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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상명대학교 예술디자인센터 갤러리에 마련된 이화1동 제1투표소에서 주민들이 비닐 장갑을 낀 손으로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21대 총선이 끝났다. 유권자들은 코로나19에 기죽지 않고 마스크를 쓰고 2000년대 최고 투표율을 기록했다. 전체 판세 예측보다 관심을 가졌던 것은, 우리 과 학생들이 참여한 선거운동 이야기였다. 코로나19 때문에 구인공고가 뜨지 않아 졸업도 미루고 선거운동원으로 알바를 했던 학생의 이야기를 들었다.

영남에서 더불어민주당 깃발을, 호남에서 미래통합당 깃발을 들고 선거를 하는 것은 만만치 않다. 우선 지역주의 때문이다. 첫번째는 역사적으로 구축된 지역주의. 실질적으로는 박정희 정권부터였을 것이다. 경부 발전 축의 동쪽은 성장연합에 포함됐고, 대통령을 5명이나 배출한 대구·경북은 보수우파의 정점에 있었다. 반면 서쪽은 성장연합에서 배제됐고, 군부 쿠데타로 집권을 획책한 전두환 일당은 1980년 5월 광주시민들에게 총을 겨눴다. 호남의 사람들은 ‘그 정당만 빼고’ 좋은 통치를 해낼 수 있는 후보자와 정당을 찾아 전략적 천로역정을 해왔다. 20대 총선에서는 국민의당을 찍었다가 다음에는 더불어민주당에 힘을 실어줬다. 지역주의의 출발이 지배연합이냐, 대안연합이냐에 따라 질적 차이가 있는 셈이다.

두번째 지역주의는 지역의 성장이나 이권을 보장해 줄 후보자와 정당에 투표하는 것이다. 수도권에서는 GTX와 대단지 아파트를, 부울경 같으면 제조업과 미래 먹거리를, 농어촌 도서지역에서는 생활 인프라에 투자해줄 정당을 찍는 식이다. 두번째 지역주의는 한동안 첫번째 지역주의에 흡수되어 왔지만, 지역 간 격차, 특히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가 벌어진 지금 점차 도드라지게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 국회의원이 대한민국 전체의 이해관계만을 위해서 입법을 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지만, 지역의 이해관계를 국정에 반영한다는 의미에서 보면 두번째 지역주의를 무시하면서 ‘나라 전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는 몽상이다. 비례대표제 100%를 하자는 것은 사실 잘 대변되지 않는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는 무시해도 좋다는 소리일 수 있다. ‘일 잘하는’ 지역구 정치인은 자신의 지역 이익을 국가적 어젠다와 조정하고 관철한다. 추세를 보건대 첫번째 지역주의는 해소되어야 하고 해소되고 있으며, 두번째 지역주의는 점차 활성화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구축된 지역주의와 

개발·성장·이권 좇는 지역주의 

찍던 대로 찍는 오래된 표심과 

거기에 균열 내는 이주자 표심 

새 정치지형 만드는 도전 응원


두번째로 고려할 것은 오래된 표심. 자신이 찍는 정당은 자신의 정체성 중 하나일 수 있다. 부모의 정치성향이 이어지거나, 성년기 겪은 정치적 경험이 끝까지 가는 경우도 많다. 여러 정당을 선택해오거나 불만이 있으면 투표하지 않던 ‘산토끼’들은 설득이 가능하지만, 한 정당 찍던 사람들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이럴 때 표심을 바꾸는 강력한 동인은 다름 아닌 ‘이주’였다. 세종시와 혁신도시가 수도권의 고학력자를 대량 이주시키고, 김해 양산신도시로 20~40대가 유입돼 민주당의 새로운 텃밭이 생겨났다. 반대로 서울에선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오니 미래통합당 표심이 강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산업이 쇠퇴하고 청년들이 유출되어 늙어가는 지역은 지역구 획정으로 영향력을 줄이는 것이 아닌 이상 표심이 바뀌기는 쉽지 않다.

같이 모여 ‘치맥’을 했다. 학생은 패배한 지역구 선거운동원이 됐다. 그래도 다음 번에 기회만 되면 또 힘을 보태고 싶단다. 선거과정이 힘들었지만 의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선거운동을 하면서 ‘넘지 못했던 구역의 선’을 넘어보고 싶단다. 민주당 후보는 통합당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은 시장 근처에 가면 맞은편 구역으로 자리를 피했단다. ‘불필요한’ 마찰을 피할 수 있다는 고려 때문이었다. 사실 마찰도 별게 없는 게, 노련한 기초의원 등이 다가가서 조곤조곤 설득하면 ‘우리 편’ 만드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내가 일하고 머무는 동남권의 표심도 당선인 수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많이 움직였다. 젊은 층의 표심은 수도권과 동기화되는 중이다. 아슬아슬한 표 차이로 패배한 여당의 성적표에는 지난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마음을 줬던 사람들의 실망이 묻어난다. 아직 혹은 여전히 기대에 실력으로 부응하지 못한 것. 달리 말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을 것이다. 한번 선을 넘은 사람은 또 넘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정치적 이상에 부응하지 않는 국민을 꾸짖으며 정치평론을 해온 사람은 참 많았다. 하지만 ‘험지’에서 새로운 정치지형을 만든 기초는 평론가의 준엄한 꾸짖음이 아니라 소외된 사람들을 조직하고 소외된 지역에 들어가 ‘넘지 못했던 구역의 선’을 넘어 돌파하는 사람들이 쌓은 것이었다. 그 학생과 어디선가 만나게 될 정치지망생에게 ‘계란으로 바위 치기’는 그만하라고 해야 할까? 매번 판판이 지지만 또 출마하며 지역을 누비는 후보와 운동원의 노력이 가치 있다고, 김부겸의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려주고 싶다. 차근차근 도전해 흐름을 만들고 자기 지역을 살려보려는 사람들을 응원하고 후원하려 한다.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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