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야당 비상대책위원장의 투항에 가까운 세월호특별법 여야 합의는 국민 여론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여당은 재협상에 응할 의사가 당분간 없어 진상규명 노력은 다시 표류하게 되었다. 실망스러운 야당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집권당도 이번 연휴를 넘기고 나면 만만찮은 여론 압박에 직면할 것이다. 일반 국민이 수긍할 정치적 타협을 어떻게든 이끌어내야만 김무성 체제는 원만한 정국 운영을 꾀할 수 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은 어렵다. 먼 원인과 가까운 원인이 한두 가지가 아니며,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문제가 압축된 의문투성이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멀리 내다보고 차분하게 대처할 사안이다. 하지만 세월호 선원들의 무책임한 행동, 해경 123정의 구조활동이 단적으로 드러낸 해경의 실상을 떠올리는 순간 유가족이 아니더라도 여전히 참지 못할 분노에 휩싸이게 된다.

수백명 승객과 동료 승무원들마저 내팽개치고 탈출한 선장과 선원들의 행동은 비난하기 이전에 이해조차 쉽지 않다. 자신들만 살아난 후 벌어질 일에 그토록 생각이 못 미쳤을까. 더 밝혀야 할 진실이 많다.

해체가 결정된 해경은 유병언 일가와 더불어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해경 해체와 소방방재청 조직 개편, 국가안전처 신설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 또한 국회에서 장기간 표류 중이다. 진상규명을 위한 정치적 합의의 실패 탓이지만, 문제의 핵심에서 빗나간 해경 해체라는 발상 때문이기도 하다. 만약 해경 해체가 옳다면 최근 연이어 사고가 터진 육군 22사단과 28사단 등 대한민국 국군도 해체할 건가.

123정은 순찰과 단속이 주된 업무이지만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등 긴급 구조도 당연히 해왔고, 당시 해경 10명과 의경 3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그러나 엊그제 재판에서 지휘자들은 여객선 침몰에 대비한 선내 진입 훈련을 받은 적이 없고 필요한 장비도 없다고 증언했다. 그런 여건에서 50도 이상 크게 기운 대형 여객선을 평생 처음 본 순간, 해경 경력이 30년 넘은 정장도 무척 당황하고 공포마저 느꼈을 것이다. 당장 뒤집힐 듯한 사고 선박에 경비정을 붙여 구조에 나서지 못하고 주저하는 모습은 공개된 동영상에도 확연하다.

15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범국민대회'를 마친 세월호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물론 조사가 더 필요한 어이없고 치명적인 실책들이 많다. 우선 정장은 상황실과 협조하며 출동 과정에서 선장과 적극적으로 통화를 시도하지 않았다. 정장과 선장이 교신을 유지하면서 상황을 공유하고 승객들이 갑판으로 올라오도록 결정했더라면. 이와 관련해 123정이 선원들만 구하면서 선원인 줄도 몰랐고 선장의 소재를 찾지도 않았다는 사실은 기가 막힌다. 엔진 과열로 불이 나 어부들이 물에 뛰어든 통통배도 이렇게 엉성하게 구하지는 않는다.

선장 등과 교신해 세월호의 상태를 미리 정확하게 파악했더라면 123정의 행동은 좀 달랐을 것이다. 확성기 방송으로 아이들을 움직이게 했을 것이고, 망치 한두 개로도 창문 여럿을 깨고 인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불과 30여분의 ‘골든타임’이었지만 위험을 무릅쓴다면 선내 진입도 가능했다.

도착 직후 승객들에게 퇴선 지시 방송을 반복했다는 정장의 거짓말과 일지 조작 등은 명백히 과실이 아닌 범죄에 해당한다. 유가족과 국민은 해경의 무능과 태만 못지않게 거짓과 은폐에 분노한다. 그러나 해경에 대한 문책은 123정의 하급자들을 비롯해 해경에 투신한 숱한 젊은이들이 느끼고 있는 죄책감과 수치심, 정신적 고통에 대한 성찰과 함께 가야 한다. 문제 해결의 길은 해경 해체가 아니라 혁신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작년 여름휴가 중 백사장에 ‘저도의 추억’을 쓰는 사진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우리의 바다에는 아름다운 저도를 비롯해 3000개가 넘는 섬과 굴곡 많은 해안과 갯벌이 펼쳐져 있다. 이 자연은 그 자체로 기쁨이요, 많은 이들의 삶의 터전이자 이웃나라와의 경쟁과 갈등의 장이다. 이런 바다를 지키기 위해 유능하고 독립적인 해양경찰은 필수적이다. 국정 책임자는 개인의 추억을 국가 경영의 비전과 실행력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김명환 | 서울대 교수·영문학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