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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세상읽기

‘386’들에게

opinionX 2018. 6. 26. 11:07

조나모. 조선의 나무라는 뜻이다. 1995년 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에서 일을 시작할 무렵 선배가 지어준 첫 번째 가명이었다. 그때만 해도 학생운동 연대사업을 하려면 가명이 필요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명은 필요 없던 시기였다. 내가 맡았던 일은 기존의 전통적인 학생운동 방식과는 좀 달랐다. 부문계열운동. 산별노조운동과 비슷했다. 학과의 전공 분야로 진보적 사회 진출을 준비하고 더 좋은 민주사회를 만들기 위한 운동이었다. 나에게 가명을 지어주었던 시절, 그 선배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 선방386. 많은 수의 학생운동 명망가들이 1998년 김대중 정부 탄생 후, 민주당에 들어갔다. 하지만 상황은 좋지 않았다. 젊은 피로 수혈된 386에겐 들 깃발도, 함께할 세력도 없었다. 다수의 학생대중이 국민승리21(지금의 정의당)로 갔고, IMF 경제위기 극복이라는 국가적 난제 앞에 민주주의, 평등과 같은 가치는 설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386은 당내에서 계파를 만들었고, 학생운동으로 묶였던 관계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이후, 계파해체라는 처방을 내놓으며 국민께 사과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아쉬운 일은 필요한 상황과 시기에 다시 뭉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너무 주눅이 들어서였을까. 나는 이들이 긴 세월 선방했다고 생각한다. 직접 나서지는 못했지만,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킨 일등공신이다. 앞으로도 민주당의 한 부분을 책임지며 활동할 것으로 보인다.

#전향386. 또 다른 여의도386이다. 이들은 2004년 한나라당(지금의 자유한국당) 총선 참패 직후, 사상전향을 통해 보수정치권에 입문했다. 보수정당에서 자유주의 철학을 기초로 정치활동을 시작했지만, 기성 정치권의 벽은 높았고 이들은 순진했다. 때론 이용당하고, 때론 성찰의 대가라 여기며 개혁보수보다는 급진보수의 역할을 자임했다. 지금은 보수개혁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보수의 차세대 리더가 많지 않아, 새로운 기회가 찾아올 수도 있어 보인다.

#생활386. 나는 이래저래 386언저리에서 혜택을 보며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의도386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았다. 2016년 11월 초,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을 규탄하는 두 번째 촛불집회로 기억한다. 이날 집회 참가자들은 청계광장에서 광화문광장 이순신장군 동상 앞까지 집회공간을 넓혔다. 광화문 촛불의 시작을 알리는 첫날이었다. 새벽까지 경찰과 대치하며, 광화문광장을 연 사람들은 내가 탐탁지 않게 생각하던 386이었다. 노동조합 소속의 직장인386. 만감이 교차했다. 불의에 분노하고 앞장선 사람들은 다시 386이었다.

#변방386. 2010년부터 기초자치단체장으로 8년간 조용히 동네에서 실력을 쌓았고, 이를 바탕으로 2020년 총선을 바라보고 있다. 시민과 소통하며 시민과 함께 크고 작은 정책성과를 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이 이념과 진영에 많지 않음을 몸소 체득한 386. 여의도386과 생활386 모두를 이해할 수 있는 변방의 386이 이들을 잇는 다리역할을 할 수 있을까. 30대의 나이에 1980년대 사회격변기를 체험한 세대. 6월항쟁을 거리에서 직장과 삶의 현장에서 감당했던 세대. 다수의 방관자 속에서 그룹 내 소수자의 높은 책임감을 다시 한번 볼 수 있을까. 이를 위해 몇 가지 제안해 보고 싶다.

진보386은 북한 인권보다 국내 인권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는 반면, 보수386은 국내 인권보다 북한 인권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 민주주의와 인권이 일국을 넘어서는 목표이고 가치라면, 제주도에 온 예멘 난민에 대해, 민주적인 절차와 인권지향적인 해법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또 지방선거에서 압승한 민주당도, 참패한 보수정당도 서로 다른 위기에 놓여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있을 당 지도부선거에 참여하여 시대를 대변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국회와 정당은 촛불민심이 지켜보고 있는 마지막 선출권력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스타시스템보다는 집단지성으로 일하는 방식을 제안한다. 예컨대 ‘386재단’을 설립하는 것이다. 88만원세대·저출산고령화·균형발전·평화번영 등과 마주하길 바란다. 386, 쫄지 마~ 그리고 처음처럼.

<최정묵 |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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