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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목함 지뢰 도발’ 문제가 포격과 확성기 심리전을 촉발하면서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가는 위기로 이어졌다. 가까스로 ‘고위급접촉’을 통해 합의문을 이끌어내면서 일단 급한 불은 껐다.


하지만 북측의 ‘유감’이라는 표현을 둘러싼 해석의 문제는 불씨를 남겼다.

핵심은, ‘용의자’인 북한이 ‘범행’을 인정하지 않은 채 두루뭉술하게 넘어간다는 것이다. 사건의 진실이 묻히고 책임의 소재가 가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가해자에 대한 단죄 없이 피해자만 덩그러니 남겨진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다.

그 런 면에서는 대구 황산테러 태완군 사건, 이태원 햄버거집 살인사건, 대구 여대생 정은희양 피살사건과 유사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사건의 피해자들은 국가와 사법체계가 무시하고 외면해 눈물과 한숨, 생계파탄의 절망만 떠안은 반면, ‘피해 국가’인 대한민국은 유무죄 판결 없이도 용의자를 압박해 ‘유감’ 표명을 이끌어냈다는 정도일 것이다.

피 해자와 용의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는 사건들의 공통점은 ‘증거 불충분’이며 그 이면에는 늘 ‘과학수사 실패’라는 비판이 뒤따른다. 그나마 ‘민간’ 과학수사체계는 투명한 유리 상자 안에서 다양하고 날카로운 감시와 비판을 받으며 나날이 발전한다. 이에 반해, ‘안보의 보호막’에 싸여 있는 ‘국방 과학수사체계’는 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시비와 불신의 대상이 되면서 국론 분열과 안보 위기를 부르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최전방 초소 김훈 중위 사망사건, 허원근 일병 등 ‘의문사’ 사건들은 물론, 국론분열과 종북논란을 부른 ‘천안함 사건’과 ‘북한 무인기’ 사건, 그리고 이번 ‘목함 지뢰 사건’ 등 안보 관련 ‘범죄 사건’마다 신속하고 철저한 초동수사와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과학수사, 검증 가능한 ‘증거 전달체계의 무결성’을 통한 명쾌한 ‘입증’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저 ‘우리 군을 믿나, 북한을 믿나’, ‘북한은 무력 도발과 불법 침략의 전과자이다’ 등 ‘심증’과 ‘애국심’을 무한반복,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이 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근거 없는 음모론을 퍼트리며 정치적, 사회적 불안을 조장하는 ‘불순분자’들도 문제지만, 상식을 가진 일반인이 제기하는 ‘합리적 의심’까지 ‘종북’으로 모는 미개한 사회와 언론의 부끄러운 모습 뒤에는 우리 국방 ‘과학수사 체계’의 후진성이 있다.
‘송진 냄새’, ‘용수철’ 등 북한 측의 코웃음을 부른 어설픈 ‘정황’만이 아닌 ‘족적’, ‘CCTV 화면’ 등 실제로 북한 병사가 우리 측 철책 통문 안쪽까지 들어와 지뢰를 매설하고 돌아간 ‘흔적 증거’와 지뢰 유류물과 잔유물의 구성과 화학적 성분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통한 ‘제조처 증거’ 등을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제시해 ‘법정 유죄판결’을 받을 정도로 ‘입증’했다면, ‘용의자 북한’이 아무리 오리발을 내밀고 생떼를 써도 국제사회와 국내 여론의 공감과 일치, 지지를 형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북한 지뢰 도발부터 남북 고위급접촉 타결까지 _경향DB


비 무장지대 폭발 사고의 특성상, 어떤 추가 증거도 확보할 수 없고 용의자를 직접 ‘신문’할 수 없는 ‘독특한 특성’이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동안 군의 명예나 자존심 보호, 군 간부 등 사건에 관련된 ‘제 식구 감싸기’ 목적의 편파수사 의혹 속에 독립성과 객관성에 대한 일반의 신뢰를 얻지 못한 ‘국방 과학수사체계’ 탓에 국민과 사회 일반의 무조건적인 신뢰를 얻어내기는 힘들다.

으로가 더 문제다. ‘상습 전과자(usual suspect)’ 북한의 도발로 의심할 만한 피해는 계속 발생할 것이다. 그 전부가 북한의 소행일 수도 있고 그중 ‘단순 사고’나 ‘우리 측 과실’이 원인인 피해가 섞여 있을 수도 있다.

작 금의 불신받는 ‘국방 과학수사체계’ 하에서는 북한 병사나 단위 부대의 ‘범죄 행위’ 하나, 혹은 상부의 문책이 두려워 ‘북의 소행’이라고 엉겁결에 둘러댄 ‘작은 거짓말’ 하나가 우리 민족은 물론, 세계의 공멸을 초래하는 ‘핵전쟁’을 부를 위기도 상존한다.

평 화 유지와 통일 도모를 위한 군사력과 외교라는 큰 틀의 국방이 중요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군 사법 정의를 확보해 군 기강과 사기는 물론 군에 대한 국민과 사회의 지지를 확보하고, 의외의 변수가 부를 위기를 방지할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국방 과학수사 체계의 확보 역시 중요하며 시급하다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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