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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극일을 외칠 줄은 몰랐다. 한국 정치에서 외세, 특히 일본은 단골 메뉴다. 여당이 반일로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고 하면, 이 효과를 잘 아는 야당은 극일과 이성적 외교를 주장해왔다. 매체가 메시지다. 누가 한 말인지 모르고 들으면 모두 옳은 말씀이다. 나경원 원내대표의 발언을 보면서 한국 현대사의 주요 작동 원리를 생각하게 되었다. 두 가지가 아닐까. 적대적 공범 관계와 발전 지상주의. 적대적 공범은 분단체제에서 남북한 통치자와 여야 정치인들의 존재 양식이었다. 

발전주의. 우리는 진보·보수, ‘마초·페미’ 불문, 잘사는 나라를 열망한다. 일본은 축구에서라도 이겨야 하고 서구를 따라잡아야 한다는 추격 발전주의다. 그것이 ‘세계 평화’를 위한 이라크 침략이든, IT 강국이든, 한류든 한마디로 전 세계에 태극기가 휘날려야 한다는 강박이다. 물론 한국 사회의 이러한 콤플렉스와 욕망은 우리를 ‘여기까지’ 오게 한 동력이기도 하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문제는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의 부재이다. 아니, 부재를 넘어 거의 금기에 가깝다. 나는 예전에 소셜네트워크의 윤리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페미니즘 관련 글을 썼을 때보다 많은 비난을 받았다. 어떤 이가 당시 내 글을 비판한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진보 인사와 페미니스트들이 모두 “좋아요”를 눌렀다. 

한국 사회에서 인터넷과 SNS는 기술 강국과 표현의 자유를 상징한다. 혹은 발언 기회(지면)가 없는 이들의 공간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부작용이 있더라도 양비론을 벗어나지 못한다. 어차피 세상사에는 다양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양비론은 의미 없는 얘기다. 서구에서는 과학 기술 산업을 주도하는 거대 기업에 대한 비판과 스마트폰으로 인한 인간의 조건 변화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데, 우리는 이에 대한 문제제기조차 어렵다.

20세기 최고의 시간도둑이 TV였다면, 21세기에는 스마트폰이라는 데 이견이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스마트폰은 TV와 달리 휴대성과 사용자의 즉각적인 참여, 주체화 측면에서 완전히 성질을 달리하는 매체다. 인간이 만든 도구는 인간의 몸을 확장(extension)시킨다. 나의 일부가, 기억이, 기능이 도구에 의존하거나 옮겨지는 상태다. 우리는 확장된 몸을 ‘나’로 생각하기 쉽다. 자아는 비대해지지만 인간의 능력은 저하된다. 

디지털 치매는 인간의 기억력을 기계가 빼앗아가는 새로운 질병이다. 치매가 슬픈 병인 이유는 환자의 기억이 상실, 대체됨으로써 전혀 다른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증 치매에 걸린 사람과는 살아있어도 만나지 못한다. 인간은 곧 기억이다. 죽음은 이 기억이 몸(mindful body)을 빠져나가는 현상이다.

TV가 한때 ‘바보상자’로 불렸다면 지금 스마트폰은 생각하는 인간, 호모사피엔스의 정의를 바꾸고 있다. 페이스북 창시자인 마크 저커버그는 자기 딸은 “열 세 살까지는 페이스북 사용을 못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실제 페이스북은 13세 이하 아동들의 계정 등록을 막는 정책이 있긴 하다). 반면 한국 사회에서는 여섯 살 유튜버가 100억원짜리 빌딩을 산다.

최근 출간된 <생각을 빼앗긴 세계>는 디지털 유토피아 신화를 조목조목 비판한다. 저자 프랭클린 포어는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애플이 어떻게 지식과 사상, 프라이버시와 문화를 파괴하는지를 보여준다. 생각하고 기억하는 능력이 불필요한 시대요, 거대 기업이 인류의 뇌를 독점하고 있다. 인간이 만든 도구가 부메랑이 되는 상황은 누구나 아는 문명의 딜레마이지만, 나는 디지털 범죄나 문화 파괴보다 인간성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이 많다. 인간은 타인과 사회 간 부대낌 속에서 자신을 정의하는 과정을 사는 존재다. 그러나 1인 매체 시대에는 자기가 자신을 규정한다. 자기도취, 자기조작 시대다. 

주식 투자 실적을 부풀리고 결국 사기죄로 구속된 모씨는 올해 구형 10년에 징역 5년을 선고받았는데, 그는 기부왕 행세를 하면서 유명해졌다. 그가 페이스북에 쓴 글을 보자. “저는 무엇을 베푸는 사람이 아니라, 원래 가졌어야 하는 분들의 것을 잠시 맡고 있다가 있어야 할 제자리에 돌려놓는 사람일 뿐입니다. (중략) 저는 제 이름이나 업적이 아닌, 정제된 가치관과 철학을 남기고자 합니다. 제가 뿌리는 씨앗에서 열리는 열매가 사회와 공동체에 고스란히 전달되길 바랍니다.”

자신을 지식인이라고 주장하는 어느 페미니스트의 페이스북 글이다. “빛나는 연구 실적의 첨탑을 향해 내달리는 숨가쁨이 때론 두통과 복통 등의 신체적 통증으로 번역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한글 논문을 완성하기 무섭게, 다른 주제의 외국어 논문으로 향하고 있는 이 일상에서 연구가 주는 기쁨을 잃지 않으려 안간힘 쓰지만 에너지 고갈에 맞닥뜨린다.” 

디지털을 통해 자아를 무한 확장하는 사람들, 거짓과 혐오 행위가 유명세가 되고 악명도 돈이 되는 세상에서 어떤 상태가 ‘제정신’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인성의 양극화일까? 한국은 세계 최고의 우울증, 자살률 국가이다.

<정희진 | 여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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