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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는 모 대학에서 열린 ‘학문 후속세대의 이상과 현실’이라는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했다. 발표자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못하고 ‘작자 미생’의 발표문을 제출했고, 학회의 간사가 그것을 대신 읽었다. 

거기에 몇 년 전의 나와 닮은 여러 대학원생이 있었다.

3년 전까지, 내 신분은 대학원생이었다. 정확히는 박사 과정 ‘수료생’, 학위 취득에 필요한 학점을 모두 이수하고 논문 인준만 남은 단계를 가리킨다. 나 역시 논문을 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연구재단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신진연구자 지원사업’이라는 프로젝트 공모가 있다는 이야기를 어깨너머로 들었기 때문이다. 과연 연구자들이 신청할 수 있는 크고 작은 프로젝트 과제들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곧 무언가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심정이 되었다. 한국연구재단에서 규정하는 신진연구자는 박사학위 소지자부터였다. 수료생인 나는 애초에 지원 자격이 안되었다.

그 시기의 나는 스스로를 ‘연구자’로 규정했다. 신진이나 후속이라는 수식어를 굳이 붙이고 싶지 않았다. 학회에 논문을 제출할 자격은 과정생과 수료생 모두에게 있고 논문을 투고하고 나면 정규직과 비정규직, 교수와 학생을 가리지 않고 함께 심사가 이루어진다. 나는 연구의 장에 이미 편입된, 그 생태계의 일원이었다. 연구자는 연구 성과로 말해야 한다는 그런 믿음이 있었다. 물론 나는 평범한 연구자였고 눈에 띄는 성과를 낸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즐거웠고, 연구사에 하나의 단어나 한 줄 정도를 보탠다는 자부심으로 계속 버텼다.

나는 기독교라는 종교가 한국 근대문학의 형성에 미친 영향을 규명하는 연구를 하고 있었다. 교회에 다니는 것도 아니었지만, 교회사에서도 문학사에서도 소외된 그 주제가 무척 흥미로웠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나는 ‘이 논문을 필요로 할 만한 기관이 어디 있을까’ 하는 것을 고민했다. 당연하겠지만 ‘교회’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몇몇 대형교회에 보내는 e메일을 썼다. “월 50만원 정도의 연구비를 지원해 준다면 기독교가 한국 근대문학의 형성에 미친 영향을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규명해 보겠다” 하는 내용이었다. 

왜 50만원이었냐고 하면, 그보다 더 많은 금액을 부를 엄두가 나지 않았고 그보다 더 낮은 금액이면 받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결국 e메일은 보내지 않았다. 쓰게 웃으면서 이럴 시간에 논문이나 한 줄 더 쓰자고 마음먹었다. 나중에 친구들에게 농담 삼아 그 이야기를 하자 그들은 “잘했어, 어차피 답장도 안 왔을 거야”라고 말했다. 한국연구재단에 연구자로서 연구계획서를 낼 기회조차 없었다는 사실이, 나는 가장 서글펐다.

한국연구재단은 연구자들을 지원하는 기관으로서 그 설립 근거를 가진다. 그렇다면 가장 지원이 절실하게 필요한 연구자 집단이 어디인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젊은 연구자들이 적어도 자신의 연구로 생계를 꿈꿀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지금의 과정생과 수료생들은 지도교수가 진행하는 연구에 선별적으로 소속되는 것만 가능하다. 프로젝트 공모 방식을 ‘위로부터 아래로’가 아니라 ‘아래에서도’ 가능한 생태계로 재편해야 한다.

그에 더해 연구재단뿐 아니라 대학교 역시 대학원생들의 연구 지원을 책임져야 할 기관이다. 대학은 정규직 교수들에게는 교비로 연구비와 거마비 등을 지급하지만, 대학원생들에게는 그런 혜택이 거의 없다. 

다만 대학원 총학생회 학술국에서 학기 초에 공모를 해서 100만원 내외의 연구비를 집행하는 일은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학생회비를 모아 마치 곗돈처럼 나누는 일이지 연구비라고 해서는 안된다. 각 대학에서는 학기마다 대학원생들이 자신의 논문 계획서를 제출하고 연구비를 지원 받을 수 있는, 그러한 연구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것이 양적으로든, 질적으로든 보다 높은 수준의 연구 성과를 불러올 것이다.

대학원생도 연구자이고 연구 생태계의 일원이다. 토론회에서도 가장 강조한 부분이지만, 그들은 제도로서 보호받아야 하고 그 안에서 무한한 기회를 약속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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