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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 미국 시카고 시장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매카시 경찰국장의 사퇴 촉구’가 내용이었다. 1년 여전 거리에서 백인 경찰관 반 다이크가 지시에 불응해 도주하던 흑인 10대 청소년 라쿠안 맥도널드를 총격해 사망케 한 사건이 발단이었다. 경찰국장은 반 다이크를 옹호했고, 검찰은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기소를 미뤄오던 중이었다. 언론과 시민들은 시카고 외근 경찰관이 착용하고 다니는 소형카메라에 촬영된 영상을 공개하라고 줄기차게 요구했고, 거리에선 시위가 계속되었다.

하지만 ‘수사기밀인 동영상을 공개할 수 없고, 경찰관의 총격은 정당행위다’라는 매카시 경찰국장을 보호하고 옹호하던 시 검찰과 시장의 연대가 구축한 보호막은 강하고 공고했다. 이 지지와 보호의 연대를 무너트린 것은 법원이었다. 법원은 ‘당시 상황을 담은 동영상을 공개하라’고 시카고 경찰에 명령하면서 반 다이크 경찰관을 ‘1급 살인죄’로 기소했다. 법원의 결정이 내려지자마자 시장은 수족처럼 챙기던 경찰국장을 내팽개쳤다.


기자회견에서 “매카시 경찰국장은 훌륭한 지휘관이지만 이미 경찰에 대한 ‘공공의 신뢰’에 심각한 손상이 발생했기 때문에 지휘관이 책임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지난달 14일 집회 시위 도중 경찰의 물대포에 맞고 쓰러져 중태에 빠진 농민 백남기씨 사건에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물론, 일반인의 총기 소지가 허용되고 불법 총기류도 많아 늘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긴장된 상태에서 근무하는 미국 경찰관과 주취 난동자와 고성의 민원인들이 내뱉는 욕설과 폭력과 모욕에 시달리는 한국 경찰관의 긴장의 특성과 정도는 다르다.


백남기씨의 자녀들과 농민단체 회원들이 편지를 주한교황청대사관에 전달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_경향DB


양국 모두 법과 규정, 경찰헌장에 ‘시민의 권리를 존중하고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원칙을 천명하고 있는 것은 같다. 다만, 미국의 대통령과 시장, 경찰지휘관들은 ‘어떤 차이에도 불구하고, 국가와 경찰은 모든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는 반면, 한국은 대통령부터 무섭게 일그러진 표정과 공격적인 말투, 그리고 과격한 표현을 동원해 시위에 나선 시민을 테러리스트라 규정하고 적대시하고 있다. 총리와 장관, 경찰청장, 여당 의원들은 서로 질세라 일선 경찰관들에게 ‘전사가 되어라’, ‘시위대를 공격하라’, ‘무력으로 진압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맥도널드는 정부와 경찰이 금지하는 개별 경찰관의 범죄적 총격으로 사망했다. 하지만, 우리 농민 백남기씨는 대통령과 정부, 경찰 최고위 지휘관의 지시와 명령, 심리적 압박하에 있던 경찰관의 직무상 행위로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 미국 시민 맥도널드의 사망에 대한 1차적 책임은 반 다이크 경찰관 개인의 ‘1급 살인’ 혐의로 귀결되고 매카시 경찰국장의 사임으로 2차적 ‘지휘 책임’이 추궁된다.

하지만, 한국 시민 백남기씨 부상의 원인이 ‘불법행위’라면, 그 1차적 책임은 정부와 경찰 지휘부가 져야 한다. 만약 12월5일로 예정된 집회와 시위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발생한다면, 시민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해 공격하라고 명령을 내린 대통령과 그 명령의 부당성을 고언하지 않고 더 심한 발언을 쏟아낸 총리와 장관, 경찰청장, 그리고 미국처럼 총을 쏘라고 난리 친 새누리당 의원들이 책임져야 한다.

경찰 지시에 불응해 달아난 흑인 청소년의 행위는 법과 절차에 따라 처리돼야지 경찰의 총격으로 응징돼서는 안된다. 시위 참가 시민 역시 마찬가지다. 일부 폭력행위 시위꾼은 시민들과 경찰이 함께 구분하고 신원을 확인해 법에 따라 조치해야 한다. 일부의 폭력행위를 명분 삼아 분노하고 저항하는 시민, 그 생각과 뜻을 표현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 시민을 적으로 규정하고 공격하는 정부는 이미 정부가 아니다. 경찰관을 포함한 공무원은 불법한 지시에 항거해야 하며 부당한 지시에 절차를 밟아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 우리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천명하고 있음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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