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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세상읽기

‘졸질’ 사회

opinionX 2017. 8. 9. 10:10

사람 중심 경제를 내세운 새 정부가 들어선 덕분일까, 누구나 뻔히 알고 있던 갑질이 마치 전혀 새로운 일인 양 온 나라가 시끄럽다. 이 소란 한복판에 문화사회학자인 나에게는 오히려 ‘졸질’이 눈에 들어온다. 졸질이란 서로가 서로를 졸로 보고 무시하는 것을 말한다. 갑질이 전통사회 양반이 상놈을 부려먹는 작태가 왜곡된 방식으로 되살아난 것이라면, 졸질은 상놈끼리 하대하는 습속이 이어진 것이다. 상놈끼리는 상대방이 이룬 성취가 하찮아 보이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우습게 본다. 문제는 상대방이 외부집단의 타자가 아니라 자신이 속한 집단 성원이라는 점이다. 같은 집단 성원을 졸로 대함으로써 결국 자신도 졸이 된다. 집단 전체가 졸이 됨은 물론이다.

내가 몸담고 있는 대학과 학문 세계를 보자. 한때 지성의 장으로 추앙받던 대학은 시장이 단기적으로 요구하는 인재를 맞춤 생산하는 위탁 기관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여기에는 교육당국이 큰 몫을 했다. 학령인구가 급감한다며 대학 정원 줄이기에 나섰다. 그냥 줄이라고 밀어붙이기에는 뭐하니까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라며 모든 학과를 시장친화형으로 특성화하라고 들볶는다. 대학은 이러한 요구가 얼마나 허무맹랑한지 뻔히 안다. 그런데도 교육당국이 내려보내는 사업비를 따내기 위해 열을 올린다. 어차피 등록금이 수년째 동결되어 재정 지원에 목마른 터다. 지표가 제일 중요하다. 그중 취업률은 모든 지표의 알파요 오메가다. 취업률이 낮은 학과는 통폐합 대상이다.

대학은 교육당국의 요구를 따르면서도 속으로는 비웃는다. 시장의 요구가 얼마나 빨리 변하는데. 대학의 학과가 기업의 태스크포스인가? 태스크가 바뀔 때마다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임시부서란 말인가? 학과 자체가 특성화된 것인데, 뭘 또 특성화하라는 건가? 학과 특성에 맞게 잘 가르치면 될 일 아닌가? 융합, 융합 하는데 융합도 전공을 깊이 배워야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융합이 무슨 조각난 쇠붙이 용접인가? 얇고 넓은 지식 백날 배운다고 융합이 어찌 가능할까? 교육당국도 이런 속내를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교육당국은 요구하고 대학은 따른다. 짝짜꿍이 되어 서로가 서로를 졸로 본다.

학문 세계는 또 어떤가? 학자들은 교육당국이 정한 지표에 따라 연구 능력을 평가받기 위해 피 말리는 단기 전투를 벌이고 있다. 이 전투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매년 평가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영어로 써서 외국 학술지에 내면 논문 한 편당 두세 편 쳐준다는 것이다. 공공성을 추구하는 국가기관이 국민이 낸 세금을 가지고 자기가 개발한 지표는 100으로 하고, 이윤을 추구하는 외국 사기업이 만든 남의 지표를 200이나 300으로 한다. 한국어로 쓴 논문을 졸로 보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우스꽝스러운 현실에 한국어로 글을 쓸 때마다 자괴감을 느낀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한국어로 쓴 글을 우습게 알고 한글 논문은 인용하지 않고 영어 논문만 참고문헌에 잔뜩 나열한다. 영어 논문 번역해주는 업체들만 신났다. 더 좋은 한국 사회를 만들기 위한 장기적인 전망을 가지고 창의적인 연구와 제자 양성에 전념하는 대신에 외국 학술지에 논문 싣는 방법에 몰두한다. 그런 연구자를 우수학자라며 교수로 임용하고 연구비를 지원하고 상을 주는 웃기는 사회. 국내박사, 특히 지방대 국내박사는 전혀 설 자리가 없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 학문공동체가 형성될 리 없고, 더더욱 재생산될 까닭이 없다. 이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교육당국, 사실상 학문공동체 양성을 포기했다.

대학원은 졸을 생산하는 기관으로 추락하였다. 최근 석사 논문을 없앨 것인지 결정해서 알려달라는 공문을 받고 모든 학과가 난리 났다. 석사 논문을 없애면 어떻게 될까? 일정 학점만 채우면 자동 석사 학위를 받게 된다. 그러면 지도교수도 필요 없다. 차라리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어차피 표절과 짜깁기로 아무도 읽지 않는 학위 논문을 찍어내도록 할 바에야. 그것도, 한국어로. 하지만 이런 형국에 누가 진정 학문을 위해 대학원에 오겠는가? 석사 논문 하나 쓸 능력도 키워주지 못하는 대학원에. 지방대생은 학위 세탁하기 위해 서울대학원(서울 소재 대학원)에 가고, 서울대생(서울 소재 대학에 다니는 학생)은 석사 마치고 언어 세탁하기 위해 유학 간다. 미국에 가서 영어로 학위 논문을 써야 졸로 취급받지 않는다. 영어 논문 쓰는 방법을 배워 외국 학술지에 논문을 실어야 그나마 취업문이 열린다. 국내 대학원이 텅텅 비어간다. 어쩌다 박사 학위자가 나온다 해도 지도교수는 제대로 지도하지 않은 학위를 볼품없다 무시하고 학생은 자기가 쓴 학위 논문을 남 앞에 내놓기가 부끄럽다. 졸질 사회가 따로 없다.

최종렬 | 계명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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