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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회학자 엄기호는 “편만 남고 곁이 파괴된 사회”를 분석한 <단속사회>(창비)를 펴냈습니다. 단속은 ‘쉴 새 없이 접속하고 끊임없이 차단하는(斷續)’ 것을 의미합니다. 같고 비슷한 것에는 언제나 접속해 있지만 낯선 것(타자)이나 공적인 것과는 단절합니다. 또한 자신의 “의견을 아예 제시하지 않거나 불가피한 경우에만 최소한으로 드러내기 위해 자기검열 혹은 스스로를 단속(團束)하는 경향”이나 삶의 연속성을 잃은 “ ‘연속의 반대’로서 단속의 뜻도 갖고 있습니다. 요약하면 ‘동일성에 대한 과잉접속’과 ‘타자성에 대한 과잉단속’으로 양극화된 사회가 단속사회입니다.
이런 사회가 된 것은 스마트폰과 스마트패드, 스마트TV를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호모스마트쿠스’의 등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새 종족은 스마트기기의 재생장치를 이용해 자신들이 필요한 정보만은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소비합니다. 시간을 놓치면 볼 수 없었던 텔레비전 연속극이나 라디오 프로그램마저도 그들은 좋아하는 것만 연속으로 듣습니다. 아니 이제 라디오를 버리고 자신의 구미에 맞는 ‘팟캐스트’만 열렬히 듣습니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다운로드 세대가 아닌 업로드 세대입니다. 주어진 정보를 일방적으로 소비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데이터베이스화된 정보 중에서 자신의 마음에 드는 정보를 찾아 그것들을 연결해 ‘2차적 생산’을 한 다음 이 세상에 유일한 그것을 열렬히 즐깁니다. 아즈마 히로키는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문학동네)에서 이를 ‘데이터베이스적 소비’라고 일컬었습니다. 특히 날로 진화하고 있는 스마트 기기가 제공하는 다양한 기능이 독자와 콘텐츠 제공자의 새로운 관계성을 만드는 결정적인 열쇠가 되고 있습니다.
요즘 한 명의 철학자가 신드롬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철학자 강신주는 처음에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그린비) 같은 철학서로 실력을 인정받다가 <철학이 필요한 시간>(사계절)이 인문서로서는 단시간에 10만부를 넘겼습니다. 이 책이 인기를 끌자 강연은 크게 늘어났습니다. 체제비판적인 그가 삼성경제연구소의 강연자로도 초대받았습니다. 이후 2011년 MBC 라디오의 <김어준의 색다른 상담소>(‘색담’)에 패널로 초대됩니다. 이 프로는 6개월 만에 폐지됐지만 <색담>이 2012년에 김어준의 ‘벙커1’에서 <강신주의 다상담>으로 거듭나면서 강신주는 패널에서 진행자로 격상합니다. 이렇게 강신주라는 브랜드가 확실하게 형성된 다음 <아침마당> 등에 출연하다가 <힐링캠프>에까지 등장했습니다.
강신주가 <힐링캠프>에 등장하자 그의 책은 곧바로 인기가 폭발했습니다. <강신주의 감정수업>(민음사)은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잠시 오른 이후 줄곧 5위 이내에서 맴돌고 있습니다. 물론 그의 다른 책들도 인기가 급증했습니다. 소셜미디어에서도 그와 ‘접속’하려는 이들이 많습니다. 반면에 강신주의 ‘힐링 인문학’은 ‘성령부흥회’와 강력한 유사성이 있다거나 ‘자아성형산업’에 불과하다는 지식인들의 극단적인 비판도 등장했습니다.
강신주에게 열광하게 만드는 무기나 그의 안티들이 비호감으로 꼽는 것은 모두 돌직구와 막말의 경계를 쉼 없이 넘나드는 그의 ‘독설 화법’입니다. 그의 안티들은 철학에 정답이 없는 법인데 강신주는 너무 직설적으로 정답을 제시한다고 말합니다. 강신주 또한 이를 모르지 않습니다. 그는 <강신주의 다상담>(동녘) 1권에서 “만일 제가 C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면, 다른 의견인 A와 B는 언급도 하지 않습니다. 그냥 이렇게 이야기하지요. ‘저는 철학자입니다. 그러니 제 말을 믿으세요. C가 옳습니다. 나머지 A와 B는 일고의 가치도 없이 잘못된 것입니다.’ 독선적으로 보일 만큼 단호한 제 어투 때문에 오해도 많이 샀지만, 그래도 가장 효과적인 강연 방법이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강신주의 전략은 웹 공간에서는 매우 적절한 전략입니다. 사사키 노리히코 <동양경제> 온라인 편집장은 <5년 후 미디어는 돈을 벌까?>라는 책에서 웹에서는 “여운보다 단언, 건전보다 속내가 더 인기가 있다”고 말합니다. 종이책에서는 ‘내 생각은 이렇다’ ‘이것이 옳다’고 단언하는 것은 심하다거나 품위가 없다고 여겨지지만 웹에서는 ‘…일 것이라 생각한다’라거나 ‘…가 아닐까 한다’와 같은 말은 큰 인상을 남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실을 단순화시키는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반드시 ‘…이다’라고 단언해야 독자의 마음에 파고들 수 있습니다.
“세상은 거의 주관적으로 이루어져 있다. (실명으로) 주관을 내세우는 일을 두려워한다면 언론공간은 그저 사실을 나열하는 곳일 뿐이다. 이러한 무미건조한 콘텐츠가 넘치는 사이트에는 아무도 흥미를 갖지 않을 것이다. 주관이라는 것은 속내와 같다. 분위기에 맞춰 건전하게 가는 사람은 웹 공간에서 외면당한다”고 주장하는 사사키는 “자신의 생각에 믿음이 있다면 도망갈 길을 만들지 않고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며 자신의 의견을 주장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소셜미디어에서 인기를 끄는 사람들은 모두 독설적이고 단언적인 주관(속내)을 맘껏 펼치는 사람들입니다. 지금은 정보의 객관적인 가치가 아니라 주관적이고 확실한 속내를 즐기는 세상입니다. 극단적인 속내가 넘치는 모습, 그게 바로 ‘단속사회’의 자화상 아닐까요?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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