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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카콜라’와 ‘알릴레오’. 재미난 대결 구도이다. 두 채널의 특징과 향후 예상되는 정치적 파급력을 비교해보자. 우선 홍준표 전 대표가 유튜브 방송을 기획하고 상당한 정도로 선전해온 것은 괄목상대라 할 만하다. 그는 2011년 <나꼼수>에 출연했을 때만 해도 “이거 언제 방송되는 거냐”고 물을 정도로 뉴미디어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사람이다. 

홍카콜라가 많은 구독자와 조회수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끌게 된 데에는 홍 전 대표 특유의 입담도 작용했겠지만, 오프라인의 정치현실도 못지않게 중요했다고 봐야 한다. 온라인 공간은 종종 정치적인 균형추의 역할을 한다. 트위터의 정치적 영향력이 극대화되어 있었던 2011년을 전후해서 보수언론은 트위터가 좌파의 소굴이자 확증편향의 근거지라는 공격성 기사를 쏟아냈었다. 그러한 평가에 동의하지도 않지만, 설사 동의한다 하더라도 그 이유는 그 당시 오프라인 세상이 우파의 소굴이자 여론호도의 근거지였기 때문이다. 온라인은 한쪽으로 치우친 오프라인의 균형을 잡기 위해 반대쪽으로 이동한다. 당시 한나라당은 안상수 대표가 ‘디지털 전사 1만 양병설’을 주장할 정도로 온라인에서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그 결과 보수정치세력이 선택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세금과 국가기관을 동원한 여론조작이었다. 당시에는 온라인에서의 열세를 만회하기가 그리도 어려웠는데, 왜 지금 홍카콜라는 일정한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이는가. 오프라인 세상이 반대쪽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홍카콜라와 같은 우파 채널이 오프라인 세상의 균형을 잡는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알릴레오(위)와 홍준표 자유한국당 전 대표의 TV홍카콜라(아래)

하지만 홍카콜라는 알릴레오의 등장과 함께 단번에 따라잡혔다. 알릴레오는 첫 방송 반나절 만에 홍카콜라가 3주 걸려 확보한 구독자 수의 두 배를 기록했고, 지금은 거의 세 배에 육박한다. 어찌 된 일일까. 홍카콜라는 나꼼수를 벤치마킹하고 있기 때문이다. 홍 전 대표가 그것을 의식하고 있는지 어떤지 모르겠으나, 결과적으로 홍카콜라는 나꼼수를 따라하고 있다. 과거 나꼼수는 결집의 매체였다. 김어준, 정봉주, 주진우, 김용민이라는 걸출한 재담가들이 정치적 신념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통렬한 풍자와 정치현상에 대한 분석, 때로는 음모론을 펼치는 자리였다. 그들의 입담이 워낙 재미있었기 때문에 나꼼수는 많은 구독자를 확보했지만, 결과적으로 선거에 미친 영향은 크지 않았다. 이미 민주당을 찍기로(혹은 당시 한나라당은 절대 찍지 않기로) 마음을 정한 사람들끼리 여는 축제였기 때문에 확장성이 적었다. 선거는 내 편의 신념을 더욱 강화해봤자 절대 이길 수 없다. 상대편 지지자나 부동층을 설득해서 내 편으로 데려와야 이긴다. 그런 의미에서 나꼼수가 선거에 미친 영향은 제한적이다. 그보다 훨씬 영향이 컸던 것은 리트윗을 통해 퍼져나간 인증샷 놀이였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들이 실제로 투표를 하고 있다는 증거는 사람들에게 투표장에 나갈 충분한 동기를 부여해주었기 때문이다. 인증샷 놀이에 실제 참여한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남들이 인증샷 놀이 하는 것을 보기만 한 사람도 투표장에 나갈 확률이 몇 배로 뛰어올랐다. 홍카콜라가 나꼼수 모델을 따라하는 한, 이미 문재인 정부에 등을 돌리기로 마음을 정한 사람들에게 콜라처럼 속 시원한 방송이 될 수는 있겠지만 확장성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을 것이다.

홍카콜라의 한계는 알릴레오의 장점이기도 하다. 홍카콜라가 저돌적 공격으로 파고든다면 알릴레오는 팩트에 근거한 차분한 담론을 만든다. 팩트를 위해 여론조사 전문가까지 고정 패널로 등판했다. 이런 구성은 홍카콜라의 저돌적 공격보다 합리적인 중도층에게는 훨씬 큰 확장성을 갖는다. 홍카콜라가 공격수이고 알릴레오가 수비수처럼 보이지만, 내 편을 더 많이 확보한다는 측면에서 알릴레오가 더 위협적이다. 거꾸로 홍카콜라의 장점을 알릴레오는 갖추지 못했다. 무엇보다 알릴레오는 ‘노잼’이다. 예능 프로그램을 연상케 하는 빠른 편집으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홍카콜라에 비하면 알릴레오는 시사교양 프로그램 같은 느낌이다. 그동안 방송에서 쌓은 유시민 이사장의 내공으로 아직은 버티고 있지만, 노잼 이미지가 굳어지면 어려워질 것이다. 분량을 줄이고 편수를 늘리고 짧은 바이럴을 만들어내야 한다. 다른 한편, 알릴레오가 성공할수록 유 이사장의 정치적 고민은 깊어질 것이다. 그가 본인 말대로 대선에 나오지 않는다면 알릴레오는 중도층을 대거 끌어오는 킹메이커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본인이 대선 출마를 결정한다면 알릴레오는 불가피하게 홍보 채널이 될 수밖에 없고 확장성은 줄어들 것이다.

확장하지 못하는 결집의 홍카콜라와 내 것이 될 수 없는 확장의 알릴레오. 눈여겨볼 만한 정치실험이다.

<장덕진 |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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