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ㆍ희망은, 가진 자들이 만든 질서를 넘어서는 용기다

희망버스 기획하고 진행한 송경동 시인을 19일 서울 모처에서 만났다. 그는 현재 야간 시위를 주도했다는 혐으로 체포영장이 발부돼 수배자 생활을 하고 있다.


김규항 = 이곳에 갇혀 지낸 지 얼마나 되었나.

송경동 = 석 달쯤 지났다. 공식 수배 상태가 된 건 두 달 좀 지났다.


희망버스를 기획한 송경동 시인은 “비정규직이 900만명인 세상에 ‘운동’이 꿈과 이상, 그리고 다른 세상에 대한 확신을 접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김규항 = 어찌 보면 송경동이 갇혀 있는 건지, 세상이 갇혀 있는 건지 모르겠다. 송경동은 해방되어 있고 밖에서 자유롭게 활보하는 사람들이 자본의 감옥, 체제의 감옥에 갇혀 있다는 생각도 드는데.

송경동 =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말씀대로 많은 사람이 자본 감옥에 갇혀서 또 생존의 감옥에서 매달려 힘들게 살아간다. 이런 세상에서 육신은 좀 묶여 있을지 몰라도 심적으로나 양심적으로는 혼자 놓여나서 산다는 게 오히려 미안하고 과분하다는 생각을 한다. 

김규항 = 자본주의가 워낙 자기파괴적으로 가다보니 자본가들마저 자본의 감옥에 갇힌 시절이기도 하다. 인류 역사 내내 부자나 지배계급의 특징은 유한함이었는데, 이젠 새벽부터 밤늦도록 정신없이 바쁜 게 이른바 잘나가는 부자들의 상징처럼 되었다. 

송경동 = 더 많이 소외받은 사람들이다. 현실에서는 자본의 과실과 혜택을 거머쥐고 살지만, 그 때문에 공동체가 무엇인지, 사람들 간의 유대와 연대가 어떤 건지, 낮은 곳과 손잡는 연대가 얼마나 아름답고 가슴 뜨거운 것인지를 잃은 사람들이 아닌가. 부를 유지하려면 초인적으로 바쁘고 다른 사람들의 삶과 노동을 빼앗느라 폭력적이기까지 해야 하고. 

김규항 = 당신은 대학을 다니지 않았다. 한국의 진보운동은 전통적으로 학생운동을 기반으로 해왔는데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운동 엘리트들은 대부분 자유주의 진영으로 넘어간 반면 김진숙, 이갑용, 송경동을 비롯해 여전히 현실에 대한 지적 통찰력을 잃지 않고 활동하는 이들을 보면 오히려 대학을 다니지 않은 사람이 많다. 진정한 엘리트란 뭔가, 지성이라는 게 뭔가라는 질문을 해보게 된다.

송경동 = 난 거기에다 소년원 출신에 일용노동자 출신이니 운동진영뿐 아니라 사회 계급적으로도 가장 천한 사람인 셈이다. 그런 것들이 한때는 열등감이나 불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조건들이 오히려 나를 더 지혜로울 수 있게 했다. 인간의 모든 문명은 인간의 노동으로부터 만들어지고 노동 과정을 통해서 모든 경험이나 지혜가 나오는 것 아닌가.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노동은 삶에 대한 통찰, 인간 관계에 대한 통찰에서부터 사람을 지혜롭게 만드는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김규항 = 그런 조건이 실제 현실에서 열매 맺기는 쉽지 않은데.

송경동 = 노동하는 사람일수록 자본에 복속된 기계로, 시간 노예로 살아야 하는 사회다보니 자본이나 이데올로기의 억압 구조가 그런 지혜와 경험을 다 죽여버려서 실제론 성장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나 학교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이 아니라 노동하는 사람들이 유기적 지식인으로 성장해야 아름다운 사회가 된다고 생각한다.

김규항 = 그런 변화의 조짐이 보이는 셈인데, 계기가 뭐라고 생각하나.

송경동 = 운동진영에서 꿈이나 이상, 다음 세계에 대한 확신 같은 게 사라져 버린 것에서 시작된 것 같다. 1980년대나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 사람만 만나도 혁명을 이야기하고 변혁을 이야기하고 전체 세계를 이야기하고 그랬잖은가.

그런데 1990년 동구가 몰락하면서 다음 사회에 대한 전망을 상실한 상층 활동가들에게 남은 건 작은 꿈뿐이었다. 예를 들어 민주노총이나 이런 곳들도 조합원 만들기만 남았다. 그러다보니 절차적 민주주의 내에서, 의회제도 내에서의 조그마한 지분 확보를 통한 뭐, 이런 꿈으로 자꾸 가다보니 사람들이 망가진다. 개개인의 진정성을 넘어 구조나 상황이 자꾸 그러니까 사람들이 작아지는 거다.

