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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신뢰도를 말하자면 바닥 정도가 아니라 지하실 수준이다. 검찰이 먹는 욕은 한마디로 ‘산 권력의 해결사 노릇을 한다’는 것이다. 최근 수사 흐름을 봐도 의심을 살 만하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수영계 비리 수사에 착수해 마무리 단계에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 수영계를 둘러싼 고질적인 비리의 단면이 드러난 것은 분명 성과다. 그러나 체육계에서는 정부가 추진한 체육정책에 반발한 이기흥 한국수영연맹 회장을 손보려는 의도란 말이 나왔다. 이 회장은 결국 사의를 밝혔다.

특수2부는 지난해 마무리하는 듯하던 KT&G 수사를 올해 다시 꺼내들었다. 지난해 7월부터 수사해 민영진 전 사장을 구속기소했지만 새로 취임한 백복인 사장을 추가로 겨냥한 모양새다. 정부가 특정 인물을 후임 사장으로 임명하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얘기가 돌았다.

압권은 형사1부의 허준영 측 압수수색이다. 검찰은 지난달 자유총연맹 회장 선거를 이틀 앞두고 용산개발 관련 비리 혐의로 허준영 전 코레일 사장의 측근 손모씨의 사무실 등을 덮쳤다. 허 전 사장은 연임에 실패했고 ‘친박’ 인사가 당선됐다.

일선 수사팀이야 최선을 다해 주어진 사건을 추적해나갈 뿐이지만,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그렇게 순진하지 않다. 정치권력은 늘 ‘자리’가 필요하다. 크고작은 도움을 준 이들을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보상이 없으면 따르는 이가 없는 게 정치판이다. 그러나 ‘자리’는 제한돼 있어, 때론 우악스러운 방식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또 권력 입장에선 손봐야 할 각계의 ‘삐딱이’들도 생겨난다. 이 과정에 검찰이 단골손님처럼 등장한다. 지난해 농협, 포스코 수사도 비슷한 맥락에서 회자된다. 재벌 비리 수사 따윈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검찰이 털면 십중팔구 먼지가 나오니 정치권력 입장에서는 요긴한 병기로 보일 수밖에 없다. 수사 착수만으로도 백기를 드는 사람도 제법 되니 더욱 그렇다.

'정윤회 문건' 유출 관련 조응천·박관천 1심 선고 결과_경향DB

‘해결사’의 진면목은 위기 때 더 두드러진다. 비선실세 의혹인 ‘정윤회 문건 파문’이 불거지자 검찰은 문건이 어떻게 유출됐는지에 수사력을 집중해 여론 방향을 틀었다. 세월호 침몰이 생중계되자 정부 대처문제와는 다소 동떨어진 유병언을 수사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온 국민은 유병언이라는 사람이 잡히기만을 기도했고 때아닌 사이비 종교 논란도 벌어졌다. 성완종 리스트 사건이 터지자, 검찰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청와대 비서실과 대통령의 대선캠프 출신만 제외하고 레이저 시술을 했다.

구조적으로 검찰이 청와대 수중에 있어서 그렇다. 청와대가 검찰 인사권을 틀어쥐고 있으니 승진에서 밀리지 않으려는 ‘공무원’들이 꼼짝 못한다. 특히 이 정부는 검찰의 이런 취약한 구조를 누구보다 잘 아는 듯하다. 사실상 유일한 ‘불안 요소’였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도 없앤 마당이니, 마음 놓고 검찰의 내부 역학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보고 활용한다. 한때 55명이던 검사장 수를 49명으로 줄여 숨구멍도 조여놓았다.

이런 구조로는 신뢰 회복은커녕 하는 수사마다 망하기 십상이다. 김수남 검찰총장이 예수라도 지금의 검찰을 구원할 수 없다.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병기’의 날을 무디게 만드는 것이다. 경찰이든 공수처든, 검찰의 힘의 요체인 ‘독점 기소권’을 분산하는 경쟁체제를 구축해 권력자의 장악 의지를 약화하는 쪽이 한 갈래다. 또 하나는 병기를 국민에게 돌려주는 방식이다. 고위직 검사 선출제 도입 등이 거론된다.

한때 권력이 검찰을 놓아준 적도 있다. 그러나 그때뿐이었다. 이제 검찰을 다루는 권력자의 선의에만 기댈 수 없음이 명백해졌다. 이런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어쩌면 이 정부는 검찰 대개혁의 출발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홍재원 |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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