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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인 5월에 우리가 어머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겠지요. 50대 시인 장석주는 <마흔의 서재>(한빛비즈)에서 “여든을 코앞에 두신 어머니의 세상을 꿰뚫는 지력(知力)과 방안에 앉아서도 천리 밖을 내다보는 경륜을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지요. 아직도 미망과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지 못한 저는 어머니의 지력과 경륜에 견주면 겨우 걸음마를 뗀 수준에 불과”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세 딸을 둔 신달자 시인의 에세이 <엄마와 딸>(민음사)은 꿈을 반쪽도 이루지 못하고 너무 빈곤한 처지에서 35년 전에 눈을 감으신 어머니에 대한 애절한 사모곡입니다. 이제 고희에 이른 시인은 식어 가는 엄마 손을 잡을 어떤 힘도 없을 정도로 자신이 가장 불행했을 때 어머님이 세상을 뜨신 것을 못내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신 시인은 “이 세상에 엄마라는 존재의 소화력”보다 더 큰 것이 없다고 단언합니다. 슬픔과 눈물과 고통의 뼈뿐만 아니라 “천둥도 벼락도 폭풍도 폭우도 다 가슴으로 삭여 내면서 침묵하는 이 세상의 엄마들”은 “딸의 행복을 온몸으로 빌고 있는 존재”라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엄마라는 존재의 무게감은 엄청납니다. 유대의 어떤 아들은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고 말했다네요.


(경향DB)


신의 대리인 역할까지 하는 엄마들의 기세가 등등합니다. 한때 아이들을 키우는데 꼭 필요한 덕목으로 “아빠의 무관심, 엄마의 정보력, 할아버지의 재력”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유행했었지요. 인생의 주인공이어야 할 아이들을 소품으로 밀어놓고 엄마들이 직접 피나는 전투를 벌이는 세태를 풍자한 것입니다. 엄마들은 아이들의 초등성적 관리에서부터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 성공적인 결혼까지 도맡아 지휘하려 듭니다. 이제는 갓 태어난 아이에게 젖을 물릴 때부터 온갖 공부를 시키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야말로 대한민국 엄마들은 죽은 자식을 장례 치러주고서야 드디어 안심할 태세입니다.


이런 엄마들에 대한 반성이 없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3년상’을 치를 각오를 해야 했지만 고등학교가 특목고와 외고, 특성화고 등으로 분화된 다음부터는 진로 고민이 ‘중2’ 시기로 내려왔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남한에 행동 통제도 어렵고 예측하기도 어려운 ‘중2’가 있어서 북한이 쳐들어오지 않는다는 말이 나돌 정도여서, ‘중2병’은 엄마들 사이에 공포의 대상이라고 합니다.


<엄마도 힘들어>(메디치)의 저자인 문경보 문청소년교육상담연구소장은 “교실만한 공간에 돼지 삼사십 마리를 한꺼번에 집어넣고 하루에 열두 시간 이상 불안에 사로잡힌 채 살아가게 하면 그 돼지들의 성격은 어떻게 될까? 아니 그 돼지들은 생존할 수 있을까? 숨을 쉰다고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현실은 어떻습니까? 하루에 열여섯 시간 이상 형틀에 묶여 지내는 아이들도 많지 않나요?


문 소장은 “내 자녀를 흠 없는 존재로 만들고 싶다면, 먼저 어머니는 자신이 신이라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한다. 한 걸음 뒤에서 자녀가 걸어가는 길을 가만히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부모가 자식에게 마지막으로 줄 수 있는 것은 안타까움과 눈물, 바라봄뿐이며 그렇게 부모는 부족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아이들은 자식을 이끌어주는 엄마보다 늘 그 자리에서 자신을 기다려주면서 자신과 함께 꿈을 찾아갈 수 있는 엄마를 원한다는 것이지요.


<엄마는 어쩌면 그렇게>(이충걸, 예담)의 엄마가 그렇습니다. 이 감동적인 에세이는 서로에게 투정을 많이 하면서 친구처럼 지내는 50대 초반의 아들과 그의 엄마가 마치 부부처럼 살면서 벌이는 ‘세기의 전쟁’기입니다. 아들과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타인”처럼 행동합니다. 엄마를 업고 응급실에 달려가는 일이 갈수록 잦아지고 있지만 아들은 엄마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여전히 털게 안주를 핑계 삼아 집안에 있는 모든 알코올을 함께 해치우기도 합니다. “함께 산다는 건 도약하는 것, 개인적인 질문을 딛고 서로를 향해 묻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여행”이라고 주장하는 아들은 늘 술과 일을 핑계로 늦게 귀가하곤 합니다. 그런 아들에게 엄마는 “전에는 자지 않고 너 기다렸어. 언젠가부터 불 하나만 끄고 하나는 안 끄고 너 기다렸지. 그런데 이제는 너 기다리는 거 포기하고 불 끄고 자잖아”하고 통렬하게 대응하면서 자신은 “밤새 살짝 내렸다가 아침에 사라지는 이슬”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사랑해도 밥도 따로 먹고 죽을 때도 따로 죽는다. 각자의 곤경은 각자의 것. 그것이야말로 진실된 인간의 명예”라는 삶의 철학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지금 많은 이들이 ‘엄마의 부재’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생명장난감’ 엄마가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성진 동화 <엄마사용법>(창비)의 주인공 현수는 아빠의 도움으로 청소, 빨래, 요리 등 집에서 필요한 모든 힘든 일을 완벽하게 대신 해주는 생명장난감 엄마를 구입합니다. 현수는 웃기만 해도 바로 불량품으로 수거되는 장난감 엄마를, 아들을 안아주고, 책도 읽어 주고, 사랑한다고 말해 주는 ‘진짜 엄마’로 만들어 갑니다. 아, 이제 엄마가 변하지 않으니 아들이라도 나서야 할 모양입니다. 그래서라도 좋은 가정이 꾸려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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