우리 정파가, 내 편이 어느 정도 지분을 가져야 하고 나는 어떤 자리 정도를 가질까, 이런 걸로 되다보니 사람들이 키워지고 길러지고 다시 재탄생되는 과정들이 없어져 버리고 관료적이고 기계적이고 수직적인 문화들만 남게 된다. 과거의 단병호 같은, 이갑용 같은 노동자 계급을 대변하는 노동운동가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것이다. 

김규항 = 1990년대 이후 다른 세계에 대한 꿈이 사라지면서 꿈을 조정한 운동으로서 대형 시민운동이나 이런저런 개혁운동들이 각광을 받게 된다. 그런 운동에도 의미가 있고 달라진 현실에 운동이 조응하는 것도 당연하다. 문제는 꿈이나 이상을 달라진 현실에서 펼치는 게 아니라 꿈이나 이상을 폐기해 버리는 거다. 

송경동 = 어떤 때는 암적 존재로까지 이야기하더라. ‘1980년대 구좌파 아니냐, 돈키호테가 아니냐. 잘못된 입장과 세계관으로 사람과 세상을 망칠 수도 있는 사람들이다.’ 나도 노동문학을 했지만 1990년 초반부터 노동문학이라는 말이 싹 사라진다. 노동문학이라는 말 자체가 살해당한 셈이다. 

김규항 = 꿈이나 이상을 가진 사람들은 배제되고 진보라 불리는 사람들이 진보를 막아서고 있는 형국이다. 

송경동 = 현실 사회주의 패망으로 인한 충격은 이해하지만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신자유주의 흐름이 본격 시작되고 민주화로 생긴 두 정권이 그에 앞장서면서 진실이 다 드러나지 않았는가. 우리 삶은 초국적 자본의 먹이로 그대로 노출되고, 노동 유연화니 뭐니 해서 결국 비정규직 노동자가 900만명에 이르고, 이런 상황에서도 꿈이 사라진 운동을 말한다는 건 잘못이다. 그런 운동은 대안이 될 수가 없다. 자기 꿈의 한계 때문에 사회적 꿈을 제한하자고 주장하는 건 운동하는 사람으로서 양심적인 게 아니다.

김규항 = ‘야만의 시대에 맞선 송경동’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그런데 그 야만이 이명박 정권을 말한다면 당신을 제대로 이해한 걸까.

송경동 = 나는 한 대통령이나 정권하고 싸우고 있지 않다. 신자유주의 사회적 노선들과의 투쟁과 저항이 중심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5년 단위의 정권으로 잘라서 대응해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문어발 하나 자른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우리가 싸워야 되는 건 하나의 정권이나 이명박이라는 대통령이 아니라 제도정치권에 광범위하게 그리고 한국 사회에 전반적으로 이식되어 있는 신자유주의 입장과 노선과 그 세력들이다.

김규항 = 희망버스는 특정한 정치운동이 아니어서 여러 사람들이 연대하게 된다. 신자유주의 매파는 없지만 신자유주의 비둘기파라 할 만한 사람들은 많이 참여하는데 불편한 마음은 없는지.

송경동 = 지금 희망버스에서 본질적인 질문을 내고 격화되면서 정치적 입장에 따라 빠질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리해고가 이렇게 자행되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900만명에 이르는 상황은 어느 당을 지지하는가 이전에 사회적 학살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회적으로 이런 질문이나 문제가 사회화되는 순간 여기에 동승하고자 하는 많은 사람이 있기 때문에 매번 숫자에 연연하지 않고 편하게 생각한다.

김규항 = 전태일 이후 민주적 노동운동이 생존권 투쟁을 기반으로 발전해온 거는 당연한데 노동자 계급의 가치관이나 긍지 같은 게 형성 안 된 건 치명적인 문제다. 나 혼자 잘사는 것보다는 더불어 사는 게 더 멋진 거라는 생각, 우리가 자본가들보다 좀 어렵고 불편하지만 인간적 가치 면에선 월등하게, 훨씬 훌륭하게 살고 있다는 긍지 말이다. 그런 게 없다보니 최소한의 생존권을 넘어선 노동자들의 싸움도 여전히 임금투쟁에 집중되고 연대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노동운동이 세상을 바꾸는 운동으로서의 정체성이 사라지는 셈인데.

송경동 = 어느 순간부터 경제적 관점에 다들 매몰되었다. 경제동물이 되었다고 욕하는 게 아니라 누구나 다 자기 삶 속에서 주체가 되고 다른 삶을 찾아나갈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에 집중하고 있지만, 동시에 정규와 비정규의 경제적 차이에 매몰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대안도 그렇게 매몰된다. 다른 운동이 필요하다. 자꾸 조합원만 만들려고 하지 말고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세상을 이야기해 나가야 한다. 

김규항 = 그런 면에서 희망버스는 어떤 희망의 씨앗을 만들어내고 있다.

