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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남자야, 이게. 이 XXXX야! 이게 한국남자라고. 너 뒤질 준비해.”
BJ ‘갓건배’ 살해협박 사건 당시 갓건배 추격 방송을 시작하면서 BJ ‘이병욱’이 한 말이다. 그는 화를 참지 못하고 욕설을 퍼부으며 정의구현을 위해 길을 나선다. 무엇보다 갓건배가 “한국전쟁 참전용사를 욕보였기 때문”이었다. 그와 동행했던 ‘BJ특수반’은 갓건배를 처치하는 것이 “대한민국을 일제강점기에서 해방시키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문득 궁금해졌다. 그가 생각하는 한국남자란 도대체 무엇일까?
흥미롭게도 그들은 혼자가 아니라 자신들이 속해 있는 BJ 네트워크 안에서 집단으로 움직였다. 그 네트워크의 이름이 ‘느금마 엔터테인먼트’다. 느금마 엔터는 명확한 실체는 없지만 느슨한 동아리라 할 만한 집단이다. 여기서 ‘느금마’(느그 엄마)는 상대방의 어머니를 비하하는 말이다. 느금마 엔터는 ‘신태일 패밀리’라고도 불린다. 유명 BJ ‘신태일’이 중심이기 때문이다. 신태일은 자동차로 자기 다리를 깔아뭉개거나 형광등을 씹어 먹고, 지하철 객차 한가운데서 부탄가스레인지로 라면을 끓이는 등 엽기적인 행각으로 인터넷에서 인기를 끌었다. 그는 한 공중파에 출연해 이런 콘텐츠로 한 달에 1000만원 이상의 수입을 벌어들인다고 밝혔다.
느금마 엔터에는 갓건배 사건 때 벌금 5만원으로 훈방 조치된 ‘김윤태’, 갓건배 추격에 나섰던 이병욱, 신태일이 이 사건으로 계정정지를 당한 후 1인자로 부상하고 있다는 ‘푸워’ 등이 소속되어 있다. 이들은 “형-동생” “회장-사장” 하는 사이로 서로의 유튜브 방송에 출연하기도 하고, SNS에 사생활을 흘려 자신들을 둘러싼 가십을 만들기도 한다. 느금마 엔터가 갓건배 추격에 나섰던 결정적인 계기는 갓건배와 신태일이 방송을 통해 싸움이 붙었기 때문이다. 느금마 엔터는 이처럼 서클을 구성해서 영향력을 행사하며 적지 않은 돈을 번다. 그러다보니 이너서클이 되려고 주변을 배회하는 (그들 표현으로) ‘찌끄레기’들도 생긴다. “대한민국 해방” 운운했던 BJ특수반은 그런 주변인 중 하나다. 그는 갓건배 추격 방송에서 자신이 “신태일 따까리”가 되고 싶었지만 거부당했고, 이제 독립적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갓건배 건에 합류하여 스스로의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그들 중 하나’가 되려고 했다.
여기까지 오면 “이게 한국남자야”라는 선언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게 된다. 그들은 역사의 고통을 이해하는 보편 주체로 터프한 한국남자를 내세우고, ‘잘나가는 놈’ 중심으로 위계를 세워 남성연대를 구축한다. 그리고 그것을 사업으로 연결시킨 뒤, 대한민국을 위한 일이라고 포장한다. “한국남자-형제애-패밀리-엔터테인먼트-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확장은 낯설지 않다. 한국사회의 남성연대가 작동하는 방식의 축소판인 것이다.
다만 이 연쇄의 연결고리를 이어주는 ‘남자다움’의 성격은 완전히 달라졌다. 예전처럼 나라와 가족을 지킨다거나 가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등의 전통적인 가치로는 그 성격이 규정되지 않는 것이다. 당연하다. 그로부터 아무런 자원을 얻을 수 없는 현실 아닌가.
이 파국의 세계에서는 오히려 “나는 잃을 것이 없다”는 완전히 허무주의적인 태도와 “고로 나는 막 나간다”는 기이한 열정이 버무려진 기행이 남자다운 것이며, 그로부터 뽑혀 나오는 현금이야말로 최고의 가치다. 이 시대의 남자다움이란, 다른 한편으로는, 시계나 차처럼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에 부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10대 남성들의 장래희망 1위가 BJ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남겨진 자원이 없다는 박탈감을 느끼는 10대 남성들은 느금마 엔터를 하나의 삶의 모델로 삼는다. 실제로 신태일 역시 그렇게 ‘가진 것 없는 10대’에 활동을 시작해서 ‘아우디를 타고 여자친구에게 100만원씩 용돈을 주는 한국남자’가 되었다. ‘남자다움’의 중층적인 의미망을 분쇄하지 않고 유튜브 탓만 해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한국남자란 무엇인가? 이제 그 대답을 다시 써야 할 때다.
<손희정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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