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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00일이 넘었다. 아득한 시간의 날들이다. 15일째 굶고 있는 유가족. 수분기 없는 마른 몸과 까맣게 타들어가는 얼굴은 대한민국 정치의 민낯을 보여준다. 밤새 비바람 맞으며 청와대로 걸어가는 발걸음에 정치가 차인다. 서명을 받고 호소를 한다. 설득하고 납득을 시킨다. 살아남은 이들의 몫치곤 잔인하다. 박근혜 정부의 뻔뻔함은 시간을 앞지른다. 아픔의 우물에서 길어 올린 말과 글들이 휴가철 차량 소음에 묻힌다. 세월호특별법은 여야 정쟁 속에 바다 위 부표처럼 허연 배를 드러내고 표류한다. 죽은 사람과 살아남은 이들과 기억하는 자들만이 잔인함을 공유하고 분노를 나눠 마신다. 슬픔이 모여도 분노가 되지 못하고 아픔을 품어도 희망을 낳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은 늘 그렇듯이 이번에도 통제와 관리, 면피만으로 치열함을 보여주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입 가지고 귀 달리고 눈 가진 이들은 말했고 들었고 보았다. 그러나 정치권은 가장 늦게 일어나고 가장 빨리 누웠다. 여당은 본격적인 탄압에 나섰고 맞서 싸워야 할 야당은 말리는 시늉에 여념이 없다. 그것조차 무기력하다. 이 정치 비탄의 한복판에서 7·30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치러지고 있다. 국회 과반을 지켜달라는 여당과 과반을 저지해야 힘이 생긴다는 야당의 호소 모두가 귓속 모깃소리처럼 성가실 뿐이다. 지금 해결되지 않는 현실은 미래에도 반복될 것이란 예측과 경험이 바닥에 그들을 앉게 했고 곡기를 끊게 만들었다. 정치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가. 정치는 어떻게 아픔과 만나야 하는가. 잃어버린 정치는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어떤 정치가 아픔을 품을 수 있는 정치인가. 우리는 묻는다.
아픔을 품어야 할 정치가 아픔만 낳고 있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국민들 가슴에 소금을 뿌리고도 집권 여당은 국회 과반을 넘어설 기세다. 그 기세에 눌려 야당에 힘을 싣자는 주장이 거세다. 그러나 국회의원 숫자가 고통받는 이들의 삶을 개선시키지 못했고, 결국 무능력만 키워줬을 뿐이다. 그래서 어떤 국회의원이냐가 중요한 대목이다. 직업 정치인 107명, 사장 출신이 22명이나 되는 현실정치에 그 숫자 하나를 더 보태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용산참사와 강정, 밀양, 현대차 비정규직, 쌍용차 사태처럼 숱한 아픔에 대해 그들은 어떤 태도로 임했는가. 아무런 해결책을 만들지 못했다. 그것이 현실정치의 현실이라면 다른 가능성에 주목하자. 피해받은 이들의 직접정치를 본격적으로 열어야 해결의 새로운 공간이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자본과 권력에 이해관계가 걸려 있지 않은 이들. 고통과 아픔이 서로 몸으로 연결된 이들이 직접정치를 하는 것, 그것이 가능성을 넓히는 시작이다.
7.30 재보선 유세듣는 유권자들 (출처 : 경향DB)
정치는 공감이며 공감은 경험에서 나온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 대응에서 보이는 정치권 모습은 공감 능력이 부재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통각 부재다. 눈물 흘리지 않는 아픔 부재다. 더는 그들에게만 맡길 수 없지 않은가. 맡긴 결과가 답답한 현실의 반복이라면 비참하지 않은가. 직접정치와 아스팔트 위 정치를 여의도 정치 공간으로 밀어넣어야 한다. 지금껏 정치는 아픔만을 낳는 정치였다. 그러나 앞으로의 정치는 아픔을 품는 정치로 바뀌어야 한다. 용산참사 유가족이, 제주 강정의 주민이, 밀양의 주민들과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가, 그리고 쌍용차 해고자가 지금보다 훨씬 나은 정치를 만들어갈 수 있다.
이제 시작했을 뿐이다. 7월30일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는 마침이 아닌 출발선이다. 어떤 문학평론가는 모든 장소는 시간의 이름이라 했다. 이번 재·보궐선거가 치러지고 있는 평택이 어떤 시간으로 기억될지, 어떤 시간으로 미래와 연결될지 끝까지 지켜보고 함께해야 할 이유다.
이창근 | 쌍용차 해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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