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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람으로 볼 줄 아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처지에 자신을 놓아 보는 상상을 할 줄 아는 것. 이 두 가지를 갖추고 있지 못하다면 결코 정치를 해서는 안된다. 자신만을 위해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해치는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생살여탈을 결정하는 무시무시한 일이다. 권력의 사적이고 자의적인 행사를 예방하고 처단하는 법과 제도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앞서 말한 두 가지 요건을 갖춘 ‘사람다운 사람’이 정치를 해야 비극을 막을 수 있다. 법과 제도를 만들고 운용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기에.

2009년 8월19일 윌리엄 캘리라는 66세의 한 미국 남자가 41년 전의 일에 대해 참회했다. 캘리는 베트남전 때 양민 수백명이 학살당한 미라이 사건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전직 미군 장교이다. 캘리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은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고 했다. 학살 명령을 내린 상관들에게 저항하지 않은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고도 했다. 왜 그때는 몰랐을까? 캘리는 재판에 회부되었을 때 “공산주의자들이 인간이라는 생각을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 그가 부당한 명령에 저항하지 않고 어리석은 범죄를 저질렀던 이유이다. 이념을 탓하며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못했던 것이다. 캘리를 전쟁터로 몰아넣어 학살자로 만들었던 정치인들은 어땠을까? 베트남 양민들을 사람으로 볼 줄 알았을까? 당시 기소됐던 장교는 전부 14명. 그들 중 유죄판결을 받은 이는 가장 계급이 낮았던 캘리뿐이었다. 캘리는 22명의 민간인을 살해한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닉슨 대통령은 캘리를 가택연금으로 감형했다가 3년 후에 가석방했다.

2014년 7월14일 대한민국,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국회에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세월호특별법 제정 시 설치할 진상규명위원회의 구성 방식과 권한 범위에 대해 정치권이 희생자 가족들의 요구를 수용치 않고 있기 때문이다. 희생자 가족들은 위원회 정원의 절반을 희생자 가족들로 하고, 위원회가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갖는 것으로 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세월호 국정조사 특위 활동을 보면서 확인했기 때문이다. 국가의 무능으로 가족을 잃은 처지를 헤아리지 못하는 정치인들임을. 이들에게만 맡겨놓았다간 진상규명은커녕 대책도 세우지 못해 또다시 참극을 반복할 것이라는 사실을. 희생자 가족들이 직접 관여해야 한다는 것을.

14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 모인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이 철저한 진상규명과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다. (출처 : 경향DB)


새누리당 이완영 의원은 지지부진한 국정조사에 분을 참지 못하고 항의하는 희생자 가족들을 “내가 당신에게 말했느냐”며 타박했고 “경비는 뭐하느냐”며 쫓아내겠다고 위협했다. 같은 당 조원진 의원은 세월호 사건을 조류인플루엔자에 비유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역시 같은 당의 심재철 의원은 희생자 가족들에게 실제 퇴장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야당 의원들은 이런 여당 의원들을 효과적으로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 우원식 의원의 말은 귀 기울일 만하다. 그의 말마따나 세월호 참사를 단순 사고가 아닌, 살릴 수 있는 국민을 국가가 살리지 못한 사건으로 생각하는 정치인들이 특위 위원을 맡았어야 한다. 희생자 가족들의 마음과 생각이 바로 그러하다.

24일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0일째 되는 날이다. 육신과 영혼이 갈가리 찢겨져 나가는 고통 때문에 희생자 가족들에겐 그 100일이 100년 같을 것이다. 30일에는 재·보선이 있다. 이날에는 국민을 표가 아닌 사람으로 볼 줄 알기에 ‘100년의 고통’을 함께 나눌 정치인들이 더 많이 당선되길 소망해 본다. 부와 권력을 앞세운 몰염치한 강자들에게 맞서 싸워 온 정치인들 말이다. 그래야 사람 살리는 정치를 기대라도 해 볼 수 있다.


김윤철 |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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