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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 척 들어서서 ‘밥 한 그릇 주’ 하고는 목로 걸상에 걸터앉으면 1분이 못 되어 기름기가 둥둥 뜬 뚝배기 하나와 깍두기 접시가 앞에 놓여진다. 파양념과 고춧가루를 듭신 많이 쳐서 소금으로 간을 맞추어 가지고 훌훌 국물을 마셔가며 먹는 맛이란 도무지 무엇이라고 형언할 수가 없으며 무엇에다 비할 수가 없다.”

식민지 시기의 인기 대중잡지 ‘별건곤(別乾坤)’ 1929년 12월호에 실린 ‘문자먹방’ 가운데 하나다. 이 잡지는 조선 기생과 할리우드 배우를 아우른 연예계 이야기, 통속적인 흥미를 살살 긁는 뒷골목 애정 비화, 섹슈얼리티를 자극적인 양념으로 삼은 풍문과 얄궂기 이를 데 없는 괴담과 추문을 적절히 요리할 줄 아는 잡지였다. 먹는 소리, 문자먹방에서도 발군이었다. 음식을 자주 다루었고, 집중력이 있었다. 고릿적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식민지 대도시의 풍경에, 일상의 풍속에, 연애하는 남녀의 산책길에, 밤 산책에, 당대 보통 조선 사람이 일평생 갈 일 없는 나라 이야기에, 어떤 상황에든 곧잘 먹는 이야기를 가져다붙였다. 일상의 음식을, 일상의 감각에 스며들도록 했다.

그래서 지금은 무슨 음식을 가지고 독자를 홀리려는 것일까? 갈 데 없는 설렁탕 이야기 아닌가. 글쓴이, 필명 우이생(牛耳生, 쇠귀. ‘生’은 남성을 표시하는 접사)의 붓끝을 더 따라가 보자. 그에 따르면 설렁탕이라는 말만 들어도 우선 구수한 냄새가 코로 물신물신 들어오고 터분한 속이 확 풀리는 것 같다고 한다. 겨울에, 겨울에도 밤-자정이 지난 뒤에 부르르 떨리는 어깨를 웅숭그리고 설렁탕집을 찾아가면 우선 김이 물씬물씬 나오는 뜨스한 기운과 구수한 냄새가 먼저 회를 동하게 한단다. 우이생이 보기에 설렁탕은 한마디로 “일반 하층계급에서 많이 먹는 것은 사실이나 제 아무리 점잖을 빼는 친구라도 조선 사람으로서는 서울에 사는 이상 설렁탕의 설렁설렁한 맛을 괄시하지 못”할 음식이었다.

‘설렁탕의 설렁설렁한 맛’. 여기 이르러 절로 무릎을 탁 친다. 조선 임금이 선농단(先農壇)에서 제를 올리고 끓인 선농탕에서 설렁탕이 유래했다는, 이제 음식 문화사 공부하는 사람들은 거론하지 않는 낭설이 다 부질없어지고, 조선 시대 몽골어 학습서인 <몽어유해(蒙語類解)> 속에서 곰탕에 해당하는 몽골어 ‘슈루’의 흔적 더듬기도 보람이 없다. 설렁설렁이랬다. 설렁설렁이란 바람이 가볍게 자꾸 부는 모양과 감각과 분위기를 드러내는 부사다. 커다란 솥에서 탕국이 끓어오르며 가볍게 이리저리 이는 물결을 수식할 때에도 딱이다. 팔이나 꼬리를 가볍게 자꾸 흔들 듯이 가벼운 움직임, 가벼운 마음에서 나오는 행동을 수식하는 말도 이 말이다. 설렁탕은 설렁설렁 끓고, 사람들은 설렁설렁 밤길을 걸어가, 설렁탕 한 뚝배기 설렁설렁 해치운다. 체면 차릴 것 없고 돌아볼 것 없다. 우이생은 이렇게 말했다. “다른 음식집이라면 제 소위 점잖다는 사람은 앞뒤를 좀 살펴보느라고 머뭇거리기도 하겠지만 설렁탕집에 들어가는 사람은 절대로 해방적(解放的)이다.” 사람을 해방시키는 음식이니, 그야말로 맛있다는 음식 가득 늘어놓고도 입맛이 없어서 젓가락으로 음식을 ‘끼지럭끼지럭’하는 친구도 “설렁탕만은 그렇게 괄시하지 못한다.”

위 이야기는 진품명품, 천하의 명물이라고 할 만한 조선 팔도의 대표 음식을 예찬한 칼럼 ‘진품·명품·천하명식팔도명식물예찬(珍品·名品·天下名食八道名食物禮讚)’에 할애한 꼭지에 속한다. 여기에 조선 대표 신선로, 전주 탁백이국(콩나물국밥), 진천 메밀묵, 진주 비빔밥, 서울 설렁탕, 개성 편수, 대구 대구탕반(따로국밥), 연백 인절미, 평양 냉면이 나란하다. 신선로 하나를 빼놓고는 모두 누구나 설렁설렁 먹을 만한 음식이다. 100년 전에 막 태어난 문자먹방은 누구나 만만히 대할 음식에다 이야기로, 수사로, 감각의 적극적인 표현과 관능의 구체적인 발현으로 ‘의미’를 부여했다. 서민의 음식에 “세상 사람이 말하기를 무대예술은 종합예술이라 하지만 잘 조리된 한 가지 음식이나 잘 차려진 한 상 요리라는 것은 역시 훌륭한 한 종합예술”이라며 과감히 의미를 부여했다. 설렁탕, 탁백이국이라면 하층계급 음식이 제 매력으로 상하귀천 모두를 설득하고 아우른 데 박수를 보냈다. 편수가 보쌈김치와 어울릴 때에는 “식도락의 미각은” “황홀경”에 이른다고 했다. 인절미에 부친 말은 ‘사랑의 떡 운치의 떡’이다. 잡지다운 통속성은 그것대로 흐르되 의도 했든 하지 않았든, 음식에서 초보적인 민족주의 과제가 수행되고 있었다. 전에 없던 조선어 통사의 개척과 함께였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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