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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밖에 남지 않은 2015년에 가장 많이 팔린 책은 80만부를 넘긴 <미움받을 용기>(인플루엔셜)입니다.
프로이트, 융과 함께 심리학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아들러의 가르침을 철학자인 기시미 이치로와 프리랜서 작가인 고가 후미타케가 철학자와 청년의 대화 형식으로 풀어낸 이 책은 올해 내내 베스트셀러 1위를 달렸습니다. 이제 기시미 이치로의 책들이 원서에도 없는 ‘용기’라는 이름을 줄줄이 달고 번역 출간될 정도가 되었습니다.
저는 1월21일에 발표한 한 글에서 이 책이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은 것은 아들러의 주장이 ‘사토리(득도) 세대’의 의식구조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썼습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성적보다 자율성을 강조하는 ‘유토리 교육’을 받은 이 세대는 어려서부터 스마트폰을 이용한 ‘스마트폰 세대’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검색으로 거의 모든 정보를 얻고, 언제 어디서나 엄지손가락으로 글을 써서 주변 사람들과 자유롭게 소통하고, 액정화면을 통해 이성이 아닌 감성을 느끼는 세대입니다.
일본은 네 사람 중 한 사람이 65세가 넘을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노령화되고 있는 나라입니다. 2060년에는 그 비율이 40%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생활보호기준에 해당하는 고령자 및 그 우려가 있는 고령자”로 불리는 ‘하류노인’이 700만명, 혼자 사는 노인이 500만명인 나라입니다. 올해에도 NHK에서는 고령자의 빈곤을 다룬 프로그램을 몇 편 잇달아 방송했고, 여러 미디어에서는 ‘간병 퇴직’이나 ‘노후 파산’을 메인 특집으로 내세우며 고령자의 빈곤과 격차의 문제를 제기해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미디어의 주된 관심은 ‘노인세대’였습니다.
책 시장에서도 103세의 고령임에도 현역에서 맹렬하게 활동하고 있는 미술가 시노다 도코가 때로는 다정하게, 때로는 엄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법과 즐기는 법을 전수하는 <103세가 돼서 알게 된 것? 인생은 혼자라도 괜찮아>가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1위를 달렸습니다. 평생 독신으로 살아온 시노다는 이 책에서 “100세를 넘으면 어떤 식으로 나이를 먹으면 좋을까, 저도 처음이라 경험이 없어서 당황”한다면서 “모두 스스로 창조해서 살아가지 않으면 안됩니다”라고 조언합니다. 그는 또 “100세가 넘으면 인간은 차츰 ‘무(無)’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느낍니다. 하나의 예로 나는 작품을 그리기 시작하면 전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작품과 나와의 사이에는 붓이 있을 뿐, 단지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 무의식중에 자연스럽게 완성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전혀 새로운 경지의 작품”이라고도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이른바 ‘지성’이나 ‘윤리적 판단 능력’이 아닙니다. 오로지 인간적 자존심을 지키며 살아남는 것입니다. 너무 길어진 수명 때문에 그렇게 살아내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니 이제 ‘교양’의 개념부터 달라지고 있습니다.
모리모토 안리 국제기독교대 학무부학장은 <2016년의 논점 100>(문예춘추)에 실린 ‘대학교육과 반지성주의’라는 글에서 “교양이란, 요컨대 인간이 손에 넣을 수 있는 지식 같은 게 아니다.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그 지(知)를 얻은 사람의 인격에 반드시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되는 방식으로 알게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교양은 어떻게 터득할 수 있을까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남아야 하는 청년들이 “흔들리는 실존의 물음에 직면하면서 고통스럽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결단의 순간 고려해야 할 선택지를 찬찬히 바라보며, 그것이 가져올 파장을 가늠해”볼 때 사람은 “자신의 가능성과 한계를 알게” 됩니다. 이때 바꿔야 할 것을 바꾸고 받아들여야 할 것을 받아들이면서 양자를 구분하는 통찰력을 기르게 됩니다. 모리모토는 결국 교양이란 “이렇게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지성”이라고 결론내립니다.
그런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미움받을 용기>도 한 ‘교양’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필요 이상으로 돈을 벌겠다는 의욕이 없고, 도박을 하지 않고, 해외여행에 관심이 없고, 대도시보다 나고 자란 고향에 대한 관심이 많고, 연애에 담백하고,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사토리 세대’는 ‘지금 여기’라는 신변에서 가까운 행복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남에게 무시당하는 일입니다. 그들이 욕을 먹을 각오로 일을 하면 못 이룰 것이 없다는 것을 철학자의 말을 빌려 하고 있으니까요.
이런 성향을 가진 ‘사토리 세대’를 한 보수신문은 ‘달관세대’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빼닮은 한국의 젊은이들은 ‘절망세대’가 맞습니다. 이제 더 이상 포기할 것이 없어 ‘N포세대’로도 불리는 그들은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쌓았던 ‘이케아 세대’(1978년생 전후)가 대부분 비정규직에 머물며 방황하는 모습을 목도하고는 어떤 시도조차 포기한 채 좌절하고 있습니다.
‘금수저’나 ‘다이아몬드 수저’라는 스펙이 아니고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극단적 비관을 하게 된 그들이 가장 열심히 읽은 책이 <미움받을 용기>입니다. 따라서 우리 사회도 곧 지식 생산 기능을 상실한 학자가 아니라 후반생의 문을 화려하게 연 이들에게서 교양이나 지혜를 갈구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그것에다 ‘스토리두잉(storydoing)’이란 문패를 달아주었습니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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