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독자들은 <어린 왕자>가 손 가까이에 있다면, 이 책의 제6장을 열어보시라. 어린 왕자는 슬플 때 해가 저무는 풍경을 바라보며 그걸 유일한 위안으로 삼는다는 이야기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장의 끝 부분에서 어린 왕자가 ‘어느 날은 마흔네 번이나 해넘이를 보았다’고 말하는 내용의 문장을 만날 텐데, 어떤 책에는 ‘마흔네 번’이 아니라 ‘마흔세 번’이라고 적혀 있을 것이다. 앞으로 좀 더 거슬러 와서 제4장을 펼치면, 터키의 어느 천문학자가 어린 왕자의 작은 별을 발견하게 된 과정이 서술되어 있다. 여기서 저자는 천문학자들의 관행에 대해 그들이 ‘작은 별을 하나 발견하면 이름 대신 번호를 붙여 주는데, 예를 들어 소행성 325라고 부른다’고 쓴다. 그런데 어떤 책은 ‘소행성 3251’이라고 적고 있을 것이다.

기왕 책을 연 김에 한 대목을 더 찾아보자. 비행사가 어린 왕자를 만나 그의 요청에 따라 양을 그리는 장면이다. 비행사가 두 번째 양을 그렸을 때 어린 왕자는 “아이참… 이게 아니야, 이건 숫양이야, 뿔이 돋고…”라고 말한다. 그런데 어떤 번역본은 ‘숫양’ 대신 ‘염소’라고 옮기고 있다.

간단하게 말한다면, ‘마흔네 번’, ‘소행성 325’, ‘숫양’이 맞고, ‘마흔세 번’, ‘소행성 3251’, ‘염소’는 틀리다. 맞건 틀리건 간에 이 차이가 <어린 왕자>의 이해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고 독자의 기억에 남을 만한 또렷한 인상을 남기는 것도 아니지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궁금하다. 어느 언론사는 “유명 출판사들이 출간한 <어린 왕자> 번역본들이 상당수 일본어판을 번역한 중역”이며 “일본어판의 오류가 수정되지 않은 채 유지되고 있다”는 한 연구자의 말을 전하고 있다. 이 연구자는 특히 ‘염소’와 ‘마흔세 번’이 일본어판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확인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일본어판의 오류가 한국어판에서도 반복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 고질적인 문제”를 “학문적 친일 사대주의”에까지 연결시키려 한다.

나는 이 기사 때문에 지인들로부터 몇 차례 전화를 받았다. 우리의 문제에 일본이 끼어들면 누구나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전화는 대체로 ‘한국의 번역자들이 <어린 왕자>의 번역까지 아직도 일본어판에 의지해야 하느냐’는 한탄에서 시작해서 ‘일본어판에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는다 해도 부분적으로 의지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냐’는 단정적 혐의로 끝난다. 그러나 저 연구자의 주장이 사실에 근거한다고 믿기 어렵기에 해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생텍쥐페리가 미국에 잠시 몸 붙이고 있던 1943년에 <어린 왕자>가 뉴욕의 레이날 앤드 히치콕 출판사에서 프랑스어와 영어로 처음 발간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저자가 미국에서 작성한 두 개의 원고가 있다. 하나는 손으로 쓴 원고로 현재 뉴욕의 피어폰트 모건 라이브러리에 간직되어 있다. 또 하나는 타자기로 작성된 원고로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다. 이 타자본 원고는 보존이 완전하고 생텍쥐페리가 직접 수정한 흔적을 담고 있다. 특히 이 원고는 저자가 미국 체류 시 유명한 피아노 연주자 나디아 불랑제르에게 직접 건네준 것이기에 그만큼 성가가 높다.


