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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외환위기 이후 ‘생계형 자영업’이 늘어났다는 말은 한국 사회에서 상식에 가까웠다. 회사에서 명예퇴직해 치킨집을 차렸다 망하고 편의점을 부부 맞교대로 운영하다가 병에 걸리고 빚이 생겼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최저임금 인상의 반론 중 하나는 자영업자들에게 지대한 타격을 준다는 것이었다. 다른 한편, 역경을 딛고 일어난 ‘흙수저’ 청년 창업가의 신화가 있다. 그런데 논의를 위한 기초적인 질문은 누락되어 있는 것 같다. 자영업자의 수는 얼마나 될까? 누가 어떻게 성공하고 실패하는가?

자영업자의 비중과 숫자는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비슷한 소득 수준의 국가 대비 자영업 비중이 높기 때문에 아직도 구조적으로 더 줄어들 여지가 많다. 최병천 전 국회의원 보좌관이 공개한 국회 토론회 자료를 살펴봤다. 먼저 자영업자 비중은 40년에 걸쳐 추세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자영업자 비중은 1975년 35%에서 2017년 21.3%가 됐고, 올해는 21.1%가량으로 추산된다. 자영업자의 숫자도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는 반짝 자영업자가 증가해 600만명을 돌파했지만, 그 이후 십수년째 내리막길을 걸었고 현재는 570만명 내외다. 주진형의 언급에 따르면 70%는 자기 말고 고용하는 사람이 없다.

자영업자와 무급 가족종사자를 합친 비임금 근로자의 비중은 여전히 25.4%에 달한다. OECD 국가 비임금 근로자의 비중은 14.8%다. 한국에서는 비슷한 경제규모 국가들보다 10% 더 많은 사람들이 자영업을 하거나 가족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무급으로 일하는 중이다. 자영업의 영세성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일본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은 일본의 비임금 근로자 비중이 더 높을 것이라고 추정할 것이다. 사람들은 ‘심야식당’으로 잘 알려진 1인 식당, 부부가 운영하는 가정식 식당, 또는 노포(몇 대에 이어 운영하는 식당) 등을 쉽게 떠올린다. 하지만 일본의 자영업자 비중은 10.4%에 그친다. 일본의 식당도 주로 자영업보다는 중소기업으로서 운영되는 셈이다.

자영업의 어려움에 대한 합당한 분석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손님이 줄었다는 것이다. 전단지 가득 할인쿠폰을 담아 주택가에 뿌리는 슈퍼마켓 정도를 제외하면, 적정 규모 확보와 경영 혁신이 지체된 작은 ‘구멍가게’들은 문을 닫고 있다. 소규모 자영업자들의 동네는 낙후된 풍경으로 묘사될 지경이다. 대단지 아파트에서 자란 젊은 아파트 키드들은 장을 보러 대형마트에 가고, 4500원짜리 담배와 4캔에 1만 원 하는 수입맥주를 사러 편의점에 들른다. 직장인들은 스마트폰을 통해 ‘번개 배송’으로 생수와 전자용품을 사고, ‘기프티콘’으로 친구에게 생일선물을 보낸다. 매출과 이윤은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대규모 유통을 최적화하는 기업들에 발생할 수밖에 없다. 스마트폰 앱으로 치킨, 피자, 보쌈을 시켜 먹는 ‘배달’은 하나의 문화적 코드가 됐다. 소비자가 민감하게 느끼는 자영업의 변화는 단골 치킨집이 망해 다른 곳에 시키는 것 정도다.

먹는 행위도 세분화됐다. 밥을 지어 먹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30대 이하를 살펴보면 대개 아침은 거르고 점심과 저녁은 사먹기 일쑤다. 특별한 일로 외식을 하는 게 아니라 밖에서 먹는 게 일상이다. 한끼 때우는 것도 라면에 삼각김밥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편의점 도시락은 한때 부실한 식사의 전형이었으나 이제는 양질의 재료를 갖춘 5000원대 프리미엄 도시락도 나왔다. 간단히 덥히기만 하면 되는 간편식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한식 메뉴를 제공한다. 새로 등장한 외식은 유통기업들의 영역이 됐다. 대형 케이터링 업체가 제공하는 학교와 회사 구내식당, 편의점 도시락과 간편식 모두 그렇다. 저렴한 동네 밥집의 경쟁 상대는 젊은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프랜차이즈 식당이 아니라 편의점 도시락과 즉석식품이다. 마케팅 분석을 감으로 따라잡기는 힘들다. 소수의 맛집을 제외한 밥집 등 ‘서민식당’은 생활양식의 변화와 유통 혁신 속에서 재구조화 압박을 받는 셈이다.

그런데 자영업 이야기는 늘 비슷하게 흘러간다. 골목상권을 침범하는 유통 대기업의 마수. 대형마트 이야기다. 격주 일요일에 대형마트가 쉬게 됐다. 골목상권에는 대형 프랜차이즈가 입점하지 못한다. 편의점 때문에 슈퍼마켓이 망한다고 한다. 사실 편의점 점주도 자영업자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자영업자가 망하게 생겼다고 한다. 자영업자 중 70%는 자기 말고 고용하는 사람이 없다. 알바 임금이 문제가 되는 경우는 24시간 운영되는 편의점이나 프랜차이즈 식당 아니면 중소기업이다. 기획재정부는 지역별 차등 적용을 검토했다. 그러나 자영업자의 억울함이 풀릴지는 모르겠다. 자영업 자체로 확장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가 자영업자 달래기에 나서는 동안 여론의 장에서 사실관계와 논점은 묘하게 비틀리고, 비평은 공분만 유도하며 건강한 논의를 막는다.

백종원이 국정감사에서 했던 말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샀다. 자영업 시장이 포화상태이기 때문에 자신은 “충분히 준비 안됐으면 하지 말라”고 방송한다고 한다. 정부가 지원할 것은 금융보다 준비 단계란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퇴직자들이 하강하는 자영업에 진입해, 요동치는 소비자들의 니즈에 맞춰 탄력적으로 업을 운영하긴 힘들다. 이들에게 한 번의 실패는 치명적이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안정적인 소득이지 ‘사장님’ 대우가 아니다. 사회적으로도 필요한 것은 퇴직자의 ‘경력’ 활용이다. 제도가 힘을 주어야 하는 부분은 ‘퇴직자 창업’이 아니다.

창업자의 구성은 바뀔 수밖에 없고 바뀌어야 한다. 자영업체 모두를 살리겠다며 제도를 개선하는 것은 효과적이지도 타당하지도 않다. 시장의 조정은 불가피하다. 청년들이 스스로 변화하는 시장의 소비자이자 사업가로서 잘 준비해 도전하고 건실한 사업을 키울 수 있게 지원하는 게 자영업과 중소기업 정책 방향으로 맞다. 공증된 창업 교육을 제공하고, 인증을 브랜드 가치로 살릴 수 있게 돕고, 실패해도 자기평가만 정확하다면 다시 도전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사실 정부의 자원은 한정적이라, 창업 실패 경험이 노동시장에서 온전히 경력이 되게 돕는 것조차 쉽지 않다. 기존 자영업자 달래기보다, 공무원 말고 다른 대안을 상상하지 못하며 도전을 회피하는 청년들에게 “다른 일을 해도 괜찮아” 하고 일으켜 세울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논의가 훨씬 절실한 상황이다.

<양승훈 경남대 교수·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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