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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다난’이라는 표현으로는 충분치 않은 묵은 해가 지나고 기어코 새해가 밝았다. 지난 한 해 우리는 존재한다고 믿었던 상식과 원칙이 모두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아니, 보다 분명하게는 이미 오래전부터 무너져 있었지만 그동안 감춰졌던 우리 사회의 적폐(積弊)의 일부가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냈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대통령에게 주어진 엄청난 권한을 선거에서 주권자에게 약속한 대로만 사용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그동안 국민에게 약속한 선거 공약은 제대로 지키지 않고, 개인적인 친분관계를 위해 대통령의 권한을 남용했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재벌과 기업은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권력자를 돈으로 매수했고, 부정한 청탁으로 제 잇속을 챙겼다. 직언을 해야 할 참모들은 의식적으로 외면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았거나, 적극적으로 공모했다.

그동안 정부는 분초를 다투는 국가적 재난에 무능력하고 무책임하게 대응했고, 결국 절대로 그렇게 보낼 수 없는 보석 같은 아이들이 우리의 곁을 떠났다. 충분한 토론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정책이 정부의 일방적이고 독단적인 결정으로 밀어붙여지는 경우도 많았다. 경제정책도 낙제점이다. 가계빚은 지난 3년간 240조원이나 폭증했고, 국가채무도 600조원을 넘어섰다. 우연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계획적으로 힘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 되는 정책들이 많아졌고, 평범한 시민들에게는 하루하루가 악재의 연속이었다.

지난해 12월 3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6차 주말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서 거대한 파도를 연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절망의 순간들이 끝도 없이 이어졌지만, 시민들은 그 절망 속에서도 ‘촛불’이라는 희망을 피워냈다. 12월의 마지막 날까지 모두 열 번에 걸친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렸다. 누적 인원의 숫자는 1000만명을 넘겼다. 숫자의 헤아림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많은 시민들이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외쳤던 경험은 앞으로 우리 사회가 변화하는 데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자발적으로 광장에 나온 한 사람, 한 사람이 당당하게 주권자인 자신의 목소리를 표현하고, 서로의 목소리에 최선을 다해 귀 기울이던 촛불집회의 모습은 새로운 사회의 밑그림이 되기 충분하다. 그러나 한 편의 예술작품이 완성되려면 밑그림 위에 반드시 아름다운 색칠이 더해져야 한다. 광장에서 확인한 민주주의라는 밑그림에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사회에 대한 다양하고 풍부한 상상력의 색깔이 칠해질 때까지 촛불은 계속되어야 한다. 새로운 한 해의 출발점에서, 1000만의 촛불이 그려온 우리 사회의 밑그림에 칠해지길 희망하는 새해 소망을 두서없이 적어본다.

2017년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그 자체로 충분히 존중받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한다. 남녀노소, 국가, 종교, 장애, 빈부가 개인을 설명하는 개성 넘치는 내용일 뿐, 부당한 차별과 배제의 대상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성’이 국가가 관리하는 출산의 도구가 아니라 스스로 임신과 출산을 결정할 권리를 가진 온전한 인간으로 존중받고, ‘이주민’이 잠재적 범죄자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공존과 다양성의 원천이 되길 소망한다. 힘 있는 사람들만 누리던 특권이 모든 사람들에게 보장되는 보편적 인권의 기준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안전’ ‘평등’ ‘민주주의’ ‘사랑’과 같은 아름다운 단어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화석화된 문자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에 스며들어 살아 숨쉬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새로운 사회는 결코 바라고 소망한다고 해서 자연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다른 누군가가 대신 만들어줄 수도 없다. 1000만 촛불의 바다를 만들어낸 한 부분이자, 제 몫의 어둠을 온전히 지워낸 하나의 촛불이 올 한 해 각자의 삶의 일터에서 제 몫의 빛을 밝혀내어야 한다. 오늘보다 더 아름다울 내일을 위해서.

조영관 | 이주민센터 ‘친구’ 상근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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