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학생 몇 명이 겨울방학 공기업 인턴십에 참여하고 싶다고 자기소개서를 보여줬다. 대학 입학할 때도 자기소개서를 써보지 않은 학생들의 글은 손댈 곳이 많았다. 지원동기, 자신의 강점과 약점, 인생에서 어려웠던 경험 등을 분량에 맞춰 써내는 일은 이들에게 익숙하지 않았다. 몇 가지 조언을 해주니 그런 대로 모양새를 갖출 수 있었다. 가능하면 대학 입학부터 지금까지 겪었던 주요한 일들을 표로 만들고, 자격증이나 교내 수상 실적이라도 있으면 하나도 잊지 말고 챙겨두라고 했다. 합격한 선배의 조언이 가장 좋지만 접하기 어려우니, 아쉬운 대로 다니다 온 선생이 있으니 얼마든지 물어보라고 했다. 그럼에도 이들이 모두 원하는 일자리 채용시험에 합격할 수 있을지에 대해 낙관적인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시험에 상처 입었거나 자신들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많기 때문이다.

공채. 공개채용의 약자다. 원래는 1년에 한두 차례 정기적으로 신입사원을 뽑는 것만을 의미했으나, 입사를 전제로 하거나 신입사원 공채 지원 시 가점을 주는 인턴십 프로그램도 공채의 일부로 인정받게 됐다. 공채는 일본에서 1928년 시작되었다. 채용 방식이 중구난방이었던 상황에서, ‘취업준비생’과 기업 모두가 혼란을 벗어나고자 ‘취업협정’을 맺었다. 한국에서는 1957년 삼성물산이 도입했다. 27명 선발에 지원자는 1200명으로 경쟁률이 40대 1을 넘었다. 한국의 채용 방식은 시간이 지날수록 일본과 달라졌다. 1000년이 넘게 ‘공정함’을 대표하던 과거제도의 유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공부 열심히 해서 서울대 가고, 고시 합격해서 출세하라”는 입신양명이 달성되는 방식은 비단 대학 입시와 고시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 ‘괜찮은 일자리’, 즉 ‘선망직장’의 공채에도 해당됐다. 기업들은 수십년 대졸공채를 운영하면서 면접의 횟수를 늘리거나 실무평가를 도입해 왔지만, 필기시험은 늘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공채의 정점에 있는, 삼성그룹은 2014년 자체 필기시험인 SSAT를 폐기하고 ‘총장 추천 지원’ 등을 도입하려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다시 필기시험인 GSAT를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 은행권처럼 채용비리 이야기가 나오면 ‘공정한 전형 평가’가 필요하다며 필기시험이 가장 무난한 해법이 되기 일쑤다.

한국의 절대다수 기성세대가 자녀들에게 바라는 취업 방식은 공채임에 분명하다. 공채로 들어갈 수 있는 직장의 특징을 떠올려 보면 사람들이 목매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서류전형부터 필기시험, 면접까지 자체 개발하고 실제 운영하는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회사라는 것 자체가 그 직장의 건실함을 입증한다. 쉽게 말해 대기업, 중견기업, 공공부문만이 가능하다. 노동자 관점에서 보자면, 그런 직장은 나오지 않는 이상 쫓겨나지 않고(높은 평균근속연수나 정년보장), 해가 지나면 연봉이 오른다(호봉제). 공공부문이라면 시작은 미약한 봉급일지 모르나, 끝날 때는 국민연금을 상회하는 연금수익도 얻을 수 있다. 일종의 신분상승도 체감할 수 있다. 직장 내부에서는 ‘인재’로 대접받고 직급별 경력개발 프로그램의 대상이 된다. 협력회사나 하청회사의 ‘을’들을 만날 때는 ‘갑’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체험할 수 있다. 대기업 공채 직원이 되면, 이직 시장에서 비슷한 수준의 회사로 약간의 연봉을 올려 수평이동할 수 있다. 중소기업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점차 큰 규모의 회사로 이직하는 경력개발모델은 한국에서는 주류가 아니다.

당연히 위의 선망직장이 뽑을 수 있는 노동자의 숫자는 적다. 오호영의 논문 <대졸자의 선망직장 취업스펙과 정책과제>에 따르면 2013년 선망직장의 정규직이 된 경우는 4년제 대학 졸업 취업자의 23.8%에 그쳤다. 50.5%는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등 ‘비선망직장’으로 향했다. 공채 시험을 보지 않고 대학이나 고용노동청 취업지원센터, 혹은 지인의 소개로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으로 취업하는 사람이 절반이 넘는다는 이야기다. 공채 리그는 마치 모두의 것인 양 과대대표된다. 아무래도 Top 5 명문대에서 42.7%,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에서 35.4%가 선망직장에 취업하기 때문이리라.

선망직장의 리그 안에 공채를 통해 입성한 이들은 같은 일을 하지만 다른 경로로 입사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을 반대하면서 “공정하지 못하다”고 말한다. 시험에 합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험을 준비하느라 한 고생’은 ‘빽’을 써서 입사한 ‘낙하산’을 규탄할 때는 자신들이 피해자라는 것을 입증해 주지만, ‘열심히 일해서 흘린 땀’의 ‘공로’로 정규직으로 진입하려는 이들 앞에서는 넘을 수 없는 장벽으로 변하곤 한다. 몇 주, 길게는 몇 년 넘게 오롯이 공을 들여 공채 입사에 최적화되도록 준비할 수 있었던 것이 많은 조건들 덕택일 수 있음에도, 그 조건을 묻는 것은 불쾌해한다. “첫 직장이 중요하다”는 경구는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차별을 은연중에 정당화한다. 공정함을 매개로 한 신분제적 차별이다. ‘사농공상’이라는 유교적 신분제 아래에서의 양반의 인식이 아직 남아 있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고 느낄 지경이다. 명문대-선망직장 리그 안에서 순환하는 정규직-경력직 시장은 이러한 인식의 경제적 토대가 된다.

공채로 한국 사회 전부를 조직할 수는 없다. 모두 같은 방식으로 출세할 수는 없다. 정부가 공공부문 공채를 늘리거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원 전환한다 한들, 대기업이 선심을 써서 신입사원 공채를 늘린다고 한들 선망직장의 정규직 숫자를 다수파로 만들 수는 없다. 정부나 지자체가 어떤 종류의 지원을 하더라도 공개채용을 운영할 수 없는 회사가 절대다수의 기업이다. 중소기업이 아무리 구인공고를 취업 포털에 올려도 마땅한 사람이 지원하지 않는다. IMF 외환위기 이전에도 비정규직과 하청노동자는 있었고 이들이 다수였다. 다만 고도로 경제가 성장했기에 노동시장에서 빠르게 흡수됐고 임금이 그럭저럭 인상되어 도드라지지 않았을 따름이다. 고도성장기는 끝났다. 정책의 할 일은 경쟁 바깥에서 일자리를 구해서 사는 사람들의 삶의 질을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해 보장하고 이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것에 더 가깝다. 사실 공채 합격자가 아니어도 사람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분투하며 건강하게 살아나가고 있다. 이들을 마치 빈민가의 서사처럼 피해자이거나 어딘가 무례한 사람들로만 전달하는 태도는 정당한가. 다수 생활인들의 목소리와 어떻게 만나고 조직할 수 있을까.

<양승훈 경남대 교수·문화연구자>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