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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어느 날, 필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 게시판에 ‘2015년 최저임금 인상 관련 경비체제 개선방안’이 공고되었다. 2015년도 최저임금이 5580원으로 인상됨에 따라 입주민의 관리비 인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경비원을 감원하겠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다음과 같은 요지의 글을 써서 주민대표에게 전달했고, 이 글을 필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 1, 2호 라인 출입구에만 게시해 두었다.

“저는 현재의 경비원을 감원하지 않고 2015년도 최저임금을 적용하여 급여를 인상해주는 방안도 주민들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 경우 세대당 월 5999원의 부담이 늘어난다고 되어 있습니다만 경비원을 감원하는 방안보다는 우리 아파트가 좀 더 안전할 것입니다. 안전은 중요한 문제이므로 이를 배제한 선택보다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아파트를 선호하는 주민들의 의사도 표현되어야 합니다. 최저임금은 매년 인상됩니다. 우리 주민들이 그 인상분만큼을 감당하지 않고 경비인력이나 경비시간을 줄인다면 향후 몇 년 내에는 아예 아파트 경비인력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지난 4월 우리 사회는 세월호 사건이라는 엄청난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 사건은 안전을 외면한 채 경제적 효율성만을 바라보고 달려온 우리의 근대화 과정의 문제가 축적되어 나타난 현상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경제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에 대한 고려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더구나 우리가 사는 이 아파트는 가장 소중한 가족들이 머무는 곳이기에 안전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며칠 후 필자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은 채 경비원 감원에 찬성하는지 묻는 방식으로 투표가 진행되었고 주민대표의 의도대로 70%의 주민이 감원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 결정으로 우리 아파트 경비초소 하나가 사라지게 됐다. 그런데 필자가 게시해 둔 글을 읽은 1, 2호 라인 주민들 대부분은 경비원 감원에 반대표를 던졌다. 감원으로 인한 안전 문제도 고려하자는 필자의 의견이 균형 있게 제시되었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알바노조 회원들이 14일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최저임금 1만원 운동 과정에서 부과된 1500만원의 벌금에 대해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독일에 사는 필자의 지인이 지난봄 부활절 기간에 관광버스를 이용해서 독일에서 이탈리아로 여행을 다녀왔다. 그가 필자에게 전해준 여행 소감의 첫 번째는 이탈리아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가 탄 독일의 관광버스에는 운전기사가 두 명이 탑승해서 교대로 운전을 하더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아직 ‘안전을 위해 대기하는 운전기사의 비용’까지 부담하면서 여행을 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피곤한 몸으로 장시간 혼자서 운전을 해야 하는 그 한 명의 기사에게조차도 최소비용만을 지불하려는 방식으로 구조화되어 있는 사회인 듯하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안전을 도외시하면서 사고가 나지 않도록 요행만을 바랄 수는 없는 일이다. 무조건 당장의 비용을 줄이려 하기보다는 보이지 않는 위험에 대해서도 균형 있게 생각해보는 사회, 나아가 안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유신열 | 고려대 행정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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