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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부부가 아이 둘을 데리고 들어와 옆자리에 앉았다. 예닐곱으로 보이는 딸과 서너 살로 보이는 아들. 식사 자리가 불편해질 것 같았다. 아이들의 소란 때문에 패밀리 레스토랑은 꺼리는 편인데,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 녀석의 성화에 못 이겨 다시 찾고 말았다. 신도시 외곽에 새로 생긴 대형 쇼핑몰 3층. 제철 식재료, 친환경 작물, 홈 메이드 등을 차별화 요소로 내세운 샐러드 뷔페였다. 휴일 한낮이어서 그런지 대부분 가족 단위 손님이었다.

그런데 내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갔다. 뛰어다니거나 소리 지르는 아이들이 눈에 띄지 않았다. 웬일이지? 다름 아닌 스마트폰 덕분이었다. 아이들이 먹는 것보다 ‘보고 만지는 것’에 더 신경을 썼다. 음식을 가지러 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부모들이 가져다 떠먹여야 했다. 옆자리 딸내미는 스마트폰을 연신 좌우로 기울이며 게임에 열중했고, 아들내미도 작은 화면을 보며 히죽거리고 있었다. 젊은 아버지는 최신형 태블릿을 만지작거렸고, 젊은 어머니도 빨간색 케이스의 스마트폰에 열중하고 있었다.

잠시 후 뒷자리에도 한 가족이 들어와 앉았다. 부모를 따라온 10대 중반의 두 아들은 이어폰을 끼고 있었다. 둘러보니 거의 모든 식탁 위에 사람 수만큼의 스마트폰 혹은 태블릿이 올려져 있었다. 음식을 가지러 갈 때도 스마트폰을 챙기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우리 가족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한 딸도 수시로 문자메시지를 확인했고, 아들 녀석은 음식을 가져올 때마다 사진 찍기 바빴다. 약간 과장하자면, 일요일 오후의 패밀리 레스토랑은 봉쇄수도원 식당 못지않게 고요했다.

가히 스마트폰 시대다. 국내 스마트폰 이용자가 조만간 4000만명을 돌파할 것이라고 한다. 전체 인구 5000만명 가운데 사회활동을 하는 거의 모든 사람이 디지털 단말기를 자기 몸에 장착하고 있다. 잠잘 때, 목욕할 때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시간을 디지털 단말기와 함께한다. 반지만은 못하지만 안경 못지않은 ‘새로운 신체’다. 하루가 스마트폰과 함께 시작되고 스마트폰과 함께 하루가 마무리된다. 디지털 기기가 없는 일상적 삶은 상상하기 어려워졌다.

스마트폰 중독률 통계치(2013) (출처 : 경향DB)


디지털 문명의 폐해를 열거하려는 것은 아니다. 감수성이 떨어진다, 집중력이 낮아진다, 기억력이 나빠진다, 사고방식이 비선형으로 바뀐다, 관계 형성(교감) 능력을 잃는다 등등 인터넷 기반의 디지털 기술이 인간과 사회에 미치는 역기능은 이제 일반상식 수준이다.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스마트폰 중독을 제어할 적절한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사용자의 자율적 절제는 기대하기 어렵고 사회적 ‘단(斷) 중독’ 프로그램도 찾아보기 힘들다. 대중매체에서 연일 쏟아지는 이동통신 관련 광고에 견주면, 개인과 사회의 대처 능력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나라고 해서 무슨 특별한 대안이 있는 것은 아니다. 윌리엄 파워스 교수처럼 집 안에 ‘나만의 월든 존’, 즉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지 않는 공간을 만들어 ‘깊이의 세계’에 머물라는 철학적 제안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넋 놓고 당할 수만은 없어서 겨우 고안해낸 것이 있다. ‘머리맡 챙기기’. 기성세대는 정도가 덜하겠지만, 젊은층으로 내려갈수록 머리맡에 디지털 단말기가 있다. 잠들기 전 문자메시지와 알람을 확인하고 아침에 눈뜨자마자 바로 디지털 기기부터 집어든다.

머리맡 챙기기는 간단하다. 잠들기 전에 디지털 기기를 손닿지 않는 곳에 갖다 두고, 대신 메모지와 펜을 갖다 놓으면 된다. 널리 알려졌듯이, 잠들기 직전과 잠에서 깬 직후가 알파파가 활발한 시간이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아이디어가 샘솟는 시간이다. 나는 이 창의성의 시간을 ‘신이 선물을 내려주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잠자리가 자기를 성찰하고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는 최후의 장소다. 그런데 이 최후의 시간과 장소를 디지털 기기에 빼앗겼다. 아니 자진 반납하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당부한다. 머리맡, 머리맡을 챙기자. 낮에는 디지털 기기를 얼마든지 이용하자. 다만 잠들기 직전과 잠에서 깬 직후, 하루 10분만 디지털 기기를 손에서 멀리하자. 우리가 하루에 두 차례 신의 선물을 받을 수 있다면, 우리에게 희망은 있다. 잠들기 전, 플러그를 멀리하자. 머리맡을 되찾아오자.


이문재 | 시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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