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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최근 한두 달 동안에 엉망이 되어 버렸다. “오픈프라이머리에 정치생명을 건다고 했다”가 그것이 여의치 않으니까 “전략공천은 절대로 안 한다”고 하더니, 이제는 “당헌당규가 정한 우선공천은 할 수 있다”고 후퇴했으니 말이다. 애당초 오픈프라이머리에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장담한 것 자체가 경솔했지만 김 대표가 이렇게 된 데는 박근혜 대통령과의 껄끄러운 관계가 결정적이었다.

상식적으로 본다면 박 대통령은 내년 총선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참패를 한다면 후반기 국정 운영이 차질을 빚겠지만 지금 야당의 상황을 보건대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최근에 있었던 유승민 파동과 대구 방문에서 보듯이 박 대통령은 내년 총선에서 자신의 세력을 새누리당 내에 구축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친박 세력은 자생력이 부족하고 비박 세력은 언제든지 자신을 배신할 수 있어서 못 믿겠다는 것이 박 대통령의 인식이다. 당 대표 선거, 서울시장 후보 경선, 원내대표 선출 등에서 친박이 밀었던 후보가 매번 비박 후보에게 고배를 마셨으니 대통령은 짜증이 날 만도 하다.

박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자신이 위험에 처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집권 첫해에는 국정원 등 국가기관이 대선에 개입했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고 검찰 수사는 그것이 상당 부분 사실임을 밝혀냈다. 그것이 현 정권과는 관련이 없는 전 정권의 문제라면 청와대와 친박이 그토록 방어적일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당시 새누리당 친박 지도부가 철벽같이 방어를 하고 검찰 수사가 제대로 굴러가지 못하자 사람들은 석연치 않은 것이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작년 봄에 발생한 세월호 사건은 현 정권이 한없이 무능함을 보여주었다. 청와대에 위기관리 능력이 없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았으니, 박 대통령의 자존심은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세월호 사건이 잊혀지는가 했더니 ‘정윤회 문건’ 사태가 발생해서 대통령을 또다시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괴문서를 둘러싼 파동은 가라앉았지만 대중의 의심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올해 들어서는 김무성 대표의 ‘KY 수첩 메모’ 사건이 일어나서 ‘청와대 십상시’가 세상에 추한 모습을 드러냈다. ‘KY 수첩 메모’ 파동은 김무성 대표가 넌지시 폭로해서 발발한 것이니, 상황을 야기한 김 대표를 박 대통령이 어떻게 생각했을지는 상상할 수 있다. 대통령 권위에 대한 비박의 도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새로 원내대표로 당선된 유승민 의원은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면서 대통령에 대해 직격탄을 날렸다. 상황이 이 정도에 이르자 많은 사람들이 “박 대통령은 이제 끝났다”고 말하기 시작했고, 김무성 대표는 자연히 여권의 주축으로 자리 잡았다.


일련의 사정으로 비추어 보건대 자신의 위상이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느낀 박 대통령이 유승민 의원을 원내대표에서 축출하고 김무성 대표를 견제하는 등 친정 체제 구축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의 이런 심정은 이해할 만하지만 대통령의 리더십에 손상이 간 데는 대통령 본인의 책임이 크다. 박 대통령은 국민대통합, 경제민주화, 검찰개혁 등 대선 공약과 재정건전성 확보 같은 자신의 지론을 저버리고 극우성향 인사를 요직에 기용하는 등 대통령이 되기 전에 쌓아온 자신의 이미지를 스스로 무너뜨렸다. 자연히 국정은 방향을 잃어버렸으며, 정권은 국민과 소통을 포기해버린 상태에 이르렀다.

이런 연유로 박 대통령은 퇴임 후를 구상하는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퇴임 후에 부친의 정치적 유산을 관리하려는 생각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하기 때문에 박 대통령은 자신을 따라줄 정치적 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박 대통령이 자신을 잘 알고 있으나 자신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김무성 대표보다는 자신을 잘 모르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대해 편안함을 느끼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대통령이 퇴임 후에 영향력을 갖고자 하는 것처럼 허망한 일은 없다.

국민의 따듯한 신뢰를 받았던 대통령은 퇴임 후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데, 해리 트루먼과 로널드 레이건 같은 미국 대통령이 그런 경우였다. 그러나 스스로 비극적 결단을 내렸던 노무현 대통령, 그리고 가족과 측근이 검찰과 교도소를 드나드는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에서 보듯이 우리는 미국과 사정이 많이 다르다.

대구 경북에 청와대 비서관들을 전략공천을 하니 마니 하는 잡음은 정부에 부담만 주며 대통령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알았으면 한다. 총선은 여당에 맡기고, 대통령은 국정에 전념하는 게 사리에 맞는 일이다.


이상돈 |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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