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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 이야기’라는 메뉴를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www.jirisan.com)가 있다. 사이트 주인장을 비롯한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밥상 사진을 올린다. 반찬과 식재료에 관한 간단한 코멘트와 음식에 대한 기억이나 소소한 이야기가 함께 올라온다. 식당에서 사 먹는 밥이 아니라 집밥 사진이다. 아침, 점심, 저녁 대중없고 세계를 넘나드는 사람들의 밥상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쏠쏠하다. 사실 남의 집 밥상 구경보다 더 좋아하는 것은 누군가와 함께 먹는 밥이다. 아무리 서먹한 사이라 해도 먹을 것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시작하면 분위기가 부드러워지기 마련이다. 뭘 먹느냐에 따라 회의석상에서 나올 일 없는 이야기도, 숟가락을 놓고 컵에 물을 따르며 음식을 기다리고 있노라면 풀려나온다. 그 사람과의 새로운 기억이 생긴 만큼 ‘밥이라도 한 번 먹은’ 관계는 이전과 다른 질감을 갖게 된다.

“그녀는 생각난 듯이 앉은뱅이 의자를 밥상 앞에 당겨놓고 벽에 걸린 밀짚모자를 내려 자신이 앉은 맞은편에 내려놓는다. 혼자 밥 먹기 싫을 때마다 하는 행동이다. 앉은뱅이 의자를 맞은편에 두고 밀짚모자를 내려놓고 있으면 누군가와 마주 앉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신경숙 소설 <바이올렛>에 나오는 구절이다. 예전에 읽었지만 ‘혼밥’이 싫은 주인공의 심정과 의지할 사람 없는 외로운 주인공의 처지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 인상에 남아있었다. 이 대목을 호출한 건 바로 대통령의 ‘지극한 혼밥 사랑’이었다. 대통령 탄핵이 가결되기까지 쏟아진 수많은 충격적인 기사 중에서도 잊혀지지가 않았다.

대통령의 혼밥은 화장실에 자주 가지 않기 위해 국물이 없는 돼지불백을 선호하는 택시기사나, 돈도 시간도 부족해 ‘컵밥’이나 편의점 도시락으로 한 끼를 때우는 취업준비생들의 혼밥과는 차원이 다르다. 대통령이 밥 먹자고 부르면 그야말로 ‘열 일 제쳐 두고’ 달려올 사람도 많을 텐데 업무 시간에 혼자 밥을 먹는다니? 의아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은 깨어 있으면 집무 중이시고 주무시면 퇴근한 것”이라는 김기춘 실장의 표현대로라면 대통령의 식사 시간이야말로 엄연한 업무 시간 아닌가? 대통령이 “평소 혼자 TV를 보며 식사하는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는데, 국민 대신 TV와 함께 업무를 본 셈이다. 이쯤 되면 청와대 관저 TV 시청 내역에 대해 정보공개 청구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늘 관저(집)에서 혼자 식사를 했다고 하니, 그동안 집에서 혼자 TV 보면서 밥 먹는 자유로운 직장 생활을 해온 셈이다. 평범한 직장인이었어도 진작에 직장 생활이 끝났을 일인데, 일국의 대통령이라면 말할 것도 없지 않은가.

게다가 먹을 것을 나눠먹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위로다.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속 풍경은 비극적이지만 따뜻하다. 아들을 사고로 잃고 슬퍼하는 부부를 만난 빵집 주인은 “뭘 좀 드시고 기운을 차리는 게 좋겠소.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거요”라며 갓 구워낸 롤빵을 건네고, 부부는 시나몬 롤빵을 나눠먹으며 아침이 될 때까지 이야기를 나눈다. 즉석에서 해결책을 제시해 타인의 슬픔을 위로한 빵집 주인과 달리,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 당일에도 평소처럼 혼자 관저에서 점심과 저녁을 먹었다고 한다. 대통령이라면 응당 국민과 아픔을 함께 나눠야 할 의무가 있는데도 지금껏 자식을 잃고 상처받은 국민들을 불러 따뜻한 밥 한 끼 나눈 적 없다. 대통령의 의지만 있었다면 얼마든지 가능했을 일이고 어려운 일도 아니다. 매주 일요일 회의를 하러 들어왔다는, ‘경계의 담장을 낮췄던’ 최순실과도 밥은 같이 안 먹은 분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었을까?

직무정지된 이후에도 평소와 크게 다를 것 없는 고독하고 익숙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는 ‘신분만 대통령’인 분께, 지금이라도 함께 먹는 밥을 권하고 싶다. 혼밥을 좋아하는 대통령을 뽑은 국민은 이미 그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대통령은 맡은 책임을 지는 자로서 외로워야지, 식탁에서조차 외로운 사람이어서는 곤란하다.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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