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100개가 넘는 한국어 번역본이 있으며, 그 가운데는 내가 번역해서 출간한 책도 들어 있다. 길다고 할 수 없는 동화 한 편이 이만한 대중적 인기를 누리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이제 어른이 되려는 청소년들에게 사랑에 대한 어떤 인식의 첫걸음을 이 책이 안내해 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가 ‘길들이다’라는 동사 하나를 걸어놓고 사랑을 설명하는 말은 명쾌하고 순결하지만 그 내용은 현대의 문화와 제도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반항을 사랑과 연결한다. 나는 최근에 한 출판사의 제안을 받아들여 예전에 번역했던 <어린 왕자>를 다시 번역하여 출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문명을 누리면서 그 문명을 비판한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지를 묻는 질문에 줄곧 사로잡혀 있었다.

어린 왕자는 지구에서 여우를 만났다. 세상의 물정을 깊이 알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조리 있게 말할 수 있는 여우는 현자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그는 길들인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가르쳐 주고, 그 가르침을 실습한다. 인간은 자기가 공들여 일구고 가꾼 것들과만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이 관계를 통해서만 자기 존재를 확장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일만 사람을 사귀고, 일만 가지 물건을 소유하고 있어도, 그중 어느 것 하나도 자신이 마음과 노력을 부어 길들인 것이 아니라면, 그 사람은 이 세상을 살았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는 일만 사람을 바쁘게 만나고 만 가지 물건을 숨차게 끌어 모았지만, 누구에게도, 어느 물건에도, 자기가 살아온 삶의 시간을 새겨 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만 사람은 그를 기억하지 않을 것이며, 만 가지 물건은 그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그는 생애 내내 눈앞에 보자기보다 더 적은 시간밖에는 가지지 못할 것이다. 그가 눈을 감으면 그 시간은 꺼져 버릴 것이다.

여우가 ‘길들인다’고 말하는 것은 자기 아닌 것과 관계를 맺으며, 자신을 그것의 삶 속에, 그것을 자신의 삶 속에 있게 하는 일이다. 존재가 세상에 진정한 뿌리를 내리게 하는 것은 권력이나 소유나 명성이 아니라 이 길들임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어린 왕자가 지구에 도착하기 전에 만난 사람들, 왕, 허영쟁이, 술꾼, 사업가 같은 사람들은 이 비밀을 모른다. 왕은 우주를 지배하고 사업가는 세상을 모두 소유하였지만 그들의 삶은 오히려 졸아들어 있다. 허영쟁이와 술꾼은 자기들 자신에게 사로잡혀 거기서 벗어나지 못한다. <어린 왕자>에서 지식인을 대표하는 지리학자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그에게 세상 만물은 지식의 대상이지만, 그 물건 하나하나를 직접 만나 본 적은 없다. 그는 알 뿐, 사랑하지 않는다.

여우가 시간에 대한 설명을 통해 ‘의례’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의례란 “어떤 시간을 다른 시간과 다르게 하고, 어떤 날을 다른 날과 다르게 하는 것”이다. 확실히 설날이나 생일, 명절이나 제삿날은 다른 날과 다르다. 그런 날의 시간은 특별한 카리스마를 갖는다. 그 시간들은 인간이 살아온 내력이 찍어놓은 기억의 시간이자 무의식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깊은 시간을 도시생활에서 경험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영검도 아파트의 신발장 근처까지 걸어 들어올 수는 없다는 것을 도시민들은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옛날에 어떤 이상한 시간이 있었음을 아는 것만으로 스스로를 대견하다고 여긴다. 생텍쥐페리는 사막에 관해 말했지만, 그 사막은 바로 이 도시를 일컫는 말이었으리라.

그러나 어린 왕자가 이 지구에서 처음 만난 생명도 마지막 접촉한 생명도 뱀이었다. 이 뱀은 여우 못지않게 중요하다. 어린 왕자가 뱀을 처음 만났을 때 함께 있던 시간은 길지 않았다. 대화보다는 침묵이 더 길었다. 뱀은 자기가 누구든 한 번 건드리기만 하면 그가 ‘태어난 땅으로’ 돌려보낼 수 있다고 말하며, 어린 왕자가 자기 별을 정말로 그리워하면 그를 도와 줄 수도 있다고 제안했다. 자기가 태어난 땅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물론 죽는다는 말이다. 그의 말은 여우의 말처럼 이해해야 할 말이 아니라 ‘해석해야 할 말’이다. 그것은 감동해야 할 종류의 말이 아니라 학습해야
할 말이다.


어린왕자 이미지_경향DB


어린 왕자는 여우의 종합으로부터 비밀한 지혜를 얻었지만, 결단의 시간이 다가오자, 그 실천을 위해서 뱀의 분석을 선택했다. 지구는 어린 왕자를 바꿔놓았다. 오두막보다 더 크지 않은 별에 살던 이 우주의 시골뜨기는 벌써 권력자와 상인, 염세가와 허영쟁이를 만났고, 착실한 공무원과 학자를 만났다. 어린 왕자는 그들이 어떻게 소외되어 있는가를 알게 되었지만, 그 자신도 더 이상 천진난만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세상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요청되는 사막이며, 그 사랑은 긴 시간을 거쳐 공들여 만들어져야 한다는 깨달음이, 그가 긴 편력 끝에 순진함을 지불하고 얻은 소득이었다. 그는 줄로 엮은 철새들에 매달려 별들 사이를 이동하여 지구에까지 왔지만, 이미 세상의 물정을 아는 그에게 이 불확실한 목가적 여행 수단이 더 이상 가능한 것일 수 없었다. 그는 뱀에게 물리기로 결심했다. 극단적으로 과격한 이 귀향의 방법은 분석적인 만큼 확실하고 효과적이다.

분 석의 말은 습관을 넘어선 곳에서 만들어지는 말이며, 그래서 충격의 말이다. 사랑으로만 권태를 치료할 수 있을 때, 또는 사랑이 필요하다는 말까지 권태롭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 때, 충격은 거의 유일한 처방이다. 충격은 길들이기가 아니며, 시간을 바치는 일이 아니다. 충격은 관계를 만들지 않는다. 그러나 충격은 허위의 관계가 벗겨진 곳에서 진정한 관계를 드러낸다. 그것은 시간의 얇은 보자기가 찢어진 곳에서 시간의 신비로운 깊이를 판다. 어린 왕자는 이 깊이를 타고 제 별로 갔다.

그런데 어린 왕자를 한 번 깨물어 그의 별로 되돌려 보내는 뱀의 수법은 오늘날 우리의 전자문명과 닮은 점이 많다. 한 번의 ‘딸까닥’으로 열리는 수천 개의 세계. 우리는 이렇게 날마다 뱀의 힘을 빌리는 셈이지만 뱀에게 물리지는 않는다. 말하자면 어떤 결단도 없이 이 세계 저 세계를 날아다니는 것이다. 과학과 기술의 힘은 우리의 존재를 강화하자는 것인데 거꾸로 우리의 존재가 그만큼 졸아든 것이기에 불안하다.


황현산 | 문학평론가·고려대 명예교수


'=====지난 칼럼===== > 황현산의 밤이 선생이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언어, 그 숨은 진실을 위한 여행  (0) 2015.09.16
학술용어의 운명  (0) 2015.08.19
표절에 관하여  (0) 2015.06.24
마더 구스의 노래  (0) 2015.05.27
자기합리화의 코드  (0) 2015.04.24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