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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 학교에 공문이 하나 왔다. 내년에 학생들이 사용할 교과서 주문을 이번 주까지 완료하라는 내용이다. 여기에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국정 역사교과서도 포함돼 있다. 책이 나오지 않은 만큼, 그 교과서에 한해 초본이라도 나온 뒤 주문하도록 해달라는 건의를 교육부에 했다.
필자가 한국사 국정교과서 반대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별도로 업무 담당자로서 실무는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 건의의 이유였다. 그러나 실무를 진행해보니 상황은 생각보다 훨씬 비상식적이었다. 국정 혹은 검인정을 막론하고 다른 모든 교과서는 이미 발간돼 있거나 최소한 초본이 존재하지만, 국정 역사교과서는 아직 실물로서의 교과서는 고사하고 초본은커녕 집필진이 누군지도 모르는 상태다.
사정이 이런데, 일단 주문부터 넣으라는 교육부의 요구는 교과서의 내용을 떠나 행정 실무 차원에서도 순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주 바뀌는 교육과정에 대한 문제점은 차치하고라도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중·고교 적용연도는 원래 2018년이다. 이것을 유독 역사교과서에 한해 국정으로 바꾼 뒤 5개월 뒤인 내년 2017년 3월부터 앞당겨 시행하는 것에 대한 법적 오류와 현 정부의 정치적 의도 역시 알려진 바다.
기왕에 국정 역사교과서의 시행을 추진하려 한다면, ‘과정’은 압축하더라도 실무의 ‘순서’까지 뒤바꾸지는 말아야 하는 것 아닐까. 최고권력자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교육부의 난처한 입장을 모르지 않는다. 그래서 필자가 건의한 것도 일단 책이 초본이라도 나오면 그때 주문 하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교육부는 ‘선주문’은 매년 했던 방식이므로 주문 기한 연장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매년 선주문이 가능했던 것은 교과서가 이미 나왔거나 최소한 어떤 ‘물건’인지 아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무슨 가수의 앨범 판매도 아니고 교육의 근간이 되는 교과서에 관한 사항인데 이래도 되는 것인지 답답하다.
이광국 | 산곡고 교과서 업무 담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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