송경동 = 희망버스가 2차에서 합법주의의 틀을 넘었다. 어느 사업장에서든 노사가 도장찍고 나면 끝이다. 얼마 전 발레오공조 코리아도 합의서 쓰고 나니까 끝인 거다. 특이하게 그 벽을 희망버스가 넘었다. 이 합의는 사회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 재고되어야 한다.

많은 경우 불법주의, 비합법주의는 폭력투쟁을 하자는 걸로 이해되는데 합법주의를 넘어서야 된다는 건 자본의 법과 질서, 저들이 쳐놓은 상상력, 관습, 행동양식 이런 걸 넘어서는 거다. 모든 사고와 의식과 상상력과 문화와 행동 양식들까지, 예를 들어 사랑하는 방식까지. 이걸 넘는 상상력과 행동들, 당당함과 용기들. 변혁을 꿈꾼다면 그 벽은 늘 넘어서야 한다. 그게 변혁운동의 운명이기도 하고. 

김규항 = 자본진영은 최근 들어 거시적인 변화를 시작하고 있다. ‘안철수 현상’이라는 것도 기존의 보수가 수구나 꼴통보수라고 불리면서 청년이나 중간층 시민들에게 더 이상 소구력이 없다보니 합리적 보수로 변화하는 시대의 표징이기도 한데, 그런 큰 흐름에 대응하는 진보진영의 질적 변화가 필요하다.

송경동 = 나는 제도정치권 일에 많은 관심을 갖지 않는 편이다. 역사는 10년, 20년, 몇 십년 단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일희일비하지 않는 역사의식과 사회의식이 필요하다. 그게 없으면 결국 차선과 차차선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데, 우리가 가져야 하는 건 스타 정치인 몇 명을 만들어내고 또 하나의 상징과 우상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각 개개인의 조화롭고 자유로운 발전과 개화 이런 것들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 자유로우면서도 존경받는 개인들이 어떤 공동체의식을 가지고 협동하는 사회를 만들 것인가 하는 고민과 실천이다. 그런 단단한 바닥이 있어야 흔들리지 않고 갈 수 있다. 

김규항 = 현실을 변화시킨다는 게 워낙 암담하게 느껴지니까 조바심이 나고, 또 전엔 꿈이나 이상을 가졌지만 이젠 적당히 체제 안에서 진보인사 행세를 하려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미혹시킨다. 그러다보니 사회진보에 대한 대중의 열망이 비판적 지지니 정권교체를 위한 연합이니 하는 걸로 해소되어 버린다. 실은 그거야말로 자본의 지배 전략인데 말이다.

그러나 그런 흐름에 휩쓸리지 않으며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으니 희망은 여전한 셈이다. 당신은 활동가이기 전에 빼어난 시인이기도 한데 근래엔 서정시는 쓰지 못하고 추모시를 도맡아 쓰고 있다. 참 힘든 일이기도 하고…. 일종의 굿을 하는 것인데.

송경동 = 추모시를 쓰면 앞뒤 일주일은 완전 망가진다. 일종의 무당이다. 시가 안풀리면 갑자기 괴팍해지고 곤두서거나 몸이 폐허가 될 정도로 만취하거나. 그런가 하면 때론 길거리에서 20분 만에 써내야 할 때도 있다. 추모시 읽다가 마이크를 두 번이나 집어던졌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나, 돌아가신 분 앞에서 분노한 얼굴로 시를 읽고 있는 나 자신이 참담한 거다. 투쟁의 목숨값은 분명히 했나, 그러지도 않고 나는 폼을 잡고 추모시라고 이런 걸 읽고 있나. 사람이 죽기 전에 더 싸워야지 이런 생각을 한다. 

김규항 = 사람들, 특히 진보적인 중간층 인텔리들은 어떤 특별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소비’하기도 한다. 권정생 선생님 타계 후 ‘우리 곁에 살다간 성자’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여기엔) 저 사람은 성자고 나는 사람이니 저 사람처럼 살지 않겠다는 뜻과 그래도 나는 저런 사람을 존중하고 의미를 이해하는 교양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 함께 담겨 있다. 지금 당신은 원했든 안했든 저명한 인사가 되어가는 상황인데. 

송경동 = 나로선 굉장히 위험한 상태라고 본다. 예를 들면 내가 ‘현장에 있는 유일한 시인’ ‘노동운동과 결합하는 유일한 시인’이라는 말을 개인적으로 듣는 게 기분 좋아지는 순간, 아마 내가 썩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짜 저명해져야 되는 사람들이 있다. 용산 싸움을 예로 들면 60여명이 망루에 올라갔는데 거기에는 자기 지역이 아닌데도 올라간 수많은 전철연의 철거민이 있었다. 그 새벽 망루에 올라갔던 평범한 사람들, 그 순간 인간적 연대와 유대가 무엇인지를 보여준 사람들. 저명해야 할 사람들은 바로 그들이다.

김규항 = 우리가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새기고 존경할 줄 알 때 우리가 꿈꾸는 세상도 우리에게 올 것이다.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