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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의 목전에서 나라가 혼란스럽다. 그중에도 국회의원, 국회의원 중에도 일부 부동층 국회의원들의 마음이 가장 혼란스러울 것이라 생각한다.

어떤 선택을 하든 국회의원 스스로 여러 요인을 고려한 판단을 하겠지만, ‘기록’에 대해 좀 더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통시적으로 행동하길 바란다. 왜냐면 우리는 이미 예전에 경험해 보지 못했던 ‘망각’ 없는 시대로 진입하여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탄핵의 과정과 결과의 기록은 이미 과거의 다른 사건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새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망각 없는 시대가 시작된 지가 불과 몇 년에 불과하여 아직은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바가 별로 없을 수도 있겠으나,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 진행 중이다. 우리는 사실상 망각 없는 시대의 첫 세대인 것이다. 과거의 기록은 주로 문자를 통해서 후세에 전달되기 때문에 사건과 기록 사이에는 본질적으로 간극이 존재했다. 그 결과 기록자의 생각이 중요하고 영향을 많이 미칠 수밖에 없었다. 세월이 더 많이 흐르면 왜곡 가능성도 높아지고 전문가의 설명 없이는 이해가 어려워지곤 한다. 하지만 지금의 기록은 다르다. 끝없는 영상으로 마치 현실처럼 기록되고 있는 중이다.

3일 오후 강원 춘천시 새누리당 김진태 국회의원 사무실 앞에 시민들이 촛불을 켜 놓았다. 가로수에는 박근혜 대통령 퇴진과 김 의원 사퇴를 요구하는 리본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최근 발언된 ‘촛불도 바람이 불면 다 꺼진다’는 식의 주장은 망각을 기초로 한 과거의 방식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지나면 다 흐려진다’는 주장인 것이다. 이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망각은 사라졌다. 온 세상을 뒤덮은 고해상도 카메라는 점점 더 방대한 사료를 실시간 저장 중이며, 정치인의 모든 발언들도 마치 현실처럼 남아 반복될 것이다. 유효기간도 없으며 누구나, 어느 때나 볼 수 있다.

정보의 접근성은 이미 편리해졌고 앞으로는 더욱 편리해 질 것이다. 수백년 시간이 흘러도 오늘의 탄핵사건에 관심을 둔 사람들은, 마치 오늘을 살듯이 다시 경험하고 목도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국회의원들은 이번 탄핵에 대해 선택을 할 때 편협한 사적 의리나 근시안적인 이익에 따른 선택을 하지 말기 바란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정치인들에게도 좀 더 신중하고 항구적인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이 점을 깨닫고 타인 앞에서 당당하고 후손들에게도 부끄럽지 않을 선택을 하기 바란다.

이경록 |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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