호소하고 있다. 법관대표회의 결정에 대한 양 대법원장의 용단을 촉구한다.

조영관 | 이주민센터 친구 상근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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