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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문화와 삶

군대 이야기

opinionX 2014. 8. 20. 21:30

얼마 전까지도 군대에 끌려가는 꿈을 꾸었다. 까맣게 잊었다고 믿은 중대장이 어제 만난 사람처럼 생생하게 내 앞에 나타나 네 전역은 행정 오류였으니 다시 입대해야 한다며 나를 데리고 갔다. 나는 재입대가 얼마나 부당한지를 항의했으나 희한하게도 그런 꿈을 꿀 때면 어디에 항의해야 할지조차 알지 못했다. 군대 이야기만큼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가 또 없으나 나는 이 글에서 사소한 사연 하나를 풀어 볼 생각이다.

나는 강원도 철원에서 복무했다. 당시 복무기간은 26개월이었고 또래의 친구들보다 서너 해 늦게 입대했다. 훈련병 시절이 끝나고 부대를 배치받았다. 신병 생활은 고달팠다. 선임병들이 군기를 잡는다는 명목으로 일상적으로 폭언을 퍼붓고 얼차려를 비롯해 수없이 많은 행동과 생활의 제약을 가한 탓이었다. 계급장 떼고 맞짱 뜨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또한 나는 그들의 일상적인 불행을 목격했다. 어떤 이는 축구를 하다 정강이뼈가 부러져 영원히 그 다리를 절게 되었고 어떤 이는 내 눈앞에서 갑자기 넘어진 취사장 철문에 팔뚝 살갗이 해부도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형태로 벗겨지기도 했다. 피를 뚝뚝 흘리는 그이의 팔뚝을 잡고 의무대로 달려가던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뿐이랴. 휴가를 나갔다가 복귀하지 않아 체포되어 영창에 간 이도 있었고 온몸을 유리조각으로 자해한 이도 있었다. 나는 말라리아에 걸려 이송되었다. 처음에는 열이 오르락내리락하는 터라 단순한 몸살로 여기기도 했다. 대대 의무실에 한동안 입실해 있다가 사단 의무대로 혈액검사를 받으러 간 뒤에야 말라리아 판정을 받았다. 정신질환을 앓는 병사들, 결핵 환자들과 함께 격리병동에 입원한 채 병실 창밖으로 내리는 봄비를 보았다. 오한이 찾아온 뒤 체온이 40도를 넘어가면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고 온몸에 멍이 든 것처럼 욱신거렸다. 밤마다 정신질환을 앓는 병사들의 병실에서 들려오는 기이한 울음을 들으며 뒤척였다. 설령 저 신음 가운데 고된 군생활을 벗어나기 위해 거짓으로 그러는 병사가 있다 해도 노여움이 생기지 않을 만큼 속 깊은 울음들이었다. 그럴 때 드는 생각은 과연 내가 살아서 이 컴컴한 암흑의 시기를 빠져나갈 수 있느냐였다. 지금 이 순간 군 복무 중인 청년들도 그런 두려움과 공포를 감당하고 있을 것이다.

말라리아를 치료하고 소속 부대로 복귀한 나는 뜻밖에도 고향집에서 연락이 왔다는 전갈을 받았다. 주말에 한 번씩 전화를 하던 녀석인데 갑자기 몇 주 동안 소식이 끊겨 불안했던 아버지가 부대로 전화를 했던 거였다. 워낙 우리 부자는 소 닭 보듯 하는 사이인지라 서로에게 애정을 품었다 해도 표현해 본 적이 없을뿐더러 그걸 표현해야 하는 건지도 몰랐다는 게 정직한 고백일 것이다. 한마디로 아버지는 목석 같은 구석이 있었다. 그런 아버지가 직접 부대로 전화를 걸어 말라리아에 걸려 이송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소대장에게 왜 알려주지 않았느냐면서 불같이 화를 냈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막사 뒤편 야외화장실에 처박혀 조금 울었던 것도 같다. 세상과 나를 이어주는 가느다란 끈 하나가 여전히 내게 있다는 위로를 받았다. 어느 부모라고 다를까. 하물며 자식이 군대에서 싸늘한 시체가 되어 돌아왔다면 그이가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윤 일병이 사망한 경기도 연천군 28사단 포병부대의 내무반옆 공중전화 박스에 군대내 언어폭력 근절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출처 : 경향DB)


병사 개개인의 인권의식이 부족해서 이런 사건이 되풀이된다고 믿는 건 순진하거나 음흉하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우리가 사는 이 사회가 민주주의를 몰라서 독재가 횡행할 수 있는 게 아니듯이 군대라는 울타리 안에서 일어나는 비인간적인 사건들은 군대라는 제도, 조직의 비인간성을 반영한다. 이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사건의 진상을 축소·은폐하고 왜곡하려는 시도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바로 그 증거이다. 군대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종종 이런 말을 듣는다. 너도 이제 진짜 사내가 되었구나. 감히 말하건대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신뢰할 필요가 없다.


손홍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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