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사회적으로 글을 쓰는 것의 허망함을 지금보다 더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말도 감염의 확산을 막을 수 없고, 어떤 말도 감염으로 만들어지는 여파를 감당해 낼 수 없다. 그럼에도 무엇인가를 써야 하는 순간, 전해야 하는 말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1월 말부터 전염이 시작된 코로나19는 2월 초순을 지나 정체돼 ‘안도’의 한숨을 쉴 만하니 곧바로 ‘창궐’의 수순을 밟았다. 신흥종교 신천지의 포교 방식이든, 중국인들을 ‘원천봉쇄’하지 못한 효과가 늦게 발생했기 때문이든, 결과는 나쁜 쪽으로 전개됐다. 확진자 수는 600명을 넘어섰고, 외부인 감염이 아닌 지역사회 감염이 사실상 확정된 상황이다.

무엇이, 누가 이 사태를 만들어 냈는지 다양한 설이 떠다닌다. 중국인의 입국을 막지 않은 정부냐, 몰래 병을 옮긴 신천지 환자냐. 탐정의 언어를 쓰는 사람들은 신천지와 중국을 엮어서 다양한 ‘소설’을 쓴다. 더불어 ‘텅 빈 거리’의 풍경이 전파되고 있다. 가만히 앉아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상을 다 모으면 여기는 지옥이다. 잠재적 전파자들이 국경을 넘나들고 신흥종교 신도들이 다단계 네트워크를 오가며 선량한 시민들을 전염병으로 몰아넣는 상황.


얄팍하고 자극적인 이야기로

‘선지자’들이 종말론 쓰는 사이

일상을 사는 수많은 시민들은

자기의 역할을 하면서

의연하게 대응하고 있다


3가지의 이야기가 시민들에게 제공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정부가 전염병의 창궐을 막고 시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했고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둘째는 질병의 전파 속에서 국가의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했어야 하고 어떻게 앞으로 정비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부분, 즉 보건 행정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다. 셋째는 누가 어떻게 노력하며 싸워 나가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필요한 이야기는 모조리 빠지고 불신과 혐오를 조장하는 언어만 넘친다.

기시감이 든다. 2015~2016년 조선산업은 어려움을 겪었다. 해양플랜트 공정 지연 때문이었다. 싼 단가에 수주했고 생산 실정에 안 맞는 도면과 자재를 준비했다. 충분한 인력과 노동량을 산정하지 못했다. 먼저 할 일이 삐걱대면 뒤에서 할 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선행 공정에서 제대로 마치지 못한 일은 (방역을 막지 못한 것처럼) 밀려만 왔고, 일은 훨씬 복잡해지고 어려워지고 위험해졌다.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수십 명이 할 일을 수천 명의 일용직 ‘물량팀’을 ‘갈아 넣어’ 해결했다(질병관리본부, 선별진료소와 음압병동의 의료진처럼). 퇴근을 못하고 설계실에서 밤을 새는 엔지니어, 현장을 사수하겠다며 작업구역을 지킨 노동자들도 현장에서 싸움을 벌였다. 많은 논평가들과 언론은 “분식회계하고 시장을 교란하며 저가 수주를 하더니 저 꼴이 났다”며 냉소했다. “국민혈세 넣지 말고 청산하라”고 기회가 될 때마다 주장했다. 밤을 새며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싸우는 사람의 목소리는 그저 ‘텅 빈 조선소 앞거리’의 사진으로 대체됐다. 하지만 현장에서 싸우는 사람들은 무력하지 않았다. 그저 글이 그들을 ‘좀비기업’을 다니는 ‘좀비’라고 낙인찍었을 뿐이다.

2020년. 얄팍하고 자극적인 이야기로 제갈공명을 자처하는 ‘선지자’들이 정부와 사회를 믿지 않고 종말론을 쓰고 있는 사이, 일상을 사는 수많은 시민들은 자기의 역할을 하면서 의연하게 대응하고 있다. 휴게소 화장실에서는 손 씻는 동안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를 2번 불러야 한다며 어린아이가 아빠에게 노래를 가르친다. 손자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자 할머니는 아이를 돌봐야 한다며 함께 병동으로 들어갔다. 대구에서는 100명의 의료진이 상황을 타개하겠다며 동산병원으로 향했다. 배송량이 늘어났다는 ‘로켓배송’을 책임지는 ‘쿠팡맨’들은 ‘감염지역’을 돌아다니며 불안에 떠는 시민들에게 생필품을 전달하고 있다.

지난 21일 경남 지역언론인 경남도민일보는 코로나19 대응보도체제로 전환하며 대응 원칙을 발표했다. 막연한 불안감을 주는 과잉보도, 용어 사용에 주의하겠다고 한다. “언론 종사자가 감염병 전파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취재원칙을 정하고 실천”하겠단다. 무엇이 시민들에게 불안, 무력감, 불필요한 혐오를 안기는지에 대한 성찰에서 출발한 원칙이다.

방역과 의료 현장을 지키며 싸우는 사람들은 이러쿵저러쿵 따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오로지 한 명이라도 더 감염되지 않도록, 한 명이라도 더 치료할 수 있도록 애쓰고 있다. 정부의 실책, 신천지라는 신흥종교의 사회적 파급, 방역시스템의 허점에 대해서 잊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책임은 반드시 정확히 물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더 필요한 글은 현장에서 싸우는 사람들을 응원하고, 보건시스템이 잘 작동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의 가이드를 주고, 불안해하는 시민들에게 꼭 필요한 정보를 주고 안심시키는 것이 아닐까 한다.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