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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의 민주연구원은 싱크탱크(Think Tank)라고 하기보다는 ‘두탱크(Do Tank)’라고 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조사, 분석 연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 행동을 하는 조직이라는 뜻이다. 민주연구원은 민주당의 비전과 전략을 연구할 뿐만 아니라 직접 담론 투쟁의 장에 뛰어드는, 치열한 싸움의 전선에 서 있는 당의 핵심기관이다.

민주연구원은 민주당이 받는 국고보조금의 30%를 사용하고 있다. 이 비율은 법으로 정해져 있는 것인데, 정당의 열악한 재정 상태에서 보면 어마어마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거가 있는 해에는 국고보조금이 배로 늘어나기 때문에 민주연구원의 예산 역시 곱으로 커진다. 민주연구원은 민주당에서 가장 중요한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당의 집권전략도 여기서 나와야 하고, 민주당이 집권했을 때 국가운영의 그림도 여기서 나와야 한다. 그리고 민주연구원은 민주당을 지지하는 전문가 네트워크, 그리고 시민들의 집단지성을 연결하는 고리도 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동안은 그렇지 못했다. 민주연구원은 ‘당권 경쟁에서 승리한 세력이 차지하는 전리품이냐?’ ‘정치 예비군들이 머물렀다 가는 대합실이냐?’ ‘당 지도부의 하청기관이냐?’ ‘도대체 돈을 연구·개발에 쓰기나 하는 거냐?’ ‘조직관리비로 쓰는 거 아니냐?’와 같은 의심을 받아왔다. 당이 위기에 처하고 당 혁신 프로그램이 가동될 때마다 ‘연구원’은 가장 중요한 개혁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쇄신 대상 목록에서 빠지지 않는 것을 보면 그동안의 노력이 별 볼일 없었던 모양이다. 근래에 민주연구원의 인사와 재정의 독립성을 강화해 연구원이 본래 임무를 잘할 수 있도록 했다는데 여전히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면 아직도 온전치 않은 것 같다.

지난 한 주일 동안 민주당 주변을 뜨겁게 달구었던 이른바 민주연구원의 ‘개헌전략 보고서’ 파동은 그런 걱정을 더해주고 있다. 개헌전략 보고서 때문에 민주연구원이 편파성 시비에 흔들리고 있다. 논란의 초점은 민주연구원이 작성한 개헌전략 보고서가 민주당의 주류 다수파이며, 대선후보로서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문재인 전 대표를 도와주려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궁금하여 그 보고서를 읽어보았다. 내가 보기에 보고서는 개헌 쟁점에 대해 민주당이 취해야 할 입장을 비교적 잘 정리하고 있었다. 개헌전략 보고서의 결론은 ‘미래지향적 국민중심의 질서 있는 개헌’을 원칙으로 개헌논의를 하되 ‘개헌과 민생개혁의제를 병행하는 전략’으로 다루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개헌 문제에 대해 극단적으로 표출된 주장들을 적절히 수용하면서도 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물론 논란이 될 만한, 다시 말하자면 편파성 시비가 생길 수 있는 대목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편파성 시비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은 이 보고서가 대선후보를 꿈꾸는 각 지도자들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할 수 있다는 뜻이다. ‘개헌’이라는 이슈가 이미 권력투쟁의 프레임이 되어있는 현실에서 대선주자들이 편파성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민주당이 이 논란을 해결하는 방식이다. 민주당이 신속하게 한 일은 이 보고서를 작성한 연구자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무슨 이유인지 정확히 밝히지는 않았는데 언론 보도를 보니 보고서 내용에 대한 책임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것은 온당한 처사가 아닌 것 같다. 연구자가 어떤 편파적 의도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가령 연구자가 능력이 없어서 분석과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면 정기 인사에 그 평가를 반영할 일이지 보고서의 ‘입장’을 이유로 처벌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이유로 책임을 묻게 되면 민주연구원의 연구자들은 당내 정치의 눈치만 보면서 ‘영혼이 없는’ 보고서를 만들게 될 가능성이 많다. 그렇게 되면 연구원은 있으나 마나 한 조직이 된다. 연구자들이 자율성을 가지고 자신의 전문적 역량과 양식으로 정세를 판단하고 대안을 모색할 수 있어야 민주연구원이 제 기능을 할 것이다.

이 논란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 그 대상은 연구자가 아니라 연구원장과 부원장이다. 왜냐하면 민주연구원이 편파적일 수 있다는 의심은 원장, 부원장이 모두 문재인 전 대표와 가까운 분이라는 데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두 분 개인의 능력과 리더십에 무슨 흠결이 있어서가 아니다. 정당 국고보조금의 30%를 쓰는 중요한 수권기구의 장은 편파성의 혐의가 없는 인사에게 맡기는 것이 민주연구원의 기능을 십분 발휘하게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 뽑힌 대통령은 인수위를 꾸릴 시간도 없이 직무 수행에 들어가야 하므로 수권기구로서 정당 연구소의 중요성은 어느 때보다 클 것이다. 두탱크, 민주연구원이 제 기능을 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유이다.

김태일 | 영남대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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