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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교육이야말로 성공의 열쇠이며 능력주의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우수한 교육을 받고 학업 성취도가 뛰어나면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고 그 덕분에 한 단계 높은 계층으로 올라서고 있다고 강력하게 믿는다. 이런 의미에서 교육은 능력적 요인이 될 수 있다.”

<능력주의는 허구다>(스티븐 J 맥나미와 로버트 K 밀러 주니어, 사이)의 저자들은 이런 능력주의가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개인의 능력보다 부모의 배경, 학교와 교육 시스템, 사회적 자본과 문화적 자본, 부의 상속, 특권의 세습, 차별적 특혜, 사회 구조적 변화 등 비능력적 요인이 능력을 이겨버리는 세상에서는 ‘개천에서 용이 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는 말이지요. 오히려 학교와 교육은 “불평등한 삶을 대물림하는 잔인한 매개체”일 뿐이라고 단언합니다.

나이 서른셋의 지방대 시간강사가 대학원에서 공부한 과정과 시간강사로서의 처참한 삶을 담담하게 정리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309동1201호, 은행나무)는 그런 단언이 사실임을 확인시켜주고 있습니다.이 책이 들려주는 대학의 현실은 암담합니다. “정년을 채운 교수들이 퇴임하면 기다렸다는 듯 그 자리를 지우고 비정년 트랙 강의 전담 교수를 채워 넣는다. 그리고 ‘해임’한다. 대학은 나름대로의 신자유주의적 생태계를 구축해가고 있는 것이다. 학부생과 대학원생, 심지어는 졸업생의 값싼 노동력으로 행정의 최전선을 채운다. 4대 보험이나 퇴직금 명목조차 없는 4개월짜리 계약서를 받아든 시간강사들이, 2년짜리 비정년 트랙 교수들이 강의를 책임진다.”

패스트푸드점에서 한 주에 60시간만 일해도 건강보험이 되는데 이 땅의 대학에서는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안전망이라 할 수 있는 4대 보험조차 보장되지 않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지식을 만드는 공간이, 햄버거를 만드는 공간보다 사람을 위하지 못한다면, 참 슬픈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교수의 책을 나르다 다쳤지만 모든 책임을 자신이 져야 했던 슬픈 고백을 털어놓고 있습니다. 그렇게 참고 일해도 정년이 보장되는 교수가 된다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보다 힘든 세상입니다.



이런 대학에 전망이 있을까요? <빅 픽처 2016>(김윤이 외, 생각정원)은 인터넷을 통한 쌍방향 온라인 공개강좌인 ‘무크’(Massive Open Online Course)로 인해 “15년 내에 미국 대학의 50가 사라질 수 있다”는 <혁신 기업의 딜레마>의 저자이자 파괴적 혁신 이론으로 유명한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하버드 교수의 주장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참여와 개방’을 표방하는 무크는, 무료로 전 세계의 누구에게나 열려 있기에 교육 불평등을 다소 해소할 수 있으며, 학점·크레디트와 상관없이 지식 향상, 교육 기회 확대, 교육의 접근성 증대 등을 위한 사회적 서비스이며, 교육 방식이 수요자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으며, 평생교육 시장을 확대하고 있고, 수강생이 불특정 다수라는 특성이 있습니다. 곧 무크가 활성화될 것이기에 우리나라의 대학은 곧 셋 중 둘은 도태될 것으로 보입니다.

얼마 전 지방 강연을 끝내고 50대 초반의 수강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한 지방 명문고의 성적 우수자들이 이른바 ‘스카이’ 진학을 포기했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집에서 가까운 지방대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를 다니면 부모의 등골도 보호해주고 부모님 생전에 가족끼리 훈훈한 삶을 좀 더 길게 살 수 있다는 이유를 댔다더군요.

저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 사회에서 ‘학력지상주의’라는 공고한 장벽에 드디어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크게 안도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앞으로 5년 이내에 셋 중 한 사람은 학교에 보내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자리에서 제 이야기를 들은 이는 이미 부잣집 아이들은 5명 정도가 모여 새로운 학습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려주더군요.

또 다른 이는 한 사교육업체가 35개의 프랜차이즈를 두고 이와 비슷한 교육을 펼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이런 이야기를 전해주었습니다. “지금 학교에서는 신호가 파란불일 때는 건너고 빨간불일 때는 건너지 말라는 단순 지식만 가르칩니다. 그러나 사교육업체는 그런 약속의 의미와 함께 창조적인 방법으로 다양한 약속을 만들어내는 창조력을 가르칩니다. 이제 지식을 단순하게 전달하는 학교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들은 어떻게 해서든 앞서나가는 모양입니다. 어쩌면 몇 년 이내에 학교는 맞벌이로 아이를 돌봐줄 수 없고 사교육도 시킬 수 없는 가난한 집의 아이들만 득실거리는 공간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걸 이기는 방법이 있냐고요? 물론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함께 책을 읽고, 토론을 하고, 글을 써보는 것입니다. 마을마다 작은도서관을 만들어놓고 그곳에서 동년배끼리, 혹은 여러 세대가 함께 책을 읽고 토론부터 벌이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인터넷으로 모든 지식의 공유가 가능해진 시대에 ‘흙수저’가 ‘금수저’를 이겨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아닐까요?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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