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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은 자유당, 공화당, 민정당으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보수정당의 흐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정당들은 공통점이 있다. 모두 정치권력의 장식물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정당이 만들어져서 권력을 취한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정당이 조직됐다. 자유당은 이승만 대통령을 위해 만든 조직이었다. 정당이란 무릇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여 권력을 쟁취하는 조직이라고 정치학 교과서는 말하고 있으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자유당은 이미 만들어진 정치권력을 유지, 정당화하기 위해 급조한 정당이었다. 이승만은 자신의 재선에 지지자들을 동원하는 기제로 자유당을 설립했다.

공화당은 5·16쿠데타 세력이 폭력으로 권력을 잡은 후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선거기관으로 만들어졌다. 군부는 먼저 중앙정보부를 만들었고, 중앙정보부가 공화당을 만들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취한 유사민간화 통치 방식을 가리켜 ‘군복 위에 양복을 걸쳐 입었다’라고 하는데 공화당은 바로 그 군복 위에 걸쳐 입은 양복과 같은 것이었다.

민정당은 전두환, 노태우를 비롯한 신군부가 12·12군사반란, 5·17쿠데타 등 두 차례의 군사적 행동으로 정권을 차지하고 나서 그 기반을 만들기 위해 조직한 것이었다. 민정당과 공화당이 다른 점이 있다면 공화당은 중앙정보부가 만들었고 민정당은 보안사가 만들었다는 것뿐이다. 경쟁자인 야당의 정치활동을 묶어놓고 국가기관이 비밀리에 민정당을 만든 과정은 공화당의 설립 과정을 따라 했을 것이 분명하다.

창당과정이 이러하니 대통령은 집권여당을 존중할 까닭이 없다. 집권여당은 대통령의 하수인에 지나지 않았다. 고무도장이었고 허수아비였다. 대통령의 결정을 추인하는 기관이었고 표를 모으는 도구였다. 집권여당이 대통령의 뜻을 잘 따르지 않을 경우, 대통령이 집권여당을 괴롭힐 수단은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정보기관을 시켜서 뒷조사를 하고 조리돌림을 하기 일쑤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5차 규제개혁장관회의 및 민관합동 규제개혁 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_청와대사진기자단

그 후,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대통령과 집권여당의 관계는 조금 달라졌다. 몇 가지 환경 변화 때문이었다. 민주화는 정당의 운영에도 영향을 미쳐 대통령이 집권여당을 과거와 같이 다스릴 수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집권여당은 야당과 협상을 통해 의회를 운영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대통령의 뜻대로 움직일 수만은 없게 됐다. 정치적 이종교배(異種交配)로 인한 정당조직의 역동성도 환경변화의 하나다. 집권여당은 수차례에 걸쳐 보수야당, 심지어는 진보정당의 일부 세력을 흡수했다. 동종교배는 열성유전을 낳고, 이종교배는 그 반대라는 말처럼 집권여당의 조직은 과거보다 역동적이 됐다. 이런 요인들 때문에 대통령은 집권여당을 하수인으로 부릴 수는 없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지금까지 이런 흐름을 되돌려 놓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 새누리당 인사는 새누리당으로 간판이 바뀌면서 집권여당 내부의 역동성이 떨어졌다고 했다. 그렇다.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과 국정운영을 상의하지 않았다. 당·정·청 협력은 이벤트로도 하지 않았다. 헤아릴 수 없는 인사 참사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새누리당의 의견을 묻지 않았다. 세월호 사고와 같은 위기 및 갈등 관리 과정에서도 대통령은 새누리당에 어떤 역할을 하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을 도구적 가치로만 생각하는 것 같다. 기회만 있으면 박 대통령은 왜 자신을 뒷받침해주지 않느냐고 새누리당을 질타한다. 박 대통령에게 새누리당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기동대 정도로 보이는 모양이다. 유승민 원내대표를 배신자라고 규정하고 찍어낸 일이나 국회의원 후보 공천 과정에서 자기와 가까운 사람들을 밀어넣기 위해 진박소동을 불사하는 일은 새누리당을 하인으로 여기지 않고는 하기 어려운 일이다. 박 대통령은 총선 참패의 원인도 새누리당을 속죄양으로 만들어서 정리했다.

국회의원들이 탄 출근 버스를 통째로 끌고 가서 이승만의 말을 듣도록 겁박했던 자유당 때 이야기나, 박정희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국회의원들을 잡아다 콧수염을 뽑으며 모멸을 주던 공화당 때 이야기, 그리고 전두환과 군인들의 기고만장이 하늘을 찔러 고위 장교들이 술잔을 집어던지며 국회의원들을 두들겨 팼던 민정당 때 이야기와 요즈음 겪고 있는 새누리당 이야기는 뭐가 다른가 싶다. 총선 패배 후 새누리당의 쇄신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혁신위원회 구성이 박대통령을 보위하려는 그룹의 방해로 파행이 됐다. 박 대통령이 남은 재임 기간에 생각과 태도를 바꿀 가능성이 없다면 새누리당의 실패는 예정된 일이다. 새누리당은 지금 막다른 골목에 와 있는 것 같다.


김태일 |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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