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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자들은 얼마 전까지 시민들이 의견을 자유로이 교환하고 토론하고 합의하는 민주주의 마당으로서 온라인 공간, 특히 소셜미디어의 가능성을 말해왔다. ‘아랍의 봄’, 오바마 재선에서 드러났던 시민의 참여, 한국의 촛불시위는 모두 그러한 흐름을 기술적으로도 대변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브렉시트, 미국 대선에서의 도널드 트럼프 당선, 여론조사에는 응답하지 않는 ‘숨은 보수’ 현상 등은 온라인 공간에 대한 몇 가지 근본적인 의심을 갖게 한다.
우선 시민들의 생각이 데이터 과학 알고리즘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걸러지고 서로 교류하지 않고 서로 접촉하지 않게 될 수 있음이 드러났다. 최근 실리콘밸리 데이터 과학자 사이에서 뜨거웠던 논쟁이 ‘필터 버블’이었다. 필터 버블은 위키백과에 따르면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의 인터넷 정보제공자가 각각의 사용자에 맞추어 개인화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사용자가 이미 필터링된 정보만을 접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내가 좋아하는 상품이나 콘텐츠는 나와 취향이 비슷한 동료도 좋아할 가능성이 높다. 정치도 마찬가지였다. 진보진영 지지자가 페이스북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기사와 팟캐스트 링크에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남기다 보면, 보수진영 지지자들의 포스팅은 못 볼 확률이 높아진다. ‘대통령 선거 후보’를 검색할 경우, 민주당 ‘잠룡’들만 보이는 식이다. 사용자는 구글과 페이스북을 자신에게 ‘길들인다’고 느끼겠지만 은연중에 무의식적으로 편향된 정보만 접하게 된다.
‘예측’이 불발되고 온라인에 떠도는 정보의 신뢰도가 심각하게 떨어지는 경우가 생겼다. 2012년 미국 대선 결과를 주 단위까지 예측했던 데이터 과학자 네이트 실버는 2016년의 예측 불발로 망신을 샀다. 이론적 기반 중 하나인 ‘베이즈 통계학’은 사전 경험과 현재의 증거를 토대로 정확성을 높인다. 하지만 데이터 과학의 금언처럼 “쓰레기가 들어가면 쓰레기가 나온다”. 여론조사나 출구조사에서 트럼프 지지자나 무당파들의 목소리가 가려진 채 민주당 지지자들의 목소리로 과장된 ‘빅데이터’가 제공됐다. 예측 역시 편향되었다.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갖고 있는 정보를 알 수 없는 이상 복잡한 ‘소음’ 속에서 ‘신호’를 잡아낸다는 기획은 맞을 리 없었다.
계층과 세대에 따라 다른 소셜미디어 활용에 따라 ‘분리의 정치’와 ‘혐오’가 강화된다는 것도 큰 위험이다. 한국의 장년층 이상은 정치적 정보를 교류하기 위해 카카오톡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단체 카톡방’에서는 기초적인 사실부터 의심해봐야 할 다양한 정보가 떠다닌다. 트위터는 읽고 싶은 사람의 축약된 메시지만 보게 하고 자신의 무리와 적대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을 ‘조리돌림’하기에 최적화된 플랫폼이 됐다. 페이스북은 긴 글을 쓰는 식자층의 게시판이 됐다. ‘우리 편 전문가’의 이야기가 ‘우리끼리’ 회자되어 공유되고 ‘좋아요’로 정체성이 된다. 서로서로 “그런 건 궁금하지 않으니 안 보면 된다”는 인식도 더 강해진다.
물론 한국은 미국과 달리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털사이트가 여전히 뉴스 소비의 주된 원천이고, 시민 전체의 선호도를 기준으로 뉴스가 배분되는 방식에 가깝다. 촛불시위를 통해 서로 생각이 다른 시민들끼리도 한목소리를 모을 수 있다는 것도 경험했다. 의식적인 필터링이 발생할 수 있는 편향도 소셜미디어 인심과 오프라인 인심의 편차를 확인한 정당과 정치인들이 이해하게 됐다.
그렇다고 온라인 공간과 민주주의에 대해 낙관할 순 없다. 우리는 가정과 학교와 일터에서 토론해 민주적으로 합의하는 것보다 누군가 결정하고 따르는 것에 익숙하다. 취약한 민주주의적 배경에서 다른 생각과 타협하기보다 눈앞에서 ‘치워 버리길’ 원하는 경향도 강해지고 있다. 경제적 위기는 그러한 혐오가 발산될 판을 깔 수 있다. 세계적인 민주주의 위기는 모두 그렇게 증폭됐다.
양승훈 | 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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