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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 독일 정부가 구글, 페이스북 및 트위터 등 세계적인 온라인 소통망 기업들과 의미 있는 합의에 도달했다는 내용이 영국 BBC 방송을 통해 보도됐다.

최근 시리아 난민사태 및 파리 테러의 여파로 인종차별과 특정 종교 비하, 사회적 소수와 약자 공격 등의 ‘혐오 발언’이 난무하는 상황에 대한 특단의 조치다. 합의에 도달한 뒤 독일 법무부 장관은 “온라인이 극우주의자들의 놀이터가 돼서는 안 된다”며 환영했다.

앞으로 독일 온라인상에서 ‘혐오 발언’이 게시될 경우 24시간 이내에 삭제된다. 나치 독일의 인종차별과 학살 등 반인륜적 범죄행위로 인한 국가적, 민족적 죄책감을 받아들이고 ‘영구 속죄’를 천명한 독일의 ‘고뇌에 찬 결단’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상황은 어떤가? 전라도라는 지역, 여성이라는 특정 젠더, 진보라는 정치성향, 야당이라는 특정 정파 및 대통령과 정부정책 등에 비판적인 시민들을 향한 차별과 혐오 발언이 온라인에 넘친다. 심지어 지난 대선 기간에는 국가정보원과 군 사이버사령부라는 핵심 국가안보 기관에서 공식업무로 혐오발언을 조직적으로 제작·유포한 사실이 밝혀져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혐오발언을 쏟아낸 ‘좌익효수’라는 아이디 사용자는 국정원 직원임이 밝혀졌음에도 여전히 그 신분을 유지하며, 국정원의 지원과 보호하에 사법적인 방어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뿐인가? 혐오발언을 누가 누가 더 잘하나 경쟁하는 공간인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라는 사이트는 정부의 묵인하에 여전히 ‘성업’ 중이다. 더구나 새누리당은 대변인을 통해 “일베는 순수 네티즌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공간으로 유명하다”(조선일보 2012년 12월14일)라면서 강력한 지지와 승인 성명을 발표한 뒤 아직까지 이들과의 관계를 청산하지 않고 있다.

세월호 침몰 참사 엿새째인 21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 선착장에서 119구조대원들이 사고 해역에서 수습한 시신을 옮기고 있다._강윤중 기자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 국정원의 이탈리아 보안업체 해킹프로그램 구입, 역사교과서 국정화, 대형 집회 시위 등 정부와 여당에 악재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지원 관변단체와 일베 등 극우성향 커뮤니티의 혐오발언은 그 정도와 양에 심각한 증가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에는 대통령이 마스크 등으로 얼굴을 가린 채 집회시위에 참가하는 시민을 극단주의 테러단체 IS에 비유하며 혐오발언을 스스로 부추기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총리와 장관 등 정부요인들이 가세했음은 물론이다. 심지어 엄정 중립을 유지하며 혐오발언 방지와 단속에 나서야 할 김수남 신임 검찰총장은 취임사를 통해 집회 시위 폭력행위자를 ‘체제전복세력’이라고 규정하며 “더 이상 발붙이지 못하도록 원천봉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친정부 친여당 극우 혐오발언 세력들에게는 마치 정부의 공식적인 ‘공격 개시’ 명령과 같은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새누리당과 정부 및 이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대통령과 정부를 비방하고 공격하는 것이야말로 혐오발언”이라고. 심각한 오해다. 세계인권선언의 표현의 자유 조항(19조) 및 각국의 법체계는 대통령 등 고위공직자와 정부기관 등 ‘공적인물’에 대한 어떠한 비판이나 비난 표현도 허용돼야 한다고 천명한다.

민주주의를 자랑하는 국가 중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대통령을 비판하는 전단을 돌리고 온라인상에 글을 올리는 사람이 형사처벌을 받고 교도소에 수감된다.

반면, 힘없는 약자와 사회적 소수자 및 개인은 쏟아지는 혐오발언의 공세 속에서도 국가의 보호나 지원을 충분히 받지 못한다. 뭔가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 대한민국이 독일처럼 ‘혐오발언 금지’ 조치를 취하려면 정부와 여당부터 사죄하고 반성하고 자신들의 지원세력부터 단속해야 한다. 과연 그럴 용기가 있을까?

총선이 다가오니 벌써 정치적 의도를 띤 혐오발언이 증가하기 시작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공정경쟁’의 모범을 보이려면 지금 당장 ‘혐오발언 금지’ 조치를 취해야 한다.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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