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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의 그림마당]2020년5월11일 (출처:경향신문DB)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한 강도 높은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가 종료되고 완화된 단계인 생활 속 거리 두기가 시작되자마자 5월8일 이태원 클럽 관련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신규 확진자가 두 자릿수 인원을 넘어섰다. K방역은 다시금 광범위한 검사를 통해 신규 확진자를 줄여나가고 있다. 방역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2차 유행’이 가을 혹은 이른 겨울 온다면 상황이 더 악화될지도 모르겠다.

클럽과 주점을 돌아다니는 청년들을 향한 꾸짖음이 많다. 방역 당국과 시민들의 노력으로 좋은 상황을 겨우 만들었는데, 청년들의 방종으로 이 꼴이 났다는 것. 젊고 건강한 이들의 혈기로 노인과 기저질환이 있는 환자들이 피해를 본다는 것.


전염병 방역 목소리 정당하지만

거리 두기의 지루함은 긴장 상태

소비 살아나야 시민들도 살아가

경제·사회 방역 병행될 수밖에

근거 없는 낙관적 전망은 경계를


대학가 맛집 거리를 저녁마다 다녀봤다. 밤이 깊어질수록 더 많은 청년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일행들은 ‘마스크 프리존’이라고 했다. 무리 중 모두 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경우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식당으로 향했을 때 들어갈 자신이 없었다. 각 테이블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손님도 빽빽했기 때문이다. 물리적 거리 두기 실천으로 갑갑하게 보냈던 시간에 대한 보상을 받겠다는 의지로 보였다.

방역의 목소리는 정당성을 갖고 있다. 누군가의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을 만큼 치명적이며, 게다가 밀폐된 공간이라면 약간의 비말을 통해서도 전파가 가능한 이 병에 대해 전염을 유발하는 모든 행동을 삼가라는 주장은 옳다. 하지만 정당성이 얼마나 힘이 있을지에 대해 주저하게 된다. 나들이를 가기에 날씨가 좋다. 온라인 자아가 비대해진 사회지만, 사람들은 가까운 지인 몇몇은 만나야 삶의 의욕을 찾을 수 있다. 다양한 모임에서 또래 집단과 선후배를 만나는 것이 대학 강의와 일만큼 중요한 청춘들에게 집 안에 가만히 있는 일은 답답하기 그지 없다. 게다가 경제·사회 방역도 해야 한다. 소상공인과 특수고용노동자들을 살리려면 소비가 살아나야 한다. 오프라인 지역사회 소비용으로 설계된 긴급재난지원금이 많이 쓰이는 부분은 ‘먹을 것’이고 한국인들은 모여서 먹는 것을 좋아한다. 방역은 역설 속에 진행될 수밖에 없다.

“올해만 있냐”는 반문도 옳다. 그러나 통신망 빅데이터가 보여주듯 한국인들은 3~4월 강도 높은 거리 두기를 실천해 왔다. 이제 지긋지긋해진 것이다. 국민 모두에게 초인이 되라는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감염되지 않을 확률이 감염될 확률보다 높다는 것에 기대어, 사람들은 사회적 인간의 본성 대로 ‘사회적 관계 맺기’를 늘려갈 것이다. 이태원과 홍대는 징후일 따름이다.

전염병 확산에 대한 우려와, 물리적 거리 두기에 대한 시민들의 지루함은 긴장 상태다. 자극이 전해질 때마다 평형은 깨지고 방역에는 과부하가 걸리고 시민들의 불만은 늘 수밖에 없다. 강제력을 동원해 미국과 유럽 혹은 중국 우한처럼 ‘봉쇄’를 선택하거나, 많은 처벌 규정을 늘려 물리적 거리 두기를 강제할 경우 한국이 자랑한 ‘K방역’의 민주주의와 투명성이라는 가치에 반하게 된다.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여전히 기댈 것은 질병관리본부와 의료진의 헌신밖에 없다. 정부는 백신 개발과 치료제 개발에 총력을 다하라고 주장하지만, 신약 개발은 높은 수준의 기술축적이 필요한 데다 원하는 결과를 들인 시간에 비례해 나오지 않는 불확실성의 영역이다. 코로나19에 대한 과학적 지식은 여전히 부분적이다.

그사이, 사회는 멈춤 없이 재편되고 있다. 사회의 약한 고리가 드러나는 것에 맞춰 긴급재난지원금, 소상공인 긴급 대출, 고용유지지원금이 지급된다. 당분간 지속될 언택트 사회의 특성, 전염병이 생태계 변화가 유발한 문제라는 진단에 착안하여 일자리 창출과 산업의 미래 먹거리 개척을 위한 뉴딜이 기획되고 있다. 시민들은 화상 모임과 마스크와 주먹 인사를 통해 언택트 사회에 맞는 어울림의 방식을 만들어가고 있다.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기 전까지 ‘코로나19와 함께’ 한동안 지루하게 살아야만 한다. 전염병 방역과 경제·사회 방역은 병행될 수밖에 없고, 과단성 있게 할 수 있는 일은 사회의 약한 고리에 대한 지원뿐이다.

필요한 것은 정책 당국의 ‘절제되고 조심스러운 말’이다. 미래에 대한 근거 없는 낙관적 전망은 불확실성을 일으키고 경제 방역, 사회 방역 모두를 위태롭게 한다. 전염병 방역을 넘어 경제 방역 단계에 왔다는 이행설, 학교가 대면 학기 준비가 잘되었다는 과신이 다스려지지 않는다. 청년들의 혈기는 그런 분위기에서 튀어나왔다. 메시지를 단속하고 다양한 현안을 차근차근 조율하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의 방역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래야 청년에 대한 비난과 소수자 혐오 등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고, ‘포스트 코로나19’라는 새로운 사회의 모습도 덧나지 않게 구성될 수 있다.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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