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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산으로 연기되었던 초·중·고 등교가 지난달부터 진행되었다. 여론을 보면 집단감염이 전개되는 수도권에서라도 등교를 멈춰야 하는 것 아닌가, 입시가 그렇게 중요하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실제로 학부모 설문을 하면, 결과는 의아하게 나오기 일쑤다. 등교를 희망하는 학부모가 많았다. 입시와 연계된 고·중3의 학부모만 그러리라 여겨졌지만, 실제로는 다수가 아이의 등교를 바랐다.
몇 달 전 SNS에서 많은 사람에게 회자된 포스터 한 장을 봤다. 어느 집 엄마가 써 놓은 ‘코로나19 방학 생활 규칙’이었다. 5개의 조항은 “주는 대로 먹는다” “TV 끄라고 하면 당장 끈다” “사용한 물건 즉시 제자리” “한 번 말하면 바로 움직인다” “엄마한테 쓸데없이 말 걸지 않는다”였다. 말 안 들으면 “피가 ‘코로 나’온다”는 경고가 쩌렁쩌렁하다. 내 친구들은 집 안에서 아이와 몇 달 동안 하루종일 씨름한 이야기를 단체채팅방에 공유한다.
경남 창녕 어린이 학대 사건은 다른 종류의 경고를 전달한다. 9세 아이는 집에서 허드렛일을 강제로 맡고 학대에 시달렸다. 아이는 집은 가기 싫고 학교는 가고 싶다고 한다. 어떤 아이에게는 전염병보다 자신을 괴롭히는 가정이 더 무서울 수 있다. 학기가 평상시 일정대로 개학했다면 조금이라도 빨리 조치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전염병 창궐로 밖에 나가지 못하고 엄마와 아빠와 아이가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드러나는 문제가 “아이는 누가 돌보냐”, 즉 보육의 문제다.
외벌이·맞벌이 부모 모두 발동동
‘학원 뺑뺑이’ 이면에 있는 호소는
보육시설 충분히 늘려달라는 것
공보육 시설 급진적으로 확충하고
어린이집·유치원 관할권 정비도
외벌이 가정에서는 엄마가 아이를 전업으로 보니 걱정 없지 않냐 하지만 그렇지 않다. 아이가 아프거나 하면 혼자서 해결할 수 없을 때가 부지기수다. 남편이 못 돌보면 조부모 도움이 필요해진다. 옛적을 회고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땐 마을과 친족 모두가 아이를 봤다. 조부모는 물론 동네 사람들이 넘어지는 아이, 싸우는 아이, ‘지지’를 먹는 아이를 지켜보고 개입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간섭과 참견이 아이들을 돌본 것이다. 엄마 혼자 ‘독박 육아’를 했던 시절은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가구가 상호 분리된 아파트가 주류 주거형태가 되고, 간섭에 대한 피로와 불신이 가득 차 있는 2020년 한국에서 다시 마을 공동체를 복원시켜 아이를 돌보자는 방향이 주류가 되기는 쉽지 않다.
맞벌이 가정 관점은 동원할 자원이 아이의 조부모와 보육서비스업밖에 없다. 예전보다 결혼을 늦은 나이에 하면서 조부모도 더욱 늙었다. 손주 보다가 다쳐서 아이 돌보기를 겁내는 조부모도 많다. 조부모 도움이 어려우면 어린이집과 유치원 등하원을 부부 중 누군가는 직접 시키거나 도우미를 불러야 하는데 만만찮은 일이다.
그나마 비용을 감수할 수 있는 가정의 이야기다. 문 앞에서 자신을 찾으러 올 엄마·아빠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아이의 모습과 부모의 조바심은 흔한 풍경이 됐다.
지난해 서울시 의회가 진행한 ‘저출생 관련 서울시민 여론조사’는 “아이는 누가 돌보냐”의 문제가 더 커졌음을 보여준다. 젊은 남성들은 비용 때문에, 여성들은 경력단절을 첫째 이유로 결혼·출산·육아를 꺼린다. 그런데 육아를 하거나 육아가 임박했을 때 하는 걱정은 보육으로 수렴된다. 보육시설이 없는 게 가장 큰 고충이고, 육아시설 확충이 가장 큰 바람이다. 30대 중 55%가 교육정책을 물었을 때 방과 후 교육기능을 확대해 달라는 의견을 피력한다. 교육의 질과 사교육비 절감도 중요하지만 “아이를 맡아 달라”는 호소가 크다. ‘학원 뺑뺑이’의 이면에는 아이를 퇴근할 때까지 맡아 달라는 호소가 있는 것이다.
아이 관점에서도 집 밖으로 나와 다양한 아이와 어른을 만나 사회화의 과정을 겪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집 안에서 부모(주로 엄마)와 지내야 안전하다는 관점은 이론적으로, 실천적으로 맞지 않다. 성취 지향적이어서 업무를 잘하려는 한국인 엄마·아빠들은 많이 있다. 집에 일찍 갈 수 있도록 노동규범을 바꾸고 시차출퇴근을 확대하고 육아휴직을 보편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가와 사회가 책임지고 ‘아이를 보는 것’의 인프라를 시급히 확충하는 것이 정책적으로 효과적이다. 그걸 방치하니 모든 문제가 젠더 문제가 되어 성대결을 키우고, 결혼과 출산에 대한 청년들의 두려움만 커진다. 국공립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상상할 수 있는 한도까지 확충해야 한다. 싱가포르처럼 오전·오후 담당교사를 뽑아 탄력 운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국공립 보육시설 비중이 높은 세종시의 출생률은 전국 평균을 상회한다.
정부 내 관할권도 정비할 필요가 있다. 어린이집은 보육이라 보건복지부, 유치원부터는 교육의 관점에서 교육부로 관할권이 갈린다. 어느 쪽이든 일관된 보육 확대의 책임을 가져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급진적인 공보육의 강화가 저출생의 대책이자 아이들을 잘 길러낼 수 있는 실질적인 ‘포스트 코로나 뉴딜’ 중 하나라고 본다.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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