1996년 10월 프랑스의 SOGEX가 GLI 컨설팅을 통해 2컷의 이미지를 상표 등록했다. 어린 왕자가 혹성에 서서 별을 바라보고 있는 컷과 어린 왕자가 초록색 망토를 입고 정면을 보는 이미지는 저자인 생텍쥐페리가 그린 것이다. _경향DB



생텍쥐페리가 북아프리카에서 전사한 후, 1946년 프랑스의 갈리마르 출판사가 프랑스어로 발간된 <어린 왕자>는 타자본 원고를 상당히 신뢰했던 것 같다. ‘마흔세 번’은 갈리마르의 프랑스어판에서 비롯하는데, 이는 예의 타자본을 참조한 것이다. 갈리마르판은 또한 어떤 이유에선지 ‘소행성 325’를 ‘소행성 3251’로 적고 있다. 이 텍스트는 한국에 널리 보급되고 대학에서 교재로 자주 사용되었던 1979년의 ‘폴리오 주니어’ 판에서도 바뀌지 않았으며, 그 후로도 20년 동안 책의 크기나 제본 형식이 다른 여러 판본에서 그대로 유지되었다.

갈리마르 출판사가 1999년 플레이아드 총서로 생텍쥐페리 전집을 낼 때, 그 편집자는 <어린 왕자>의 경우 ‘1946년판은 생텍쥐페리가 알지 못하는 판본이지만 1943년 뉴욕판은 그가 직접 참여한 판본’이라는 이유를 들어 ‘원본 복원’을 꾀하였다. 이 조치가 <어린 왕자>에 대한 갈리마르사의 판권 연장에도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1960년에 <어린 왕자>를 처음 한국어로 발간한 안응렬 교수나 그 이후의 선구적 번역자들이 ‘소행성 3251’이나 ‘마흔세 번’을 쓰게 된 것은 일본어판에 의지해서가 아니라 원문에 충실했던 때문이었다. (안응렬 교수는 ‘소혹성’이란 용어를 쓰고 있는데, 1960년은 천문학 용어가 아직 정착되지 않아 행성 혹성이 함께 쓰이던 시대였다.) 1999년 이후의 번역자들이 수정된 원문을 확인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지만 그 오류에 일본어판을 결부시키기는 어렵다. 원문이 수정된 뒤에도, 그 이전에 <어린 왕자>를 만났던 번역자들은 옛날 책을 여전히 서가에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더라도 ‘염소’와 ‘숫양’의 문제는 남는다. 거기에는 일본어와 한국어에 공통된 특징이 있다. 목축국가의 말이 아닌 한국어에서는 숫양과 암양을 구별하기 위해 ‘양’에 ‘암’이나 ‘수’를 붙여 쓰지만, 프랑스어에는 양, 암양, 숫양에 해당하는 각기 독립된 단어 mouton, brebis, belier가 있다. 어린 왕자가 비행사에게 ‘양을 한 마리 그려 달라’고 할 때, 그 양은 mouton이지만 그가 퇴짜를 놓은 것은 belier다. 두 낱말이 완전히 다르기에 이 서술이 가능하다. 그러나 한국어에서 ‘숫양’에는 그 낱말 자체에 ‘양’이 포함되어 있지 않는가. 양을 그려 달라고 했는데, 숫양을 그려준 것이 왜 잘못인가. 이 난점을 해결하기 위해 일본 번역자와 마찬가지로 한국 번역자들이 선택한 것이 ‘염소’였다. 한국의 번역자들이 일본의 번역자를 모방한 것이 아니라 같은 언어적 운명 앞에서 같은 선택을 한 것일 뿐이다. 한국어 번역자들이 ‘숫양’으로 감히 번역하기 시작한 것은 서양말에 대한 우리의 지식과 이해가 더 깊어진 이후의 일이다.

얼마 전에는 ‘우리가 읽은 것은 <이방인>이 아니었다’ 같은 말을 대형서점에 걸어놓고 책을 팔려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문제의 <이방인> 번역자는 그들보다 앞선 시대에 더 힘든 운명에 직면해 더 힘든 선택을 하고 있었다. <어린 왕자>에서 여우가 전하는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은 저마다 직면했던 운명과 그 선택을 깊은 자리까지 뜯어보아야 한다는 뜻도 된다.


황현산 | 고려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