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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사회에서 ‘가장’ 부패한 집단이 직업정치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에 대한 지나친 비판과 냉소는 정치에 대한 무관심만 불러올 뿐이다. 통념과 달리, 정치인과 연예인은 다른 직업군에 비해 윤리적인 조건이 있다. 이들의 생활은 24시간 공중(公衆)의 감시를 받으며, 검찰을 능가하는 ‘누리꾼 수사대’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최근 남성 국회의장과 여성 자유한국당 의원 사이에 발생한 ‘해프닝’을 두고 여야가 서로 “피해 인정” 투쟁을 벌이는 것을 보면서, 이 나라의 정치인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페미니즘의 명분과 성별 제도(gender)의 작동 원리를 가장 잘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집단은 국회일 것이다. 

안건의 신속한 처리를 위한 패스트트랙에 한국당이 결사반대하면서, 국회의장과 국회의원 간의 물리적 충돌이 있었다. 여기서 안건의 정당성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날치기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물리력을 사용하는 혹은 사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예전 야당이나 지금 야당이나 마찬가지다. 대화만이 능사는 아니다. 공익을 위한 법안이라면 최선을 다해 관철시켜야 한다. 나의 생각으로는 지역구를 폐지하고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실시되지 않는 한, 국회는 어차피 그들만의 싸움터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문제는 몸싸움이 아니라 그 방식이다. 1990년대 이후 각종 여성폭력방지법이 제정되었다. 정치권은 일반 여성이나 언론과 검찰 권력의 희생양이 된 여성 배우들의 고통과 피해는 제대로 다루지 않으면서, 이번 국회처럼 ‘성추행’ 사건을 남발해왔다. 합의가 안될 때마다 여성 의원, 보좌진, 국회 직원들을 상대당 앞에 내세워 ‘접촉’을 유도하고, 이를 성추행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상황이 성추행인지 아닌지는 국회에 율사들이 많으니 알아서 판단할 일이고, 문제는 왜 이러한 젠더 전술이 멈추지 않는가이다. 

이성애 제도에서 남성과 남성의 몸싸움은 성추행으로 간주되지 않기 때문에, 상대를 성추행범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자당(自黨) 여성을 내세워야 한다. 당연히 접촉이 발생한다. 그러면 “성추행 폭거”라고 주장한다. 최근 사건이 더욱 희비극인 까닭은 “성추행범”이라는 말에 자아가 무너진 남성 국회의장이 분노한 나머지, 한국당 여성 의원의 얼굴을 진짜로 ‘감쌌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셀프 쇼크’로 입원, 피해자 역할을 재현했다. 

이 사건에서 누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일까. 여야는 서로 “자해 공갈” “성추행”이라고 주장하지만, 진위를 따지려는 시도 자체가 더욱 부끄러운 처신인 줄 알아야 한다. 분명한 가해자가 있긴 하다. 한국당의 송희경·이채익 의원의 피해자 모욕이다. 이들은 ‘여성=피해자’라는 통념을 강조하기 위해 여성 의원의 외모와 학력, 결혼 여부를 두고 “트라우마와 열등감이 있는 불쌍한 분”으로 묘사했다. 

대개 남성이 여성을 보호한다지만, 실제 그럴까? 이번 사건의 경우 나경원 원내대표와 남성 의원 등 힘 있는 이들은 뒤로 숨었다. 같은 당의 여성 의원과 여성 보좌진들이 남성 의원의 경호원 역할을 했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언제나 남성과 남성 사이의 계급 갈등을 수습해주는 범퍼 혹은 ‘총알받이’로 이용되어 왔다. 여기엔 진보·보수, 좌우, 파시즘·자유주의가 따로 없다. 1980년대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의 ‘어머니’들은 언제나 시위대 맨 앞에 섰다. 전투경찰이 ‘어머니’에게는 폭력을 쓰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하고, 폭력을 쓴다면 군사독재 정권에 대한 여론이 악화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머니=모성=평화’라는 성역할 이데올로기가 동원되는 것이다. 

나치의 파시즘 군대는 성적 순수성을 강조했지만 남성 동성애를 우려, 군인을 위한 성매매 제도를 조직적으로 운영했다. ‘성상납’은 남성 연대를 강화하거나 우호 증진을 위한 대표적인 문화다. ‘예쁜’ 여성을 물건으로 선물하는 것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중요한 이유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예전엔 남성이 여성에게 “어떤 일이 있어도 너를 지켜줄게”라 하는 프러포즈가 있었다. 요즘 여성들은 말한다. “안 지켜줘도 돼. 너나 잘해.” “네가 제일 무서워.” 보호자와 피보호자 개념, 그 성별성 자체를 문제시해야 한다.

여야 불문, 국회의사당의 모든 남성에게 말하고 싶다. 싸우려면 남성들끼리 싸우기 바란다. 여성폭력방지법은 남성을 위해 만든 법이 아니다.

<정희진 여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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