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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옥 대법관 후보자는 어제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축소·은폐한 검찰 수사팀 일원으로서 일말의 책임감이나 양심의 가책마저도 내보이지 않았다. 박 후보자는 축소·은폐 의혹은 물론 재판기록 등을 통해 드러난 ‘부실 수사’ 사실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 후보자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수사가 부끄럽지 않다’는 투로 강변했고, “내가 열심히 수사해서 이 사건의 진상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대법관 후보자가 박종철씨 사건의 검찰 수사팀 일원이었다는 게 드러난 뒤 ‘막내 검사로서 무슨 힘이 있었겠느냐’고 변명하던 태도마저 뒤집고 외려 ‘떳떳하다’고 대든 꼴이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수사에 대해 같은 수사팀의 일원이었던 안상수 전 검사(현 창원시장)는 ‘치욕적이었다’고 자신의 책에서 술회하고 있다. 그럼에도 “검찰의 본분을 저버리는 처신을 결코 하지 않았다”는 박 후보자의 장담은 대체 어디에 근거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

박 후보자가 무슨 변명을 한들, 당시 검찰 수사팀은 1차 수사에서 공범의 존재나 경찰의 조직적인 축소·은폐 시도를 밝혀내지 못했다. 못한 게 아니라 하지 않았다고 해야 맞다. 사건 당사자인 ‘고문 경찰관’이 최근 “당시 검찰이 박종철 수사 주무자도 확인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검찰은 현장 검증도 실시하지 않았다. 주무 경찰관이 누구인지도 확인않고, 고문치사라는 중대한 범죄에 대해 현장 검증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은 검찰이 제대로 수사할 의지가 없었음을 방증한다. 게다가 검찰은 1987년 2월 박종철씨를 고문한 경찰관에게서 ‘공범이 3명 더 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도 뭉개다가, 그해 5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폭로가 나오고서야 2차 수사에 들어갔다. 박 후보자가 ‘진상규명을 해냈다’고 밝힌 2차 수사 때에도 사건의 ‘몸통’인 강민창 치안본부장을 무혐의 처리했다. 강 치안본부장은 박종철씨 부검의의 폭로가 나온 뒤 이듬해 1월 3차 수사에서 구속됐다. 종합하면 박 후보자가 참여한 검찰 수사팀의 행태는 축소·은폐를 의도했다고 볼 수밖에 없고, 최소한 무능력한 부실 수사를 했다는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참여연대, 한국여성단체연합,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26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박상옥 대법관 후보 임명반대 공동 성명발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출처 : 경향DB)


국가권력의 야만적 폭력이 빚은 박종철씨 고문치사 사건의 축소·은폐에 관여한 검찰 수사팀의 일원이 정의와 인권의 최후 보루인 대법관에 오르는 건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다. 박 후보자는 어제 인사청문회에서 검찰 역사에 치욕으로 남은 ‘부실 수사’의 당사자로서 최소한의 반성과 자책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토록 인권 감수성과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 허술한 사람을 대법관에 앉히는 것은 반역사적 퇴행이며 헌법 가치에 대한 배반이다. 국회는 대법관 자격이 없는 박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통과시켜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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