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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착각’은 무죄인가?

opinionX 2015. 4. 6. 21:00

며칠 전 이 기사, 만우절을 즐겁게 보내자고 정부 대표로 이완구 국무총리가 멋진 농담 또는 거짓말을 날린 것으로 착각했다. 아니었다. 필자의 착각이었다. 신문을 인용한다.

<이 총리는 “(기름띠 제거) 부직포 하나 제대로 배달되지 않았다”며 “그것을 중앙부처 관리자들이 알았을까”라고 반문했다. 이어 “(도지사가) 전국 시·군에 호소하고, 언론을 찾아다니면서 ‘도와주십시오’ 하고 애걸복걸한 끝에 130만명이라는 자원봉사자가 다녀간 것”이라고 했다.>

‘울부짖어도…’ 등의 제목으로 이 발언은 언론에서 꽤 각광받았다. 2007년 태안 기름유출 사고를 치른 도지사 경험을 토대로 공무원들에게 ‘한말씀’ 한 것이다. 취지는 현장에 무관심한 공무원들의 안이한 대처를 지적 또는 질타(叱咤)하고자 한 것이었겠다.

그 글 중 ‘130만명의 자원봉사자가 다녀간 것’의 원인에 대한 언급이 눈에 띈 것은, 다른 많은 시민들처럼, 당시를 아는 필자에겐 당연하다. 대학 휴학 중 시간제 일도 못 구해 힘든 시기를 지내던 아들도 친구들과 몇 차례 제 돈 들여 다녀왔다. 사진을 보며 고맙고 뭉클했다.

아들은 ‘이완구 도지사의 애걸복걸’ 때문에 태안 바다에 갔던 것이 아니다. 필자 또한 그래서 마음 쓰렸던 것이 아니다. 아들은 지금도 그때의 그가 누군지 모른다. 노력을 안 했다는 건 아니다. 했다. 도지사였지 않은가? 아마, 총리의 착각일 것이다. 아니면, 지금이라도 ‘웃자고 드린 말씀’ 하며 사람 좋아 보이는 눈웃음을 보여주든지.

국민은 착각하지 않는다. 남의 떡으로 생색내면 마침내는 ‘싸다구’다. 그 130만명의 실소·냉소가 보이는 듯하다. ‘썩소’라 하던가. 정치적 이미지의 생산 형태를 보여주는 생생한 모델 케이스일까? 아, 정치인은 저렇게, 제가 한 일이었다고 여기는구나. 우격다짐일까? 아니라고, 단지 그의 착각이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착각(錯覺)은 실제와 다르게 느끼는[覺] 것이다. 錯은 ‘섞인다’는 뜻, (정신)착란처럼 쓰인다. 錯은 ‘아쉽다’는 석별의 석(惜)자와도 같이 접때 또는 옛날이란 석(昔)자가 바탕이다. 昔은 한자 자형(字形) 중 가장 나이가 많은 갑골문에서부터 나온다. 3500년 전 황하 유역의 옛 동아시아 사람들에게 ‘옛날’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홍수(洪水) 설화는, 우리도 그렇지만, 전 세계 겨레붙이들의 공통적인 까마득한 기억이다. 터키의 아라라트 산 어디엔가 묶여 있었다고 하는 성서의 노아의 방주나, 무수한 중국 인구에 아부하고자 신화를 비틀었다는 혐의도 받는 미국 영화 <2012> 등도 그 옛 큰물을 되새긴다.

그 큰물은 모든 것을 앗았다. 한참 후 갑골문의 해가 방싯 웃었다(그림). 그 스토리는 그 기호를 뜻으로 빚었다. 그리고 모두 그 일을 잊었다. 큰물은 인간의 바탕에 상처로만 남았다.

착(錯)의 석(昔)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인류는 다 잊힌 그 이야기를 붙잡아 오래 지켰다. 설화의 존재 형태일 터다. ‘잊기 쉬운 그 일’ 昔은 그래서 쉬 사람을 착각에 들게도 하는 정신작용이다. 아닌데, (나는) 그렇게 아는 것이 착각이다. 망각(忘却)과도 같은 이 큰 단어를 읽는 도리는, 인간 본디도 함께 가리킨다. 본능에 가까우나, 공직자의 錯覺까지 ‘무죄’일 수 있을까?


강상헌 | 언론인·우리글진흥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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