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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연휴의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 월요일에 나는 부모님과 함께 요양원에 계신 할머니를 만나러 갔다. 할머니는 시골에서 지내시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는 서울에서 큰삼촌이나 막내 이모와 번갈아가며 같이 사셨다. 그러다가 한 3년 전부터 부쩍 아파지신 할머니를 이런저런 방법으로 자식들이 함께 돌보다가, 할머니에게 치매증상이 나타나자 몇달 전부터는 요양원으로 모시게 되었다.
시래기같이 바싹 마르고 늘어진 몸으로 휠체어를 타고 있는 할머니를 뵈니 갑자기 눈물이 차올라 얼른 “할머니, 저 왔어요!” 하고 손을 덥석 잡았다. 보고 싶었던 할머니와 준비해온 과일도 같이 먹으며 한참을 정답게 얘기하고 있는데 할머니가 대뜸 엄마 보고 “승윤이는?” 하며 내가 어디 있는지 묻는다. 그 말에 엄마가 깔깔 웃으며 “승윤이 여기 있잖아”라고 말씀하시고는 할머니 손 위를 문지르는데, 문득 엄마 손을 물끄러미 보게 된다. 나에게 있어 할머니는 늘 의존적이거나 조금 엉뚱하셨는데, 그래도 나는 어쩐지 할머니가 항상 좋았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할머니를 언제나 걱정하고 때론 다그치다 울고 웃기도 하셨던 우리 엄마의 모습을 내가 무척 사랑하고 있던 것 같다. 그런 엄마가 할머니를 요양원으로 모시기로 결정했을 때, 나에게 “사실 나도 내 노후를 생각 안 할 수가 없어”라고 가늘게 말씀하셨다. 생각해보면 아흔 인생을 살아온 할머니를 뵈러 온 우리 부모님도 곧 칠순이 되는 노인이시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고령화가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나라 중 하나다. 1990년 5% 정도였던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이 앞으로 8년 후인 2025년에는 다섯 명 중 한 명으로 늘어난다. 살아계신 노인을 부양하는 세대도 빠르게 노인으로 채워지고 있다. 노인들의 성인 자녀도 노인이고, 요양시설 등에서 노인을 돌보는 사람들도 중고령자들로 채워지고 있다.
이런 한국 노인층의 특징 중 하나는 일하는 노인들이 많다는 것, 다른 하나는 가난한 노인들이 많다는 것이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심각한 수준인데, 전체 노인의 절반 정도가 빈곤하다. 경제활동에 참가하는 노인의 비율도 세 명 중 한 명 정도로 이 또한 회원국 중에서 가장 높다. 유럽의 노인들은 연금을 받으며 제2의 인생을 설계해 보기도 한다지만 한국의 공적연금제도는 시행시기도 훨씬 늦어 국민연금에 포괄되는 노인의 수가 아직 충분하지 않다. 게다가 급여수준도 낮아 노인들은 자신의 노후를 위해, 그러니깐 벌이를 위해 계속해서 일하고 싶어 한다. 실제 조사결과를 보면, 경제활동 참가 노인 10명 중 8명이 생계비 마련을 위해 일을 한다고 응답하였고, 또한 노인들의 소득원천에서 근로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63% 수준으로 OECD 국가 평균 24%에 비해 훨씬 높다.
빈곤하고 연로한 노인을, 자기 소득보장도 충분히 안되어 노인 된 자식들이 돌봐야 하니 돌봄에도 공백이 생기게 된다. 과거에는 젊은 자식 세대가 가족 내 노인을 부양했다. 그러나 가족 구조가 변화하고 경제 성장도 둔화되면서 노인 부양과 돌봄은 성인 자식세대에도 큰 부담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게다가 성인 자녀들도 이제 같이 고령화되고 있는 것이다. 급격히 증가하는 노인들의 돌봄 공백을 돌봄 서비스 확대로 해결해보려 해도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지난 10년간 돌봄 없이 사는 독거노인의 비율도 급격히 증가해서 네 명 중 한 명의 노인은 혼자 살고 있다. 이들에게 돌봄은 둘째 치고 소득도 넉넉지 않다.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폐휴지 줍는 노인들,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노인 자살률은 우리 할머니가 살고 있는 나라가 어떤 곳인지 보여준다. 나이 든 부모세대와 노인 된 우리 세대가 같이 살게 될 초고령사회에서는, 노인들의 먹고사는 문제와 돌봄은 좀 나아지기나 할지, 그 모습이 참 요원하기만 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옆으로 요양원들이 곳곳에 참 많이도 보인다. 차 안에서 올려다본 가을하늘 위에 몽실몽실 떠가는 구름을 보고 있으니, 언젠가 시골에서 우리 할머니가 하얗게 뿜어내던 담배 구름이 생각난다. 어린 시절 그 구름을 재미있어 하니 “뭘 그리 쳐다보냐” 하며 씨익 웃으셨던 우리 할머니의 천진난만한 얼굴이 저 하늘 구름 사이로 빠끔히 보인다.
<이승윤 이화여대 교수 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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